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다희
나는 베를린에 산다. 이곳에 안멜둥, 그러니까 정식으로 거주지 등록을 한 게 2017년이었으니 5년이 조금 넘었다. 이전엔 여행 잡지의 에디터로 10년쯤 일했다. 내가 일한 잡지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나 편리한 여행 루트를 소개하기 보단 여행지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봤다. 런던에선 영국식 정원 가꾸는 일을 배우고 산세바스티안에선 비밀 미식 클럽에 끼어 음식을 맛봤으며 코펜하겐에선 자전거를 타고 재생산업단지를 질주했다. 하와이의 식물학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댄서, 샌프란시스코의 IT 덕후, 치앙마이의 젊은 창작자들을 만나 이들의 하루를 따라 다녔다. 그렇게 세계 구석구석 쏘다니다 보니 서울이 아닌 나와궁합이 더 잘 맞는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원하는 일상이 있는 곳. 그게 바로 베를린이었고, 한달이든 몇 년이든 머무는 여행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넥스트 시티 가이드’를 시작하게 됐다.
베를린을 사랑하게 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여행’ 때문이다. 독일은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유럽 지도를 살펴보자.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덴마크 등 총 9개국과 맞닿아 있다. 나는 종종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면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한다. 오고 가는 기차 소식이 담긴 전광판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암스테르담,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남부 도시인 뮌헨에 살면 목적지가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자그레브가 된다! 항공편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올해는 꼭, 독일을 여행해야 한다. 먼저 독일 정부가 통 크게 쏜 ‘9유로 티켓’부터 확인해보자. 9유로 티켓은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정액 교통권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해 연료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됐다. 놀라운 것은 각 도시 및 지역 내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독일 철도청이 운영하는 다른 지방을 연결하는 광역철도와 그곳의 전철과 버스, 트램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티켓에 적혀 있는대로 ‘도이치란트바이트(독일 전역)’을 이 티켓 한 장으로 여행할 수 있다. 고속 열차인 ICE와 IC, 유럽간 고속열차인 EC는 제외지만, 일반 열차를 타고 천천히 흐르는 창 밖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물론 북해와 동해, 알프스 지역 등 유명 휴양지로 향하는 기차는 혼잡할 수 밖에 없지만 주중에 이용하면 훨씬 쾌적하다. 저렴한 것은 물론 좀더 친환경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차 여행이 주는 기쁨은 두배가 된다. 9유로 티켓은 6월부터 8월까지 구입할 수 있다.
두번째는 ‘카셀 도쿠멘타’ 때문이다. 카셀 도쿠멘타는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 미술의 기록’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카셀 도큐멘타는 1995년 독일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출발했다. 당시 히틀러에 의해 퇴폐 미술로 취급 받던 전위적이고 급진적인 모던 아트(186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미술과 건축)를 다시 소개하고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를 예술을 통해 재건, 부흥하기 위해 기획됐다. 올해로 15번째를 맞은 ‘도쿠멘타 15’는 6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총 100일동안 열려 ‘100일의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 되어 미술 작품은 물론 설치, 퍼포먼스, 워크숍, 좌담회, 영화 상영 등이곳곳에서 열린다. 카셀을 돌아본 후에는 베를린으로 향한다. 때맞춰 열리는 베를린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 미술의 매력, 명실상부 독일의 대표 아트 시티인 베를린에 흠뻑 빠져볼 수 있으니까. 베를린 비엔날레는 6월 11일부터 9월 18일까지 열린다.
마지막은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다.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다. 올해 초,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만에 옥토버페스트 재개장 소식을 듣곤 가슴이 찡했다. 마치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신호 같았다. 적게는 2500명에서 많게는 1만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텐트가 14개나 세워지는 옥토버페스트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금지됐다. 옥토버페스트를 그저 1리터들이 거대한 맥주잔을 들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판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바이에른 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담은 축제다.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실컷 마신 후엔 해독이 필요할 터. 뮌헨 근교 알프스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과 마을을 즐기는 건 필수 코스다.
옥토버페스트는 9월 17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다. 10월부턴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세계가 문을 열고 많은 이들이 이동하는 휴가철이 끝나고 나면 코로나 그래프가 급경사를 이룬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유럽은 최소한 여름 만큼은 여행의 자유를 가졌고 대신 겨울엔 단단히 통제했다. 기존에 비해 위험도가 낮아지곤 있지만 겨울엔 기본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또 어떤 변이가 나타날 지 모른다. 위드 코로나 시대엔 이게 여행의 국룰이다. 여름엔 한껏 여행하고 겨울엔 집콕하라.
서다희
베를린에서 장기 여행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인 <넥스트 시티 가이드> 를 진행하고 있다.
instagram @nextcity | www.nextcityguide.com
* 기사 전문은 OhBoy! No.116 'POST PANDEMIC TRAVEL TREND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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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다희
나는 베를린에 산다. 이곳에 안멜둥, 그러니까 정식으로 거주지 등록을 한 게 2017년이었으니 5년이 조금 넘었다. 이전엔 여행 잡지의 에디터로 10년쯤 일했다. 내가 일한 잡지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나 편리한 여행 루트를 소개하기 보단 여행지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봤다. 런던에선 영국식 정원 가꾸는 일을 배우고 산세바스티안에선 비밀 미식 클럽에 끼어 음식을 맛봤으며 코펜하겐에선 자전거를 타고 재생산업단지를 질주했다. 하와이의 식물학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댄서, 샌프란시스코의 IT 덕후, 치앙마이의 젊은 창작자들을 만나 이들의 하루를 따라 다녔다. 그렇게 세계 구석구석 쏘다니다 보니 서울이 아닌 나와궁합이 더 잘 맞는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원하는 일상이 있는 곳. 그게 바로 베를린이었고, 한달이든 몇 년이든 머무는 여행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넥스트 시티 가이드’를 시작하게 됐다.
베를린을 사랑하게 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여행’ 때문이다. 독일은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유럽 지도를 살펴보자.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덴마크 등 총 9개국과 맞닿아 있다. 나는 종종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면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한다. 오고 가는 기차 소식이 담긴 전광판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암스테르담,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 남부 도시인 뮌헨에 살면 목적지가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자그레브가 된다! 항공편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올해는 꼭, 독일을 여행해야 한다. 먼저 독일 정부가 통 크게 쏜 ‘9유로 티켓’부터 확인해보자. 9유로 티켓은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정액 교통권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의해 연료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됐다. 놀라운 것은 각 도시 및 지역 내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독일 철도청이 운영하는 다른 지방을 연결하는 광역철도와 그곳의 전철과 버스, 트램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티켓에 적혀 있는대로 ‘도이치란트바이트(독일 전역)’을 이 티켓 한 장으로 여행할 수 있다. 고속 열차인 ICE와 IC, 유럽간 고속열차인 EC는 제외지만, 일반 열차를 타고 천천히 흐르는 창 밖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물론 북해와 동해, 알프스 지역 등 유명 휴양지로 향하는 기차는 혼잡할 수 밖에 없지만 주중에 이용하면 훨씬 쾌적하다. 저렴한 것은 물론 좀더 친환경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차 여행이 주는 기쁨은 두배가 된다. 9유로 티켓은 6월부터 8월까지 구입할 수 있다.
두번째는 ‘카셀 도쿠멘타’ 때문이다. 카셀 도쿠멘타는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 미술의 기록’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카셀 도큐멘타는 1995년 독일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출발했다. 당시 히틀러에 의해 퇴폐 미술로 취급 받던 전위적이고 급진적인 모던 아트(186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미술과 건축)를 다시 소개하고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를 예술을 통해 재건, 부흥하기 위해 기획됐다. 올해로 15번째를 맞은 ‘도쿠멘타 15’는 6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총 100일동안 열려 ‘100일의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 되어 미술 작품은 물론 설치, 퍼포먼스, 워크숍, 좌담회, 영화 상영 등이곳곳에서 열린다. 카셀을 돌아본 후에는 베를린으로 향한다. 때맞춰 열리는 베를린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 미술의 매력, 명실상부 독일의 대표 아트 시티인 베를린에 흠뻑 빠져볼 수 있으니까. 베를린 비엔날레는 6월 11일부터 9월 18일까지 열린다.
마지막은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다.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다. 올해 초,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만에 옥토버페스트 재개장 소식을 듣곤 가슴이 찡했다. 마치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신호 같았다. 적게는 2500명에서 많게는 1만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텐트가 14개나 세워지는 옥토버페스트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금지됐다. 옥토버페스트를 그저 1리터들이 거대한 맥주잔을 들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판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바이에른 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담은 축제다.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실컷 마신 후엔 해독이 필요할 터. 뮌헨 근교 알프스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과 마을을 즐기는 건 필수 코스다.
옥토버페스트는 9월 17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다. 10월부턴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세계가 문을 열고 많은 이들이 이동하는 휴가철이 끝나고 나면 코로나 그래프가 급경사를 이룬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유럽은 최소한 여름 만큼은 여행의 자유를 가졌고 대신 겨울엔 단단히 통제했다. 기존에 비해 위험도가 낮아지곤 있지만 겨울엔 기본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또 어떤 변이가 나타날 지 모른다. 위드 코로나 시대엔 이게 여행의 국룰이다. 여름엔 한껏 여행하고 겨울엔 집콕하라.
서다희
베를린에서 장기 여행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인 <넥스트 시티 가이드> 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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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전문은 OhBoy! No.116 'POST PANDEMIC TRAVEL TREND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16 MAY JU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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