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말한 것들 15년 후에 바뀐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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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2009년, 사실 그렇게 오래 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시절이다. 동물권이나 환경에 대한 담론이나 이슈가 전무했던 건 물론이고 반려동물을 위한 전용사료도 없던, 아니, 반려동물이라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동네에서 동물병원 하나 찾기도 너무 힘들었던 7,80년대를 살아온 나에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란 비교적 최근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70년대에도 외국의 소식이나 다양한 뉴스에 관심이 있었다면 1950년대의 ‘런던 스모그 사건’이나 70년대의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소식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서울에 살면서 그런 일들이 장안의 화제나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기억은 없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거나 가슴이 답답한 날이 많은 지금, 너무나 당연한 듯 국민 모두의 손에 휴대용 전화기가 들려있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는 지금과 그때의 비교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가 있겠지만 겨우 15년 전인 2009년과 현재는 거의 동시대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니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2024년과 2009년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라는 걸 얘기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2009년의 지구는 이렇지 않았다. 이렇게 재앙에 가까운 이상 기후가 연일 지구촌을 강타하지도 않았고 폭염과 혹한, 폭우와 태풍 등 자연재해의 강도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 2009년에는 그래도 아주 조금 더 희망적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만 더 신경 쓰고 노력하면 모든 게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지금 2009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오보이!의 내용도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지구는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다.’ 라고 썼을 것이다. ‘이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기후 재앙이 올 것이다. 과도한 육식과 무분별한 동물 착취가 인류에도 치명적인 전염병을 몰고 올 것이다.’ 라고 썼을 것이다. 2009년의 오보이!는 너무 낙관적이고 너무 안일했을지도 모른다.

98년 결혼을 하고 신혼시절부터 자식처럼 키우던 두마리의 강아지들이 2009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게 직접적인 오보이! 창간의 계기가 됐다. 동물들을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이 하고 싶었고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패션사진 일을 하던 나는 그렇게 동물권과 환경을 얘기하는 오보이!를 만들게 됐다. 첫번 째 오보이!를 만든다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뛰어다니던 그 때,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다루지 못하는 건 물론 지금까지도 독수리 타법으로 글을 쓰는 컴맹이 디자인 레이아웃을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끙끙대던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는 정말 막막하고 답이 없었다. 첫번째 오보이!의 특집 주제였던 ‘서울패션’을 위해 패션 사진 일을 하며 알게 된 업계 전문가들을 백 명 넘게 스튜디오로 불러 촬영하고 천신만고 끝에 창간호가 무사히 나왔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두번째, 세번째, 매호 겨우겨우 마감을 맞춰가며 오보이!를 만들면서 무모하고 무지한 책 만들기는 그 어려움을 더해가기만 했다. 어찌어찌해서 결국에는 책이 매 달 나왔고 오보이!는 독자들에게 조금씩 존재감을 알려 나갔지만 중요한 건 다양한 주제로 특집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흥미롭고 관심을 끌만한 책을 만들어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가 였다.

오보이!는 15년 간 130권의 책을 만들었다. 1호부터 100호까지는 1년에 열권씩, 101호부터는 격월간으로 1년에 여섯권씩.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은 오보이!가 나오고 2,3년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나에게 그간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한두권 만들고 그만둘 줄 알았어.” “잡지 만든다고 하길래 얼마나 만들까 싶었어.” “혼자서 무슨 잡지를 만든다고 그러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보였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무모하게 일을 몰아붙이기는 했다. 수 십명이 모여서 수 억의 예산을 들여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일을 동물과 환경을 얘기한다는 목적 하나로 다른 건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달렸다. 좋아하는 외국잡지가 하나 있었는데 400호를 만들고 휴간을 했다. 나도 일단은 400호까지는 쉬지 않고 만들자 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오보이!는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잡지라는 자부심은 있다. 물론 동물에 대한 잡지, 환경을 얘기하는 잡지는 많지만 오보이!처럼 상업적이고 유명인들이 표지를 장식하며 문화를 다루면서 결국 동물권과 환경을 얘기하는 잡지는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런 유니크함이 오보이!를 지금까지 살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창간 시기의 메시지는 ‘지금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지만 먼훗날 우리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였다. 그 먼훗날이 불과 10년 남짓한 세월 후에 당장 우리의 문제로 눈앞에 닥칠 줄은 사실 꿈에도 몰랐었다. 기상 이변이라는 건 항상 있어왔고 동물권 문제는 항상 심각했지만 이렇게 재앙같은 이상 기후, 극단적인 생산과 소비 문화, 그에 따른 지구 환경의 악화라는 악순환과 속절없이 고통스럽게 착취 당하는 동물들의 문제까지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지옥도가 펼쳐진 것 같은 세상이 도래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5단계의 태풍이 도시를 덮쳐 아파트 창문이 깨지고 방안의 침대가 날아가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길고 더운 여름과 겨울이 일상이 될 줄은, 이렇게 빨리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사막에 홍수가 나는 걸 목격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인류는 한없는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끝없이 사고 무심하게 버리고 무정하게 동물을 착취하는 것 역시 멈추지 않는다. 오보이!를 만들면서 가장 원하는 것은 오보이!같은 잡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는 것이지만 그런 비슷한 일이라도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보이!가 나오고 정말 좋은 일이 많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절망하게 되는 일도 많았다. 오보이!는 세상에 제대로 된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 걸까? 오보이!의 얘기를 누군가는 들어주고 있는 걸까?

2009년에 오보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은 처음으로 명확해졌다. 세상이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잔인할 정도로 확실하게 약자를 짓밟고 고통을주며착취하는곳이라는걸깨달은이상그모든걸모른척눈감고 외면할 수는 없었다. 기득권은 세상의 낮은 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는 약자들, 여성과 노인, 장애인과 어린이, 동물과 자연을 착취하며 체제와 제도를 유지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동물들은 인류가 멸망해버리거나 개과천선이라도 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탈출구도,그어떤안식도얻을수없다.오보이!가15년간 해온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미약하고 초라해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오보이!가 바라보는 곳은 명확하다. 앞으로 15년 후, 150년 후, 1,500년 후의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동물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 그런 세상을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 세상에 태어나 단 하나뿐인 생명을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뺏긴 동물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할 것이다. 오보이!의 15년은 아주 작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진짜 얘기는 이제부터다. | 김현성 





OhBoy! No.130 SEP OCT 2024
15th ANNIVER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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