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뉴 클래식’은 자본과 유행의 홍수 속에서 다시 한번 본질을 붙잡으려는 시도다.
과거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오늘의 기술과 윤리, 감각 속에서 재해석하는 일.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90년대 중반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임스 오피스 체어와 라운지 체어는,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클래식’이라는 개념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됐던 물건일지도 모른다. 마감을 위해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내 허리를 안정적으로 받쳐 주고, 내 공간의 풍경을 완성해준 이 의자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단단하고 아름답다. 의자의 가격은 당시 내 형편에선 꽤나 부담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이 물건이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좋은 물건’의 기준은 늘 이렇게 정해지는 걸까? 다음 세대도 같은 선택을 할까?
‘클래식’은 단지 오래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능과 형태의 균형, 시대를 초월한 감각. 그것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것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 성취가 언제나 유지되는 건 아니다. 오래된 것이 반드시 위대하게 남지는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thought 1
예를 들어,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을 생각해 보자. 탄노이, 마크 레빈슨, 오디오 리서치, FM 어쿠스틱스, 나그라 등 영국과 미국, 몇몇 유럽 국가들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듣기 위한 장비, 그 자체로 미학의 완성이었던 유수의 스테레오 시스템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특유의 미적 감각은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의,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갔다. 당대의 오디오는 바우하우스 이후 산업디자인의 균형 감각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소리와 형태가 나란히 완성도를 지닌 소위 ‘기계미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시장이 축소되며 ‘극소수의 돈 많은 취미인’만을 위한 초고가 시스템이 등장했고, 디자인은 기능과 감각에서 멀어져 버렸다. 균형 잡힌 2천만 원짜리 앰프를 만들던 회사는 대기업에 팔리거나 취향 없는 자본가의 수요에 따라 수억 원대의 괴상한 기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성능 향상을 빙자한 과도한 물량 투입과 근본을 알 수 없는 디자인 전략,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아닌 초고가의 제품에도 지갑을 열수 있는 극소수의 소비에만 의존하는 물건에 더이상 ‘클래식’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thought 2
자동차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내 눈이 이상한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나는 어떤 자동차를 봐도 설레지 않는다. 디자인은 산업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감성과 철학을 반영하는 사회적 언어이기도 하다. 80년대의 피아트 판다, 폭스바겐 골프, 레인지로버 디펜더 같은 모델들은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지도 과시적이지도 않지만, 기능과 실용, 품격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차들은 그 정교한 균형감과 적절한 디자인 감각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쓸데없이 과장되고 불필요한 디테일로 가득한 외관, 디지털 버튼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가득한 실내. 그 안에는 ‘쓰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보여지는 자산’으로서의 의도만 남았다.
thought 3
패션은 어떤가.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즐기는 시대가 됐지만, 진짜 멋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유행은 점점 빨라지고, ‘착장’은 콘텐츠가 됐다. 몇 번 입고 버릴 옷들이 넘쳐나고, 브랜드 로고는 스타일보다 앞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명품 소비 역시 본질보다 과시에 가까운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품질, 시대를 초월한 실루엣, 진짜 장인의 손길이 만든 무게감은 뒷전이 되고, 최신 시즌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신상’이 찍혀 나온다. 하지만 클래식은 원래 한 시즌의 유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0년 전 사진을 봐도 멋진 옷, 시간이 지나도 본질을 잃지 않는 브랜드와 아이템—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그런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것들이다. 요즘 명품을 입는다는 건, 브랜드의 이름을 입는 것과 거의 같다. 더이상 그 옷의 구조나 철학, 기능보다는 얼마나 눈에 띄느냐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반면 파타고니아나 바버, 바라쿠타 같은 브랜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기준을 고수하며, 유행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살 만한 이유’를 증명해왔다. 그런 옷은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아진다. 좋은 옷이란 시간이 말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클래식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려 하는가? 유행은 더 빨라지고, 콘텐츠는 소비되기도 전에 이미 피로해지며, 사람들은 주체적인 취향이나 신념 없이 인플루언서의 알량하고 가벼운 손끝을 따라간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이런 시대에 ‘좋은 것’이란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기업과 브랜드는 매일같이 신제품을 쏟아내고, 우리는 정체 모를 새로움을 소비하느라 애써 가졌던 감식의 감각마저 잃어버린다. 그 결과는, 허전한 소비, 반복되는 후회, 대량 생산과 무분별한 소비 행태로 악화되는 지구 환경은 치명적인 덤이다.
‘뉴 클래식’은, 바로 이런 자본과 유행의 홍수 속에서 다시 한번 본질을 붙잡으려는 시도다. 과거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오늘의 기술과 윤리, 감각 속에서 재해석하는 일.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뉴 클래식은 그런 감식의 대상이다. 이 특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옛것을 기리는 게 아니다. 앞으로의 클래식을 지금 여기에서 미리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다. 그 안에는 디자인도 있고, 소리도 있고, 글자도 있고, 차도 있다. 아마 어떤 독자는 지금 처음 보는 물건이나 이름을 마주하고 잠깐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렇게 말하게 되길 바란다. “그때 그걸 좋아하길 참 잘했어. 지금도, 여전히 멋지잖아.”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34 ‘NEW CLASSIC’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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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뉴 클래식’은 자본과 유행의 홍수 속에서 다시 한번 본질을 붙잡으려는 시도다.
과거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오늘의 기술과 윤리, 감각 속에서 재해석하는 일.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90년대 중반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임스 오피스 체어와 라운지 체어는,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클래식’이라는 개념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됐던 물건일지도 모른다. 마감을 위해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내 허리를 안정적으로 받쳐 주고, 내 공간의 풍경을 완성해준 이 의자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단단하고 아름답다. 의자의 가격은 당시 내 형편에선 꽤나 부담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이 물건이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좋은 물건’의 기준은 늘 이렇게 정해지는 걸까? 다음 세대도 같은 선택을 할까?
‘클래식’은 단지 오래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능과 형태의 균형, 시대를 초월한 감각. 그것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것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 성취가 언제나 유지되는 건 아니다. 오래된 것이 반드시 위대하게 남지는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thought 1
예를 들어,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을 생각해 보자. 탄노이, 마크 레빈슨, 오디오 리서치, FM 어쿠스틱스, 나그라 등 영국과 미국, 몇몇 유럽 국가들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듣기 위한 장비, 그 자체로 미학의 완성이었던 유수의 스테레오 시스템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특유의 미적 감각은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의,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갔다. 당대의 오디오는 바우하우스 이후 산업디자인의 균형 감각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소리와 형태가 나란히 완성도를 지닌 소위 ‘기계미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시장이 축소되며 ‘극소수의 돈 많은 취미인’만을 위한 초고가 시스템이 등장했고, 디자인은 기능과 감각에서 멀어져 버렸다. 균형 잡힌 2천만 원짜리 앰프를 만들던 회사는 대기업에 팔리거나 취향 없는 자본가의 수요에 따라 수억 원대의 괴상한 기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성능 향상을 빙자한 과도한 물량 투입과 근본을 알 수 없는 디자인 전략,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아닌 초고가의 제품에도 지갑을 열수 있는 극소수의 소비에만 의존하는 물건에 더이상 ‘클래식’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thought 2
자동차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내 눈이 이상한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나는 어떤 자동차를 봐도 설레지 않는다. 디자인은 산업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감성과 철학을 반영하는 사회적 언어이기도 하다. 80년대의 피아트 판다, 폭스바겐 골프, 레인지로버 디펜더 같은 모델들은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지도 과시적이지도 않지만, 기능과 실용, 품격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차들은 그 정교한 균형감과 적절한 디자인 감각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쓸데없이 과장되고 불필요한 디테일로 가득한 외관, 디지털 버튼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가득한 실내. 그 안에는 ‘쓰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보여지는 자산’으로서의 의도만 남았다.
thought 3
패션은 어떤가.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즐기는 시대가 됐지만, 진짜 멋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유행은 점점 빨라지고, ‘착장’은 콘텐츠가 됐다. 몇 번 입고 버릴 옷들이 넘쳐나고, 브랜드 로고는 스타일보다 앞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명품 소비 역시 본질보다 과시에 가까운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품질, 시대를 초월한 실루엣, 진짜 장인의 손길이 만든 무게감은 뒷전이 되고, 최신 시즌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신상’이 찍혀 나온다. 하지만 클래식은 원래 한 시즌의 유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0년 전 사진을 봐도 멋진 옷, 시간이 지나도 본질을 잃지 않는 브랜드와 아이템—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모두 그런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것들이다. 요즘 명품을 입는다는 건, 브랜드의 이름을 입는 것과 거의 같다. 더이상 그 옷의 구조나 철학, 기능보다는 얼마나 눈에 띄느냐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반면 파타고니아나 바버, 바라쿠타 같은 브랜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기준을 고수하며, 유행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살 만한 이유’를 증명해왔다. 그런 옷은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아진다. 좋은 옷이란 시간이 말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클래식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려 하는가? 유행은 더 빨라지고, 콘텐츠는 소비되기도 전에 이미 피로해지며, 사람들은 주체적인 취향이나 신념 없이 인플루언서의 알량하고 가벼운 손끝을 따라간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이런 시대에 ‘좋은 것’이란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기업과 브랜드는 매일같이 신제품을 쏟아내고, 우리는 정체 모를 새로움을 소비하느라 애써 가졌던 감식의 감각마저 잃어버린다. 그 결과는, 허전한 소비, 반복되는 후회, 대량 생산과 무분별한 소비 행태로 악화되는 지구 환경은 치명적인 덤이다.
‘뉴 클래식’은, 바로 이런 자본과 유행의 홍수 속에서 다시 한번 본질을 붙잡으려는 시도다. 과거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오늘의 기술과 윤리, 감각 속에서 재해석하는 일.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어떤 것, 뉴 클래식은 그런 감식의 대상이다. 이 특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옛것을 기리는 게 아니다. 앞으로의 클래식을 지금 여기에서 미리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다. 그 안에는 디자인도 있고, 소리도 있고, 글자도 있고, 차도 있다. 아마 어떤 독자는 지금 처음 보는 물건이나 이름을 마주하고 잠깐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렇게 말하게 되길 바란다. “그때 그걸 좋아하길 참 잘했어. 지금도, 여전히 멋지잖아.”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34 ‘NEW CLASSIC’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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