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 작가, 영화평론가, 캣대디
'Last night A Dj Saved My Life'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별에 슬퍼 죽고 싶었는데) 지난밤
디제이가 절 살렸어요’라는 의미다. 나는
실연을 당했을 때 그걸 노래로 극복하는 버릇이
있다. 이별에 대한 노래 하나를 반복적으로
패는 것이다. 수백 번 듣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홀가분해진다. 가장 파괴적으로 이별했을 때는
마침 롤러코스터의 'Last Scene'이 유행이었다.
“그러다 어떤 날은 화가 나고 큰 소리로
울어보기도 하고/ 넌 더 힘들꺼라 상상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어” 가사를 천 번 정도
음미한 뒤 실연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쓸모없는 사례를 ‘노래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고 쓴 것이다.
노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맞는 소리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역시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고 싶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 세대는 주현미의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들었을 것이다. 내 세대는,
남자들은 꼭 토이의 '좋은 사람'을 불렀다.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로 끝나는 후렴구를
열창했다. 꼭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 앞에서
불렀다. 끔찍하지만 어쨌든, 그 노래가 그를
살렸다면 꼭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또
쓸모없는 사례를 노래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러
쓰고 말았다. 어쨌든 음악은 위대하다. 노래는
누군가를 살린다. 그런 소리다. 그런데 노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종을 운명을 통째로
구원하기도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
사람 이야기는 아니다. 고래 이야기다.
1971년 8월 모든 것은 시작됐다.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Humpback Whales)라는 논문
이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미국 록
펠러대 조교수였던 로저 페인이 저자였다. 그는
오랜 조사를 통해 “혹등고래가 다양한 패턴으로
된 소리를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낸다. 우리는
그 소리를 ‘노래’로 부르겠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그 노래들은 각 고래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지만
한 종이 공유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발표
했다. 로저 페인은 논문이 나오기 전 이미
그들이 녹음한 고래 노래를 논문 제목과 같은
음반으로 냈다. 음반은 ‘세 고래의 여행’(Three
Whale Trip)’을 비롯한 5곡을 34분에 꽉
채웠다. 누구도 듣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음반은 당대의 대중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발매하자마자 10만 장
넘게 팔렸다. 빌보드의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도 올랐다. 이 음반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건 1960년대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부상하던 환경운동, 특히 포경 반대운동과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 덕이다. 70년대까지도
포경은 세계 어디에서나 합법이었다. 모든
바다에서 고래들이 기름을 비롯한 몇 가지 인간의
소모품을 생산하기 위해 도륙당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고래는 그저 바다에
사는 포유류일 뿐, 그들이 고지능을 가진
지성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던 탓이다.
'혹등고래의 노래'가 음반과 논문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34분의 ‘노래’는
노래였다. 소리가 아니었다. 노래였다. 지능은
물론이고 자체적인 문화를 가진 존재의 노래였다.
이미지 : '혹등고래의 노래' Songs of Humpback Whales 앨범 커버
* 기사 전문은 OhBoy! No.129 ‘MUSICIANS AC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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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 작가, 영화평론가, 캣대디
'Last night A Dj Saved My Life'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별에 슬퍼 죽고 싶었는데) 지난밤 디제이가 절 살렸어요’라는 의미다. 나는 실연을 당했을 때 그걸 노래로 극복하는 버릇이 있다. 이별에 대한 노래 하나를 반복적으로 패는 것이다. 수백 번 듣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홀가분해진다. 가장 파괴적으로 이별했을 때는 마침 롤러코스터의 'Last Scene'이 유행이었다. “그러다 어떤 날은 화가 나고 큰 소리로 울어보기도 하고/ 넌 더 힘들꺼라 상상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어” 가사를 천 번 정도 음미한 뒤 실연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쓸모없는 사례를 ‘노래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고 쓴 것이다.
노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맞는 소리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역시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고 싶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 세대는 주현미의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들었을 것이다. 내 세대는, 남자들은 꼭 토이의 '좋은 사람'을 불렀다.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로 끝나는 후렴구를 열창했다. 꼭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 앞에서 불렀다. 끔찍하지만 어쨌든, 그 노래가 그를 살렸다면 꼭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또 쓸모없는 사례를 노래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러 쓰고 말았다. 어쨌든 음악은 위대하다. 노래는 누군가를 살린다. 그런 소리다. 그런데 노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종을 운명을 통째로 구원하기도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 사람 이야기는 아니다. 고래 이야기다.
1971년 8월 모든 것은 시작됐다.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Humpback Whales)라는 논문 이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미국 록 펠러대 조교수였던 로저 페인이 저자였다. 그는 오랜 조사를 통해 “혹등고래가 다양한 패턴으로 된 소리를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낸다. 우리는 그 소리를 ‘노래’로 부르겠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그 노래들은 각 고래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지만 한 종이 공유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발표 했다. 로저 페인은 논문이 나오기 전 이미 그들이 녹음한 고래 노래를 논문 제목과 같은 음반으로 냈다. 음반은 ‘세 고래의 여행’(Three Whale Trip)’을 비롯한 5곡을 34분에 꽉 채웠다. 누구도 듣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음반은 당대의 대중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발매하자마자 10만 장 넘게 팔렸다. 빌보드의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도 올랐다. 이 음반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건 1960년대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부상하던 환경운동, 특히 포경 반대운동과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 덕이다. 70년대까지도 포경은 세계 어디에서나 합법이었다. 모든 바다에서 고래들이 기름을 비롯한 몇 가지 인간의 소모품을 생산하기 위해 도륙당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고래는 그저 바다에 사는 포유류일 뿐, 그들이 고지능을 가진 지성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던 탓이다. '혹등고래의 노래'가 음반과 논문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34분의 ‘노래’는 노래였다. 소리가 아니었다. 노래였다. 지능은 물론이고 자체적인 문화를 가진 존재의 노래였다.
이미지 : '혹등고래의 노래' Songs of Humpback Whales 앨범 커버
* 기사 전문은 OhBoy! No.129 ‘MUSICIANS AC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29 JUL AU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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