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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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작가 김도훈 


독자가 있다면 ‘세상에 어디 이런 거짓말이 다 있냐’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피드는 언제나 새로 구입한 물건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그 사진을 모두 싣는다면 <오보이!> 두 달 치 정도는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특히 나는 옷을 좋아한다. 어찌나 옷을 좋아하는지 방 세 개의 옷장이 모두 옷으로 차 있다. 옷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왔는지를 과학적, 의학적, 사회학적으로 해석해보려는 나의 시도는 항상 실패했다. 내가 보기엔 그런 집착도 타고나는 것이다. 당신은 강남에 아파트가 다섯 채 있지만 항상 뱅뱅사거리의 뱅뱅에서 구입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알 수도 있다. 혹은 매달 원고료로 빠듯하게 살아가면서도 배송 온 발렌시아가 코트를 들고 “어째서 마감 중의 나는 이런 돈을 코트 한 벌에 퍼부을 만큼 대담해지는 것인가!”라며 꺼이꺼이 통곡하는 사람을 알 수도 있다. 당연히 나는 후자다. 당신도 후자일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대부분은 강남에 아파트 다섯 채가 없을 테니까, 후자가 맞다. 

그런데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나에게는 아주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이 있다. 우울증이다. 2년 전 어느 시점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사람은 스스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건물의 ‘정신의학과’ 간판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우울증의 증세는 우울감이 아니다. 한없는 절망감과 끝없는 무기력이다. 보통의 우울감이라면 그냥 아델 노래 몇 곡을 들으면 괜찮아지기도 한다. 우울증은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인 동시에 육체적인 문제다. 아니, 우리의 정신도 사실은 육체에 단단히 속박되어 있는 화학작용의 결과에 가까우니 그냥 ‘육체적인 문제’라고 일컫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인간은 생체기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가 내 두뇌 속 세로토닌의 수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인간이 어제 가졌던 삶의 기본적 즐거움이 오늘 갑자기 통째로 증발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울증에 걸리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도 할 수 없었다.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몸도 씻을 수 없었다. 타고난 몸을 어떻게든 조금 예뻐 보이게 만들고 싶은 욕망도 사라졌다. 일을 잠시라도 쉬고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건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출근을 하던 내 눈에 내가 보였다. 회사 건물 쇼윈도에 비친 내가 보였다. 머리카락은 헤어샵에 오랫동안 가지 않아 엉망으로 자랐다. 더 큰 문제는 옷이었다. 나흘째 같은 옷이었다. 나흘째 양말과 속옷 빼고는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건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1년간 단 한 벌의 옷도 새로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을 지를 힘도 없었다. 나는 사흘간 한 끼의 밥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사표를 썼다. 

나의 2년에 걸친 우울증 극복기를 여기에 요약해서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이걸 읽는 당신이 우울증을 탈출하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렉사프로 같은 이름의 약을 복용하고 겨우 상담을 받으며 이 병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없다. 당신은 이미 수백만 건의 조언을 읽고 보고 들은 적이 있다. 그중 최악은 “니가 운동을 안 해서 그래. 햇빛 좀 받으면서 운동을 해봐”일 것이다. 이 친절하고 예의 바른 말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얼마나 짜증 나고 경우 없게 들리는지 우울증 환자인, 혹은 우울증 환자였던 적이 있는 당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의 의학적 동료인 나까지 당신 각자의 투쟁에 감놔라 배놔라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2년에 걸친 우울증의 절정과 결말은 병원에서 찾아왔다. 완만하게 타고 넘던 파고가 지나치게 강해졌다. 반복되던 우울증은 중증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식사를 주문해서 먹는 일까지 지나치게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 정신 병동에 입원했다.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 사실 내 주변 사람들은 종종 “굳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까지 해야 해?”라고 조언하곤 한다. 우리는 정신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한국 사회에서 쏟아지는 냉랭한 편견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사람들 얼굴에서 떠오르는 ‘내 앞에 있는 이 자는 도대체 얼마나 미친 자인가?’라는 표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신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건 결코 죽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도와달라는 신호다. 만약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우울증을 고백한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당신을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믿는 친구가 있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병원 생활이 한 달 정도 흐른 어느 날 아침에 나는 환자복 바짓단을 걷었다. 바짓단을 살짝 걷는 게 어쩐지 더 예뻐 보였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환자복은 환자복이었다. 입원 초창기에 나는 그 못생긴 옷을 일주일에 한 번 겨우 갈아입었다. 몸에 뭐가 감기든 상관없었다. 그냥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됐다. 그런 내가 바짓단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옷을 입은 채로 실례를 하면 재빨리 벗겨서 세탁할 수 있기 위한 목적으로만 디자인된 병원복을 어떻게든 조금은 더 스타일리시하게 입으려고 애쓰는 순간, 갑자기 세로토닌이 다시 두뇌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괜찮았다. 괜찮아졌다. 괜찮아지고 있었다. 일주일 뒤 나는 퇴원 수속을 했다. 의사가 물었다. “기분이 어때요?”. 나는 답했다. “좀 이상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을 수가 있나요?”. 의사는 웃었다. 백만 번도 더 들은 대답이라는 표정이었다.

퇴원을 하자마자 내가 어디로 갔는지 고백한다면 분명 당신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나치게 기억을 꾸미는 것 아니냐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맞다. 글쟁이들은 에세이 하나를 잡지에 팔기 위해 삶의 기억들을 조금 과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나는 반포에 위치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퇴원 수속을 도우러 온 동생과 함께 택시를 탔다. 그리고 기사에게 말했다. “갤러리아요.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가주세요.”. 만약 당신이 아직도 이 글의 진위를 믿지 못한다면 나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보시라. 퇴원을 하자마자 갤러리아 백화점 셀린느 매장 벽 거울 앞에서 찍은 기념비적인 사진이 여전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온라인 금융 거래 사이트인 페이팔 계정에 접속한 상태로 쓰고 있다. 어젯밤 이베이에서 구입한 재킷의 결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페이팔 계정에 등록한 계좌 정보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도무지 고쳐지지를 않는다. 오늘까지 결제에 성공하지 않으면 나는 요즘 좋아하기 시작한 브랜드 ‘피어 오브 갓(Fear of God)’의 지난 시즌 최고 걸작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산다. 고로 존재한다. 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는 사기 때문에 존재하기도 한다. 나는 정신 병동 환자복의 바짓단을 걷은 어느날 아침 마침내 그걸 깨달았다. 죽고 싶었지만 셀린느의 신상은 사고 싶은 당신은 아마도 내 말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 작가 김도훈 

 

* 기사 전문은 OhBoy! No.114 ‘MY FAVORITE THING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14 JAN FEB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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