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이 세상에 누구로, 무엇으로 태어나는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더 소중한 생명과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생명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모든 생명의 수는 단 하나씩이지만 과연 그 생명들의 무게는 모두 같은가. 반려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실험동물들을 향한 착취와 차별의 현실을 통해 생각해보는 동물권과 생명 이야기.
<LIFE>는 이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누구로, 무엇으로 태어나는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마치 특권이라도 되는 듯 다른 생명들을 차별하고 착취합니다. 동물들은 우리가 먹고 입고 타고 구경하고 실험하기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거나 애써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삶을 위해 갇히고 고통을 당하며 살을 내어주는 동물들의 삶은 당연한 것일까요? 내가 누군가의 음식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누군가의 실험대상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면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별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 당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반려동물
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의 수와 반려동물 산업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분양, 품종, 사료, 용품 시장의 규모는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며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을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성장중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동물 사랑을 주창하며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의 이미지를 이용해 성장을 거듭하는 반려동물 산업에 관련되어 있거나 해당산업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대부분이 반려동물 개체수 증가와 분양, 유기 학대 등을 통해 동물권의 후퇴와 동물 학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부인한다. 반려동물산업은 동물학대와 동물복지의 경계선 어딘가에 존재하고 위치하기에 더더욱 애매하고 위험하다. 의도와 상관없이 제품과 콘텐츠가 동물권에 반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으며 진정성 있는 동물권에 대한 메시지도 논란과 반론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반려동물 산업은 타산업들과 정확하게 마찬가지로 매출의 지속적인 성장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기 마련이다. 반려동물 산업은 부인할 수 없는 이런 상업적 정체성 위에서 종종 왜곡되거나 모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명인을 내세운 반려동물 분양 마케팅이나 동물보호소를 위장한 분양업체의 상술, 상업적 목적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부 동물의료인들의 행태등이 이에 포함된다. 수많은 반려동물이 공장의 제품처럼 만들어지고, 팔리고, 버려지고, 죽는다. 산업의 주체와 대중들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반려동물들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축산동물
공장식축산은 지구 환경과 인류의 건강, 동물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산업중의 하나이다. 더 효율적이고 저렴하며 빠르게 육류 제품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개발된 공장식축산 시스템은 더좁은 공간에 동물들을 몰아넣고 그에 따른 비위생과 질병의 문제 보완을 위한 과다한 항생제 투여, 자연 수명을 존중하지 않는 빠른 도축 등을 통해 동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물론, 소와 기타 축산동물들이 내뿜는 메탄으로 인한 치명적인 토양 오염, 과도한 육식을 조장함에 따라 다양한 성인병을 유발하는 문제, 가축을 키우기 위한 토지와 가축을 먹일 곡식 생산을 위한 경작지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외면한채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육식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 우유를 마신다는 건 건강함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유명인들이 방송에서 고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털털하고 솔직한 느낌을 준다. 한명의 연예인이 방송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는 장면 하나로 해당 육류가 날개 돋힌듯 팔리기도 한다.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고 지구 환경을 망치며, 동물들을 고통속으로 몰아넣는 육식과 유제품 섭취의 폐단을 업계는 교묘하고 집요하게 방송과 다양한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기만한다. 인류가 지금처럼 고기와 유제품을 먹는다면 환경재앙은 더 빨리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초원에서 한가롭고 평화롭게 풀을 뜯는 우리가 생각하는 소들의 모습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험동물
우리는 의료와 제약 분야, 우리가 직접 피부에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일부 가정용품에 한해 동물실험이 행해 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공산품과 동물실험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제품들에도 그 원료나 중간 과정에 쓰이는 재료등에 다각적으로 동물실험이 행해진다.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과도하거나 필요없는 동물실험은 자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문가와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반적인 동물권 인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동물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동물실험을 줄이거나 금지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동물들의 운명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될만큼의 변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반려동물산업이나 농장동물처럼 실험동물들도 인간에게 필요한 제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히 실험동물은 높은 수준의 품질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진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평생 실내에서 실험만 당하다가 죽어가는 동물들을 당연하게 생각할만큼 인간은 오만하고 무감각하다. 당신이 거기 앉아서 그렇게 실험동물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쓰고 앉아있는 것도 모두 그동안의 동물실험 덕분이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야생동물
인간 사회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생태계를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바람직 하겠지만 많은 야생동물들이 타의에 의해 문명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삶을 강요받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삶이 불안하고 피폐함은 물론이며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의 삶 역시 인간 문명에 의해 위협받는다.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새들, 자동차에 치여 불의에 삶을 마감하는 노루, 삵, 고양이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시에 내려왔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멧돼지들의 비극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오락을 위해 평생을 좁은 풀에서 살다가 죽는 돌고래들, 휴대폰에 들어가는 원료를 위해 정글을 불태울 때 죽어가는 오랑우탄들, 기후위기로 녹아내리는 빙산 때문에 몇백킬로를 헤엄치다 마르고 지쳐 죽는 새끼 북극곰들, 대형 정유회사가 흘린 오일에 온몸이 새까만 기름속에 파묻혀 죽어가는 바다새와 펭귄, 수달, 거북이들, 그저 순간의 쾌락과 오만한 본성의 트로피를 위해 인간의 총탄에 죽어가는 코끼리, 사자, 기린들. 야생동물이란 무릇 야생에서 살아가야겠지만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은 동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약간의 편의를 위해,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야생동물들은 죽어간다. 어쩌면 우리가 포기하고 살아도 괜찮은 아주 작은 것들을 얻기 위해.
* 기사 전문은 OhBoy! No.117 ‘LI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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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이 세상에 누구로, 무엇으로 태어나는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더 소중한 생명과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생명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모든 생명의 수는 단 하나씩이지만 과연 그 생명들의 무게는 모두 같은가. 반려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실험동물들을 향한 착취와 차별의 현실을 통해 생각해보는 동물권과 생명 이야기.
<LIFE>는 이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누구로, 무엇으로 태어나는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마치 특권이라도 되는 듯 다른 생명들을 차별하고 착취합니다. 동물들은 우리가 먹고 입고 타고 구경하고 실험하기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거나 애써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삶을 위해 갇히고 고통을 당하며 살을 내어주는 동물들의 삶은 당연한 것일까요? 내가 누군가의 음식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누군가의 실험대상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면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별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 당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반려동물
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의 수와 반려동물 산업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분양, 품종, 사료, 용품 시장의 규모는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며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을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성장중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동물 사랑을 주창하며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의 이미지를 이용해 성장을 거듭하는 반려동물 산업에 관련되어 있거나 해당산업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대부분이 반려동물 개체수 증가와 분양, 유기 학대 등을 통해 동물권의 후퇴와 동물 학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부인한다. 반려동물산업은 동물학대와 동물복지의 경계선 어딘가에 존재하고 위치하기에 더더욱 애매하고 위험하다. 의도와 상관없이 제품과 콘텐츠가 동물권에 반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으며 진정성 있는 동물권에 대한 메시지도 논란과 반론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반려동물 산업은 타산업들과 정확하게 마찬가지로 매출의 지속적인 성장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기 마련이다. 반려동물 산업은 부인할 수 없는 이런 상업적 정체성 위에서 종종 왜곡되거나 모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명인을 내세운 반려동물 분양 마케팅이나 동물보호소를 위장한 분양업체의 상술, 상업적 목적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부 동물의료인들의 행태등이 이에 포함된다. 수많은 반려동물이 공장의 제품처럼 만들어지고, 팔리고, 버려지고, 죽는다. 산업의 주체와 대중들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반려동물들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축산동물
공장식축산은 지구 환경과 인류의 건강, 동물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산업중의 하나이다. 더 효율적이고 저렴하며 빠르게 육류 제품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개발된 공장식축산 시스템은 더좁은 공간에 동물들을 몰아넣고 그에 따른 비위생과 질병의 문제 보완을 위한 과다한 항생제 투여, 자연 수명을 존중하지 않는 빠른 도축 등을 통해 동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물론, 소와 기타 축산동물들이 내뿜는 메탄으로 인한 치명적인 토양 오염, 과도한 육식을 조장함에 따라 다양한 성인병을 유발하는 문제, 가축을 키우기 위한 토지와 가축을 먹일 곡식 생산을 위한 경작지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외면한채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육식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 우유를 마신다는 건 건강함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다. 유명인들이 방송에서 고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털털하고 솔직한 느낌을 준다. 한명의 연예인이 방송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는 장면 하나로 해당 육류가 날개 돋힌듯 팔리기도 한다.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고 지구 환경을 망치며, 동물들을 고통속으로 몰아넣는 육식과 유제품 섭취의 폐단을 업계는 교묘하고 집요하게 방송과 다양한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기만한다. 인류가 지금처럼 고기와 유제품을 먹는다면 환경재앙은 더 빨리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초원에서 한가롭고 평화롭게 풀을 뜯는 우리가 생각하는 소들의 모습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험동물
우리는 의료와 제약 분야, 우리가 직접 피부에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일부 가정용품에 한해 동물실험이 행해 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공산품과 동물실험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제품들에도 그 원료나 중간 과정에 쓰이는 재료등에 다각적으로 동물실험이 행해진다.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과도하거나 필요없는 동물실험은 자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문가와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반적인 동물권 인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동물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동물실험을 줄이거나 금지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동물들의 운명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될만큼의 변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반려동물산업이나 농장동물처럼 실험동물들도 인간에게 필요한 제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히 실험동물은 높은 수준의 품질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진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평생 실내에서 실험만 당하다가 죽어가는 동물들을 당연하게 생각할만큼 인간은 오만하고 무감각하다. 당신이 거기 앉아서 그렇게 실험동물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쓰고 앉아있는 것도 모두 그동안의 동물실험 덕분이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야생동물
인간 사회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생태계를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바람직 하겠지만 많은 야생동물들이 타의에 의해 문명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삶을 강요받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삶이 불안하고 피폐함은 물론이며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의 삶 역시 인간 문명에 의해 위협받는다.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새들, 자동차에 치여 불의에 삶을 마감하는 노루, 삵, 고양이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시에 내려왔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멧돼지들의 비극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오락을 위해 평생을 좁은 풀에서 살다가 죽는 돌고래들, 휴대폰에 들어가는 원료를 위해 정글을 불태울 때 죽어가는 오랑우탄들, 기후위기로 녹아내리는 빙산 때문에 몇백킬로를 헤엄치다 마르고 지쳐 죽는 새끼 북극곰들, 대형 정유회사가 흘린 오일에 온몸이 새까만 기름속에 파묻혀 죽어가는 바다새와 펭귄, 수달, 거북이들, 그저 순간의 쾌락과 오만한 본성의 트로피를 위해 인간의 총탄에 죽어가는 코끼리, 사자, 기린들. 야생동물이란 무릇 야생에서 살아가야겠지만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은 동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약간의 편의를 위해,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야생동물들은 죽어간다. 어쩌면 우리가 포기하고 살아도 괜찮은 아주 작은 것들을 얻기 위해.
* 기사 전문은 OhBoy! No.117 ‘LIF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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