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대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뮤직비디오나 기타 다양한 영상물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그 의도나 취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에 의해 동원되고 착취된다. 영상물의 목적이 동물권을 얘기하거나 선한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해당 영상물에서 동물이학대 당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그 취지는 무색해지고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19세기 말 영상 산업의 태동과 함께 동물들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대규모 전쟁 장면이나 여러가지 동물이 등장하는 상황을 위해 부상 당하거나 희생된 동물의 수도 부지기수이다. 선진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감시기구를 만들어 영상물들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의 기술은 더 이상 동물을 실제로 동원시키지 않고도 동물을 영상에 등장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제작진의 의도와 완성도 문제, 비용과 기획의 문제에 따라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는가의 여부가 결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생성 AI프로그램 등 첨단기술은 동물들을 원하지 않는 착취에서 구할 수 있을까?
동물과 콘텐츠
지난 2월, ‘챗GPT’로 유명한 ‘오픈AI’에서 비디오 생성 인공지능 모델 ‘소라(Sora)’를 공개했다. 소라의 샘플 영상에는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와 사람으로 가득한 시장, 달리는 기차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흙먼지를 날리며 내달리는 자동차 등 여러 장면이 담겨 있었다. 실제 촬영을 했다고 해도 의심스럽지 않을 일상의 모습부터, 이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풍경과 상상이 곁들여진 미래 공간, 초현실적인 묘사까지 다양했다. 이 모든 것이 텍스트 입력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미 동물 촬영을 대체할 만큼 CG 기술이 향상되었고 그 사례도 늘어나고 있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로 동물을 구현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면, 그래서 실제 동물을 촬영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연출도 수월해진다면, 굳이 동물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털에 묻은 눈을 털어내는 강아지부터 집사를 깨우는 고양이,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와 바다거북 등 소라가 그려낸 모습을 보면 그날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동물을 괴롭히는 장면을 구현해 학대를 부추긴다면? 악의적으로 동물의 행동이나 습성을 부정적으로 왜곡한 영상이 만들어져 혐오를 조장한다면? 아니면 인공지능 모델의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는 꼬리를 문다.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르게 서지 않는다면, 기술발전이 동물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종 영상물에 다양한 동물 모델들이 출연한 시절이 있었다. 소위 광고물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속설의 ‘3B 모델’(Beauty, Baby, Beast)중 하나인 동물들이 광고 촬영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뜨거운 조명,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등으로 폐사한 사례가 다수 목격, 보고되면서 동물권에서의 관심과 감시의 눈길도 늘어나게 됐다. 어떤 동물도 영상물의 목적이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목적에는 동의할 수도 없다. 인간은 다양한 필요에 의해 동물을 이용하지만 기술이 동물의 스트레스와 착취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적극적으로 이런 기술과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로보틱스
1999년 일본의 소니가 세계 최초의 로봇 반려견 아이보를 출시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이 로봇은 고장이 잦았고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지만 소니는 ‘아이보가 제품이 아니라 펫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식으로 대응을 했고 이 전략이 먹혀 소비자들은 아이보를 더 친근하게 느끼기도 했다. 일본이 초고령사회인 이유로 노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혼자 지내기엔 외롭지만 애완동물조차 키울 수 없는 처지인 독거노인들이 아이보를 구입해 이 로봇반려견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것이다. 아이보의 공식 사후지원마저 끊겨 수리가 힘들어진 뒤로는 아이보가 고장이 나면 정말로 반려동물을 잃은 것처럼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했다.
세가지 예로 본 새롭거나 조금 다른 형태의 반려동물의 공통점은 사랑을 주는 대상 모두가 고통을 느끼거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려인은 사랑을 느끼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를 포함해서 애정과 관심을 주고 받는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하며 신뢰와 사랑을 쌓아간다. 이상적인 반려인도 다수 존재하지만 다양한 요인에 의한 행위들이 동물을 슬프거나 고통스럽게 하고 적절하지 못한 행동과 상황들로 인해 파국을 맞는 경우 역시 생긴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다. 반려인으로서 모든 동물이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늘 변수는 존재한다. 반려동물 산업은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수익이 최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반려동물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대안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적어도 의도와 상관없이 나 때문에 고통받을 동물이, 생명이 걱정된다면 말이다. 반려동물은 아이의 생일 선물도 아니고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존재도 아니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27 ‘ANIMALS & TECHNOLOG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 OhBoy! No.127 MAR APR 2024 ANIMALS & TECHNOLOGY 구매하기 |
동물과 대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뮤직비디오나 기타 다양한 영상물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그 의도나 취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에 의해 동원되고 착취된다. 영상물의 목적이 동물권을 얘기하거나 선한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해당 영상물에서 동물이학대 당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그 취지는 무색해지고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19세기 말 영상 산업의 태동과 함께 동물들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대규모 전쟁 장면이나 여러가지 동물이 등장하는 상황을 위해 부상 당하거나 희생된 동물의 수도 부지기수이다. 선진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감시기구를 만들어 영상물들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의 기술은 더 이상 동물을 실제로 동원시키지 않고도 동물을 영상에 등장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제작진의 의도와 완성도 문제, 비용과 기획의 문제에 따라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는가의 여부가 결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생성 AI프로그램 등 첨단기술은 동물들을 원하지 않는 착취에서 구할 수 있을까?
동물과 콘텐츠
지난 2월, ‘챗GPT’로 유명한 ‘오픈AI’에서 비디오 생성 인공지능 모델 ‘소라(Sora)’를 공개했다. 소라의 샘플 영상에는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와 사람으로 가득한 시장, 달리는 기차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흙먼지를 날리며 내달리는 자동차 등 여러 장면이 담겨 있었다. 실제 촬영을 했다고 해도 의심스럽지 않을 일상의 모습부터, 이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풍경과 상상이 곁들여진 미래 공간, 초현실적인 묘사까지 다양했다. 이 모든 것이 텍스트 입력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미 동물 촬영을 대체할 만큼 CG 기술이 향상되었고 그 사례도 늘어나고 있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로 동물을 구현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면, 그래서 실제 동물을 촬영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연출도 수월해진다면, 굳이 동물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털에 묻은 눈을 털어내는 강아지부터 집사를 깨우는 고양이,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와 바다거북 등 소라가 그려낸 모습을 보면 그날이 머지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동물을 괴롭히는 장면을 구현해 학대를 부추긴다면? 악의적으로 동물의 행동이나 습성을 부정적으로 왜곡한 영상이 만들어져 혐오를 조장한다면? 아니면 인공지능 모델의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는 꼬리를 문다.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르게 서지 않는다면, 기술발전이 동물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종 영상물에 다양한 동물 모델들이 출연한 시절이 있었다. 소위 광고물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속설의 ‘3B 모델’(Beauty, Baby, Beast)중 하나인 동물들이 광고 촬영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뜨거운 조명,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등으로 폐사한 사례가 다수 목격, 보고되면서 동물권에서의 관심과 감시의 눈길도 늘어나게 됐다. 어떤 동물도 영상물의 목적이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목적에는 동의할 수도 없다. 인간은 다양한 필요에 의해 동물을 이용하지만 기술이 동물의 스트레스와 착취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적극적으로 이런 기술과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로보틱스
1999년 일본의 소니가 세계 최초의 로봇 반려견 아이보를 출시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이 로봇은 고장이 잦았고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지만 소니는 ‘아이보가 제품이 아니라 펫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식으로 대응을 했고 이 전략이 먹혀 소비자들은 아이보를 더 친근하게 느끼기도 했다. 일본이 초고령사회인 이유로 노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혼자 지내기엔 외롭지만 애완동물조차 키울 수 없는 처지인 독거노인들이 아이보를 구입해 이 로봇반려견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것이다. 아이보의 공식 사후지원마저 끊겨 수리가 힘들어진 뒤로는 아이보가 고장이 나면 정말로 반려동물을 잃은 것처럼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했다.
세가지 예로 본 새롭거나 조금 다른 형태의 반려동물의 공통점은 사랑을 주는 대상 모두가 고통을 느끼거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려인은 사랑을 느끼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를 포함해서 애정과 관심을 주고 받는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하며 신뢰와 사랑을 쌓아간다. 이상적인 반려인도 다수 존재하지만 다양한 요인에 의한 행위들이 동물을 슬프거나 고통스럽게 하고 적절하지 못한 행동과 상황들로 인해 파국을 맞는 경우 역시 생긴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다. 반려인으로서 모든 동물이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늘 변수는 존재한다. 반려동물 산업은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수익이 최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반려동물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대안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적어도 의도와 상관없이 나 때문에 고통받을 동물이, 생명이 걱정된다면 말이다. 반려동물은 아이의 생일 선물도 아니고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존재도 아니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27 ‘ANIMALS & TECHNOLOG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27 MAR APR 2024
구매하기ANIMALS &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