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하연
9년 반 동안 여행잡지의 편집장을 했던 시절, 여행을 밥 먹듯 다녔다. 출장을 다녀온 짐을 풀기 전에 마감을 하고 마감을 하면 아직 다 풀지도 못한 가방을 다시 싸고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여행이 일이었을 때, 남들이 부러워할 때마다 “일로 다녀봐. 그게 다 좋기만한 게 아냐.” 당시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출장 아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팬데믹 이후 여행은 멈췄고, 나는 잠시 실업자가 되었다. 나 뿐 아니라 여행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여행뿐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삶이 잠시 멈춘 것만 같았다. 모 항공사의 기내지를 만들면서 다시 일을 시작 했지만, 여행을 할 수 없었으니 답답함은 매한가지였다. 여행이 풀리기 시작한 얼마 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다시 여행가방을 쌌다. 1년에 5-6번 해외로 출장을 다녔었는데 2년여 만에 나가는 여행을 앞두고 마치 첫 해외 여행이자, 유럽 여행을 떠나던 25년 전 그 날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인천에 제 2공항청사가 생긴 것도 잊은 채, 습관적으로 1공항으로 갔고, (다행히 항공편은 제1공항이었다.) 체크인을 하면서도 질문이 많아졌다. “프랑크푸르트 환승해서 리스본 가는데 짐은 어디서 찾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출국하기 전 확인해야하는 사항이 많아졌다. 목적지에 따라 출국 전 PCR 검사를 해야할지, 신속항원검사로 해도 되는지, 그 외에 증명서나 서류는 뭐가 필요한지 체크했다. 몇 달 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더니 3차 백신접종 증명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데, 포르투갈 입국 규정에 백신접종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접종한 병원에서 서류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항공사에서 3차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했다. 다행히 하드 카피는 필요 없어서 앱으로 통과.
결론적으로 팬데믹 시대에 여행은 훨씬 번거로워졌다. 항공비는 유럽, 미주 장거리는 200만원 이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올라갔고, 호텔비도 상승했다. 혹시나 출발 전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대비해서 예약 전 환불 규정에 대해서 꼼꼼히 체크해야했고, (호텔만 찾아놓고 예약은 신속항원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 완료했다.) 여행지에서 PCR이나 안티젠 검사를 받을 장소 등도 미리 알아놔야했다. 팬데믹 시대에 나의 첫 해외 여행지로 포르투갈을 정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몇 년 간 둔해진 여행 감각을 다시 찾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여행지 보다는 한번쯤 가봐서 조금은 익숙한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파리가 떠올랐지만 파리에 여행객이 개떼처럼 몰렸다는 뉴스를 보고 포기했다. 오랜 기간 지쳐있었고 힐링이 필요했던지라 바다를 끼고 있는 유럽의 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도 생각했지만 번잡스러운 이탈리아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보다는 조금 정적인 도시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곳은 리스본과 포르투. 언젠가 꼭 다시 가겠다던 인생 여행지 중 하나였던 곳이었는데 때마침 포르투갈을 가고 싶어하던 동행자가 생겨서 망설임 없이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해서 6년 전 갔던, 좋아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다. 희미해졌을 줄 알았는데 골목의 집들과 그 집에 새겨진 아줄레주 타일 무늬까지 그대로 기억났다. 리스본 바이샤의 해물밥집 주인 아저씨의 “메뉴는 오로지 해물밥 하나야.” 라는 멘트도, 포르투 히베이라 광장의 노천 카페 웨이터들의 활기찬 미소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순백의 햇살은 아름다웠고, 강가에 나와서 노을을 맞이하며 벌러덩 누워있는 청년들이 내뿜는 젊음의 기운은 싱그러웠다. 달라진 것도 있다. 28번 트램이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때, 차와 사람이 부딪치지 않을까 예전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게됐고, (알아서 잘 다니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빼곡하게 적어놨던 ‘TO DO LIST’의 절반을 덜어내고,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SPA 브랜드에서 여행지에서 입을 옷들을 쇼핑하고, 일정 중 2,3일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식사를 했다. 리스본 포르투 일정에 소도시를 끼워넣었던 건 신의 한 수였다. 리스본에서는 한 시간 거리의 오비두스, 포르투에서는 한 시간 반 거리의 아베이루, 코스타노바를 갔는데 여행 속의 여행처럼 작고 귀여운 소도시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모든 것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여행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많이 번거롭다. 출발 전 준비해야할 것도 많아졌고 출입국 절차는 까다롭거나 오래 걸리며 무엇보다 업데이트 되는 정보를 얻는 통로가 불확실했다. 항공은 연착되기 일쑤고 항공비와 호텔비는 오를만큼 올랐다.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유럽에서도 물가가 싼 편인데도 이번 여행에서는 별로 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싼 것은 오로지 와인뿐~) 포르투갈에는 예전에 없던 도시세가 생겨서 호텔마다 하루에 일인당 1-2유로를 받는다. 가장 힘든 건 여행 중 항상 따라다니던 일말의 불안감이다. 혹시나 코로나19에 걸리면? 물론 예전처럼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혹시나 모를 위급 사항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체류기간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절차들(새로운 회사에 욕을 먹지 않을지도 걱정)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하는 생각들이 늘 머리 속 한 구석에 있었다. 이번 여행 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건 약이었다. 진통제, 해열제, 파스 등등 여느 때와 달리 비상약을 충분히 챙겼다. 비행기에선 빛의 속도로 밥을 먹었고, 여행 중 피곤해서 기침이라도 할 때마다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이 있나 없나 체크했고, 정말 의심이 될 땐 키트 검사도 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준비해야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날 신속항원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이번 여행은 무사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구나 안도할 수 있었다. 시간, 비용, 노력이 많이 드는 여행. 앞으로 여행은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더 많이 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든 안전을 최우선사항으로 생각해야한다. 그래도 이 여행을 계속 하겠는가? 묻는다면 당연히 ‘YES!’ 힘들게 얻으면 그만큼 값지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도우루 강을 떠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SUPERBOCK 맥주 한 잔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수십 번, 수백 번, 나는 짐을 쌀 것이다.
여하연
여행잡지 <더트래블러>와 대한한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이었던 여하연은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여기며 매달 어디론가 떠날 꿈을 꾼다. 현재는 건강한 로컬 먹거리를 파는 일을 하며 식재료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16 'POST PANDEMIC TRAVEL TREND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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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하연
9년 반 동안 여행잡지의 편집장을 했던 시절, 여행을 밥 먹듯 다녔다. 출장을 다녀온 짐을 풀기 전에 마감을 하고 마감을 하면 아직 다 풀지도 못한 가방을 다시 싸고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여행이 일이었을 때, 남들이 부러워할 때마다 “일로 다녀봐. 그게 다 좋기만한 게 아냐.” 당시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출장 아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팬데믹 이후 여행은 멈췄고, 나는 잠시 실업자가 되었다. 나 뿐 아니라 여행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여행뿐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의 삶이 잠시 멈춘 것만 같았다. 모 항공사의 기내지를 만들면서 다시 일을 시작 했지만, 여행을 할 수 없었으니 답답함은 매한가지였다. 여행이 풀리기 시작한 얼마 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다시 여행가방을 쌌다. 1년에 5-6번 해외로 출장을 다녔었는데 2년여 만에 나가는 여행을 앞두고 마치 첫 해외 여행이자, 유럽 여행을 떠나던 25년 전 그 날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인천에 제 2공항청사가 생긴 것도 잊은 채, 습관적으로 1공항으로 갔고, (다행히 항공편은 제1공항이었다.) 체크인을 하면서도 질문이 많아졌다. “프랑크푸르트 환승해서 리스본 가는데 짐은 어디서 찾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출국하기 전 확인해야하는 사항이 많아졌다. 목적지에 따라 출국 전 PCR 검사를 해야할지, 신속항원검사로 해도 되는지, 그 외에 증명서나 서류는 뭐가 필요한지 체크했다. 몇 달 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더니 3차 백신접종 증명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데, 포르투갈 입국 규정에 백신접종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접종한 병원에서 서류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항공사에서 3차 백신접종증명서를 요구했다. 다행히 하드 카피는 필요 없어서 앱으로 통과.
결론적으로 팬데믹 시대에 여행은 훨씬 번거로워졌다. 항공비는 유럽, 미주 장거리는 200만원 이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올라갔고, 호텔비도 상승했다. 혹시나 출발 전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대비해서 예약 전 환불 규정에 대해서 꼼꼼히 체크해야했고, (호텔만 찾아놓고 예약은 신속항원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 완료했다.) 여행지에서 PCR이나 안티젠 검사를 받을 장소 등도 미리 알아놔야했다. 팬데믹 시대에 나의 첫 해외 여행지로 포르투갈을 정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몇 년 간 둔해진 여행 감각을 다시 찾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여행지 보다는 한번쯤 가봐서 조금은 익숙한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파리가 떠올랐지만 파리에 여행객이 개떼처럼 몰렸다는 뉴스를 보고 포기했다. 오랜 기간 지쳐있었고 힐링이 필요했던지라 바다를 끼고 있는 유럽의 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도 생각했지만 번잡스러운 이탈리아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보다는 조금 정적인 도시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곳은 리스본과 포르투. 언젠가 꼭 다시 가겠다던 인생 여행지 중 하나였던 곳이었는데 때마침 포르투갈을 가고 싶어하던 동행자가 생겨서 망설임 없이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해서 6년 전 갔던, 좋아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다. 희미해졌을 줄 알았는데 골목의 집들과 그 집에 새겨진 아줄레주 타일 무늬까지 그대로 기억났다. 리스본 바이샤의 해물밥집 주인 아저씨의 “메뉴는 오로지 해물밥 하나야.” 라는 멘트도, 포르투 히베이라 광장의 노천 카페 웨이터들의 활기찬 미소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순백의 햇살은 아름다웠고, 강가에 나와서 노을을 맞이하며 벌러덩 누워있는 청년들이 내뿜는 젊음의 기운은 싱그러웠다. 달라진 것도 있다. 28번 트램이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때, 차와 사람이 부딪치지 않을까 예전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게됐고, (알아서 잘 다니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빼곡하게 적어놨던 ‘TO DO LIST’의 절반을 덜어내고,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SPA 브랜드에서 여행지에서 입을 옷들을 쇼핑하고, 일정 중 2,3일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식사를 했다. 리스본 포르투 일정에 소도시를 끼워넣었던 건 신의 한 수였다. 리스본에서는 한 시간 거리의 오비두스, 포르투에서는 한 시간 반 거리의 아베이루, 코스타노바를 갔는데 여행 속의 여행처럼 작고 귀여운 소도시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모든 것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여행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많이 번거롭다. 출발 전 준비해야할 것도 많아졌고 출입국 절차는 까다롭거나 오래 걸리며 무엇보다 업데이트 되는 정보를 얻는 통로가 불확실했다. 항공은 연착되기 일쑤고 항공비와 호텔비는 오를만큼 올랐다.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유럽에서도 물가가 싼 편인데도 이번 여행에서는 별로 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싼 것은 오로지 와인뿐~) 포르투갈에는 예전에 없던 도시세가 생겨서 호텔마다 하루에 일인당 1-2유로를 받는다. 가장 힘든 건 여행 중 항상 따라다니던 일말의 불안감이다. 혹시나 코로나19에 걸리면? 물론 예전처럼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혹시나 모를 위급 사항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체류기간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절차들(새로운 회사에 욕을 먹지 않을지도 걱정)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하는 생각들이 늘 머리 속 한 구석에 있었다. 이번 여행 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건 약이었다. 진통제, 해열제, 파스 등등 여느 때와 달리 비상약을 충분히 챙겼다. 비행기에선 빛의 속도로 밥을 먹었고, 여행 중 피곤해서 기침이라도 할 때마다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이 있나 없나 체크했고, 정말 의심이 될 땐 키트 검사도 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준비해야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날 신속항원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이번 여행은 무사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구나 안도할 수 있었다. 시간, 비용, 노력이 많이 드는 여행. 앞으로 여행은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더 많이 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든 안전을 최우선사항으로 생각해야한다. 그래도 이 여행을 계속 하겠는가? 묻는다면 당연히 ‘YES!’ 힘들게 얻으면 그만큼 값지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도우루 강을 떠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SUPERBOCK 맥주 한 잔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수십 번, 수백 번, 나는 짐을 쌀 것이다.
여하연
여행잡지 <더트래블러>와 대한한공 기내지 <모닝캄> 편집장이었던 여하연은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여기며 매달 어디론가 떠날 꿈을 꾼다. 현재는 건강한 로컬 먹거리를 파는 일을 하며 식재료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16 'POST PANDEMIC TRAVEL TREND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16 MAY JU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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