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드라마나 영화에 ‘동물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특히 사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의 경우, 추격이나 전투 장면에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모습이 담기기도 한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모형을 이용해 대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동물로 촬영을 하는 ‘저렴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말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수 있다는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도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촬영 방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동물의 상태와 무관하게 ‘그 장면만 찍으면 된다’는 태도가 관습처럼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후 세상을 떠난 퇴역 경주마 ‘까미’는 그 악습에 희생된 동물 중 하나다. 까미가 촬영한 것은 이성계의 낙마 장면이었다. 하지만 배우가 단순히 말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의 몸이 바닥에서 90도 가까이 들리며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듯이 연출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잘 달리던 말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였다. 동물자유연대가 해당 장면에서의 동물 학대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몇 시청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만큼 실제 동물에게 행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가혹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 영상으로 확인된 실상은 더욱 참혹했다. 까미의 발목에는 와이어가 묶여 있었고, 빠르게 달리게 하다가 뒤에 있던 스태프들이 줄을 잡아 까미를 강제로 넘어뜨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과정에서 까미는 뒷발을 비롯한 몸체가 공중으로 들리고 목이 꺾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넘어진 자리에 쓰러져서 다리를 떨며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까미를 타고 있던 스턴트 배우도 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촬영 직후 스태프들은 쓰러진 배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갔지만 까미에게 다가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까미가 그날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호소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물자유연대는 KBS에 공식적으로 해당 말의 생존 여부와 안전 확인을 요청했고, 그 결과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말의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답변과 함께, 그 말이 은퇴한 경주마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퇴역 경주마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뒤따랐다. 경주마는 성적에 따라 활동 기간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4세 이전에 은퇴를 한다. 25년에서 30년가량인 말의 기대수명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약 30%가 일반 승용마로 전환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추적이 되지 않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그 이후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심한 부상을 입은 경우 2~3일 만에 도축되는 암묵적 관행이 있고, 그 외에는 레저 산업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상업적으로 이용된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까미가 그중 하나였듯 말이다.
이 일은 그저 말 한 마리의 안타까운 죽음에 그칠 수 없었다. 방송 출연 동물의 보호, 복지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 국민들이 힘을 실었다. 논란이 제기된지 2주여 만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및 미디어 촬영 시 출연하는 동물에 대한 보호, 복지 제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각종 촬영 현장의 출연 동물에게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 협의회’를 구성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방송통신위원회, KBS, JTBC, MBN 등 영상·방송 매체 관계자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 한국애견연맹, 한국마사회 등과 같은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아직 더 많은 의견을 모으고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한 긴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관계자들 모두 방송을 위해 동물이 희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 기대된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촬영, 게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해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강제로 쓰러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다. 상황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없는 동물 배우의 촬영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더이상 제2의, 제3의 까미가 나오지 않도록 방송계의 동물 학대와 착취 관행의 근본적인 변화, 퇴역 경주마 복지 대책 수립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지길 희망한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17 ‘LI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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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드라마나 영화에 ‘동물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특히 사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의 경우, 추격이나 전투 장면에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모습이 담기기도 한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모형을 이용해 대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동물로 촬영을 하는 ‘저렴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말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수 있다는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도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촬영 방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동물의 상태와 무관하게 ‘그 장면만 찍으면 된다’는 태도가 관습처럼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후 세상을 떠난 퇴역 경주마 ‘까미’는 그 악습에 희생된 동물 중 하나다. 까미가 촬영한 것은 이성계의 낙마 장면이었다. 하지만 배우가 단순히 말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의 몸이 바닥에서 90도 가까이 들리며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듯이 연출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잘 달리던 말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였다. 동물자유연대가 해당 장면에서의 동물 학대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몇 시청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만큼 실제 동물에게 행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가혹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 영상으로 확인된 실상은 더욱 참혹했다. 까미의 발목에는 와이어가 묶여 있었고, 빠르게 달리게 하다가 뒤에 있던 스태프들이 줄을 잡아 까미를 강제로 넘어뜨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과정에서 까미는 뒷발을 비롯한 몸체가 공중으로 들리고 목이 꺾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넘어진 자리에 쓰러져서 다리를 떨며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까미를 타고 있던 스턴트 배우도 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촬영 직후 스태프들은 쓰러진 배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갔지만 까미에게 다가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까미가 그날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호소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물자유연대는 KBS에 공식적으로 해당 말의 생존 여부와 안전 확인을 요청했고, 그 결과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말의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답변과 함께, 그 말이 은퇴한 경주마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퇴역 경주마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뒤따랐다. 경주마는 성적에 따라 활동 기간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4세 이전에 은퇴를 한다. 25년에서 30년가량인 말의 기대수명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약 30%가 일반 승용마로 전환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추적이 되지 않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그 이후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심한 부상을 입은 경우 2~3일 만에 도축되는 암묵적 관행이 있고, 그 외에는 레저 산업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상업적으로 이용된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까미가 그중 하나였듯 말이다.
이 일은 그저 말 한 마리의 안타까운 죽음에 그칠 수 없었다. 방송 출연 동물의 보호, 복지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 국민들이 힘을 실었다. 논란이 제기된지 2주여 만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및 미디어 촬영 시 출연하는 동물에 대한 보호, 복지 제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각종 촬영 현장의 출연 동물에게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 협의회’를 구성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방송통신위원회, KBS, JTBC, MBN 등 영상·방송 매체 관계자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 한국애견연맹, 한국마사회 등과 같은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아직 더 많은 의견을 모으고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한 긴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관계자들 모두 방송을 위해 동물이 희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 기대된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촬영, 게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해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강제로 쓰러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다. 상황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없는 동물 배우의 촬영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더이상 제2의, 제3의 까미가 나오지 않도록 방송계의 동물 학대와 착취 관행의 근본적인 변화, 퇴역 경주마 복지 대책 수립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지길 희망한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17 ‘LI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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