오보이 12주년 기념, 독자들이 보내온 글 '나의 오보이'
독자들은 오보이!가 힘을 준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주는 힘으로 잡지를 만든다. 지구와 모든 생명과 독자들이여, 우리에게 조금씩만 힘을 나눠줘. 원기옥. 독자는 나의 힘!
나의 오보이! solar power | 양윤서
침대에 구겨져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 여느 때의 어느 날, 새삼스레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간만에 책 정리나 하자!’ 생각하며 이제 읽지 않는 책들 을 팔고 나누려 분류하는데 책장 한 칸은 건들 수도 없었다. 10년은 보아온 오보이!였다.
처음 오보이!를 알게 된 것은 까마득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중학교 때, 아마 당시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화보가 실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오보이!를 구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배포처를 찾아갔지만 허탕을 치는 때도 많아 홍대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괜히 KT&G 상상마당에 들러보는 날도 허다했다. 아티스트의 화보로 오보이!를 알게 되었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매달의 특집 기획들이 흥미로워 그냥 찾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점점 신경 쓰이더라.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생기고 한동안은 매주 방문해 과월호를 읽고 구매하고 제품을 살펴보고 종종 마주치는 강아지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어느 날은 늘 멀찍이 떨어져 있던 강아지 친구의 등을 쓰다듬을 수도 있었다!! 5년도 더 지난 그날이 아직도 감동적이라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오보이!는 나의 꿈이었다. 대학 진로를 이제는 정해야만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사진을 전공하겠다며 나름의 큰 결정을 했던쯤 오보이!는 가장 확고한 나의 꿈이었다. 패기 넘치던 고등학생이 오보이!를 점령하고자 비대한 야망을 품었다기보다는, 무얼 좋아하냔 물음에 자신 있게 이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결의 느낌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획으로 글로 사진으로 전달하며, 작은 코너와 광고까지 큰 틀 안에서 이어지는 이 한 권의 잡지는, 나를 의심하게 하거나 무너지도록 만드는 시간 속에서도 뚜렷하게 내 중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해온 선택과 결정, 심지어는 좋아하는 것들 마저도 나를 배신하는것 같다 의심될 때에 오랫동안 읽고 사랑해온 이 잡지는 내 생각이 옳았다며 대신 주장해주는 것만 같았다. 오보이!와 함께 완성된 주관과 기호는 여전히 나를 지탱한다. 책장을 정리하며 오래 지난 과월호들을 읽는데 그때의 내가 꾸던 꿈이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오보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과 특집 기사들은 나의 꿈이고 버팀목이다. 좋아하던 것이 뭐였는지 다 잊어버린 것만 같은 20대 중반 대학생이 된 나는 아직도 오보이!를 보면서 꿈을 꾼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아 우울해진 나도 해가 쨍하게 비추는 낮에 볕을 받고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남은 의욕이라곤 없이 방구석에서 슬퍼하던 내가 보내는 밤이 아무리 길어도 매달 해는 뜨고 내가 원한다면 박차고 나가 햇볕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책장에 쟁여둘 수도 있다니!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저의 주관을 완성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박하게나마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며 꿈을 꾼 1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오보이!가 함께했습니다. 제가 보낸 중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러 학생들이 오보이!와 함께 의미 있는 사유를 해보고 유쾌한 꿈을 꾸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오보 이!처럼 멋지고 의미 있는 힘을 매거진과 사진으로 전달하고 싶단 꿈을 꿔요. 오래 오래 이 솔라 파워를 많은 독자들, 동물 친구들, 지구에게 부탁드려요!
사슴은 철조망과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 허민선
그곳에 가면 사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북서울 꿈의 숲으로 갔다. 남편은 어릴 적 소풍을 갔던 곳이라며 반가워했다. 옛날 에는 드림랜드라는 놀이공원이었단다. 드림이라는 어감 때문인지 드 럼 소리가 기억 속에서 둥둥거리며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이 눈보라 처럼 몰아쳤다. <늑대아이>에서 늑대가 어떤 동물인지, 자기가 늑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갇혀 있는 늑대에게 다가가 대면하는 장면. <스탠 바이 미>에서 레일로드 위에 앉아 만화책을 보다가 그곳을 지 나는 사슴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비밀로 하는 장면. < 쉰들러 리스트>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알려진)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가 흑백화면 속에서 컬러라이즈되던 장면. 쉰들러는 그 아이에게 서쉽게눈을떼지못한다.그아이가험하게쏟아지는총소리를뚫고 종종걸음으로걷다가걷다가다다른곳.그곳은침대밑좁은틈이었다. 숨은 채로 숨죽이듯 귀를 막는 그 장면까지.
오보이!라는 감정 감탄사를 입김처럼 내쉬며, 나를 더 작은 위치에 놓 아본다. 작은 점 하나가 되어야 연결될 수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보이! 덕분에 함께 살았던 반려견들이, 첫 조카와 처음으로 미끄럼 틀을 탔던 순간이, 오보이 스튜디오에 초대되어 찍은 새로운 가족사진과 더불어 기록될 수 있었다. 스노글로브 속 하얀 늑대와 눈을 맞추는 것처럼 그때의 나와 주파수를 맞춰본다. 감정의 날씨가 달라진다. 사슴을 보려면 철조망도 시야에 함께 들어왔다. 같이 찍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다큐에서는 사진가가 철조망의 한칸을 펜치로 끊었다. 그리고 그안에다 카메라를 넣은채 호랑이를 가까이 가까이 찍고 있었다. 그잔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사슴을 만날수 있어 좋았지만, 사슴들은 그곳을 고요히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보이! 는 내가 되살림이나 굿윌스토어를 찾아 소비하는 것처럼 취향과 신념을 반영하는 미닝아웃 이기도하다.
오래 전 산 아래를 걷다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생쥐를 보았다. 되돌아가 나뒹구는 플라타너스 잎 하나를 (시체를 싸매는 멱목처럼) 덮어 주었다. 그러나바람이 다시 불었고 그잎은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듯 날아 다녔다. 생쥐는 제자리에 계속 굳어 있었다. 나는 한번더 잎을 덮어주려다가 말았다. cctv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보일것 같아서. 그때 그생쥐는 아직도 내마음의 책장을 문진처럼 누르고 있다. 동네에 북서울 미술관이 있다. 채널을 돌리다 뉴스에서 그 미술관의 cctv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미술가가 40kg의 천사상을 텅빈 전시공간 맨 안쪽 구석에 일부러, 쓰러뜨려 놓았는데 그 천사상이 일으켜져 있어 cctv를 돌려보니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어렵게 어렵게, 세워놓은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네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나는 쓰러진 천사상을 일으켜 놓은 분들이 실재하는 천사처럼 느껴져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오 보이!
* 기사 전문은 OhBoy! No.113 ‘12th Annivers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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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이 12주년 기념, 독자들이 보내온 글 '나의 오보이'
독자들은 오보이!가 힘을 준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주는 힘으로 잡지를 만든다. 지구와 모든 생명과 독자들이여, 우리에게 조금씩만 힘을 나눠줘. 원기옥. 독자는 나의 힘!
나의 오보이! solar power | 양윤서
침대에 구겨져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 여느 때의 어느 날, 새삼스레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간만에 책 정리나 하자!’ 생각하며 이제 읽지 않는 책들 을 팔고 나누려 분류하는데 책장 한 칸은 건들 수도 없었다. 10년은 보아온 오보이!였다.
처음 오보이!를 알게 된 것은 까마득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중학교 때, 아마 당시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화보가 실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오보이!를 구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배포처를 찾아갔지만 허탕을 치는 때도 많아 홍대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괜히 KT&G 상상마당에 들러보는 날도 허다했다. 아티스트의 화보로 오보이!를 알게 되었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매달의 특집 기획들이 흥미로워 그냥 찾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점점 신경 쓰이더라. 오보이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생기고 한동안은 매주 방문해 과월호를 읽고 구매하고 제품을 살펴보고 종종 마주치는 강아지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어느 날은 늘 멀찍이 떨어져 있던 강아지 친구의 등을 쓰다듬을 수도 있었다!! 5년도 더 지난 그날이 아직도 감동적이라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오보이!는 나의 꿈이었다. 대학 진로를 이제는 정해야만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사진을 전공하겠다며 나름의 큰 결정을 했던쯤 오보이!는 가장 확고한 나의 꿈이었다. 패기 넘치던 고등학생이 오보이!를 점령하고자 비대한 야망을 품었다기보다는, 무얼 좋아하냔 물음에 자신 있게 이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결의 느낌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획으로 글로 사진으로 전달하며, 작은 코너와 광고까지 큰 틀 안에서 이어지는 이 한 권의 잡지는, 나를 의심하게 하거나 무너지도록 만드는 시간 속에서도 뚜렷하게 내 중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해온 선택과 결정, 심지어는 좋아하는 것들 마저도 나를 배신하는것 같다 의심될 때에 오랫동안 읽고 사랑해온 이 잡지는 내 생각이 옳았다며 대신 주장해주는 것만 같았다. 오보이!와 함께 완성된 주관과 기호는 여전히 나를 지탱한다. 책장을 정리하며 오래 지난 과월호들을 읽는데 그때의 내가 꾸던 꿈이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오보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과 특집 기사들은 나의 꿈이고 버팀목이다. 좋아하던 것이 뭐였는지 다 잊어버린 것만 같은 20대 중반 대학생이 된 나는 아직도 오보이!를 보면서 꿈을 꾼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아 우울해진 나도 해가 쨍하게 비추는 낮에 볕을 받고 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남은 의욕이라곤 없이 방구석에서 슬퍼하던 내가 보내는 밤이 아무리 길어도 매달 해는 뜨고 내가 원한다면 박차고 나가 햇볕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책장에 쟁여둘 수도 있다니!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저의 주관을 완성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박하게나마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며 꿈을 꾼 1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오보이!가 함께했습니다. 제가 보낸 중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러 학생들이 오보이!와 함께 의미 있는 사유를 해보고 유쾌한 꿈을 꾸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오보 이!처럼 멋지고 의미 있는 힘을 매거진과 사진으로 전달하고 싶단 꿈을 꿔요. 오래 오래 이 솔라 파워를 많은 독자들, 동물 친구들, 지구에게 부탁드려요!
사슴은 철조망과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 허민선
그곳에 가면 사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북서울 꿈의 숲으로 갔다. 남편은 어릴 적 소풍을 갔던 곳이라며 반가워했다. 옛날 에는 드림랜드라는 놀이공원이었단다. 드림이라는 어감 때문인지 드 럼 소리가 기억 속에서 둥둥거리며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이 눈보라 처럼 몰아쳤다. <늑대아이>에서 늑대가 어떤 동물인지, 자기가 늑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갇혀 있는 늑대에게 다가가 대면하는 장면. <스탠 바이 미>에서 레일로드 위에 앉아 만화책을 보다가 그곳을 지 나는 사슴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비밀로 하는 장면. < 쉰들러 리스트>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알려진)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가 흑백화면 속에서 컬러라이즈되던 장면. 쉰들러는 그 아이에게 서쉽게눈을떼지못한다.그아이가험하게쏟아지는총소리를뚫고 종종걸음으로걷다가걷다가다다른곳.그곳은침대밑좁은틈이었다. 숨은 채로 숨죽이듯 귀를 막는 그 장면까지.
오보이!라는 감정 감탄사를 입김처럼 내쉬며, 나를 더 작은 위치에 놓 아본다. 작은 점 하나가 되어야 연결될 수 있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보이! 덕분에 함께 살았던 반려견들이, 첫 조카와 처음으로 미끄럼 틀을 탔던 순간이, 오보이 스튜디오에 초대되어 찍은 새로운 가족사진과 더불어 기록될 수 있었다. 스노글로브 속 하얀 늑대와 눈을 맞추는 것처럼 그때의 나와 주파수를 맞춰본다. 감정의 날씨가 달라진다. 사슴을 보려면 철조망도 시야에 함께 들어왔다. 같이 찍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본 다큐에서는 사진가가 철조망의 한칸을 펜치로 끊었다. 그리고 그안에다 카메라를 넣은채 호랑이를 가까이 가까이 찍고 있었다. 그잔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사슴을 만날수 있어 좋았지만, 사슴들은 그곳을 고요히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보이! 는 내가 되살림이나 굿윌스토어를 찾아 소비하는 것처럼 취향과 신념을 반영하는 미닝아웃 이기도하다.
오래 전 산 아래를 걷다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생쥐를 보았다. 되돌아가 나뒹구는 플라타너스 잎 하나를 (시체를 싸매는 멱목처럼) 덮어 주었다. 그러나바람이 다시 불었고 그잎은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듯 날아 다녔다. 생쥐는 제자리에 계속 굳어 있었다. 나는 한번더 잎을 덮어주려다가 말았다. cctv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보일것 같아서. 그때 그생쥐는 아직도 내마음의 책장을 문진처럼 누르고 있다. 동네에 북서울 미술관이 있다. 채널을 돌리다 뉴스에서 그 미술관의 cctv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미술가가 40kg의 천사상을 텅빈 전시공간 맨 안쪽 구석에 일부러, 쓰러뜨려 놓았는데 그 천사상이 일으켜져 있어 cctv를 돌려보니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어렵게 어렵게, 세워놓은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네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나는 쓰러진 천사상을 일으켜 놓은 분들이 실재하는 천사처럼 느껴져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오 보이!
* 기사 전문은 OhBoy! No.113 ‘12th Annivers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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