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장래 희망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저 ‘독서나 음악 감상, 혹은 등산’ 정도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만큼 지금의 나 역시 책읽기와 음악을 듣는 일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새로운 것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없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3년에 반 친구였던 기철이가 들어보라며 전해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건 영국 그룹 ‘퀸’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저멀리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산업의 역군’이었던 아버지가 사다 주시곤 했던 ‘아바’나 ‘보니 엠’ 등 부담없고 신나는 디스코 계열의 곡들과는 다른 전혀 새롭고 파격적이고 기발하고 강력한 음악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흔한 중2병 음악 매니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점원 누나가 눈치를 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들던 신촌의 목마레코드,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카세트에 녹음해서 말로 안되는 콩글리쉬로 따라 부르던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금강제화 매장에서 나눠주던 무료 음악잡지인 DJ 김기덕의 ‘Pop PM2’, ‘황인용의 영팝스’에 열심히 그렸지만 조악하기 그지없는 그림엽서를 보내 방송국에서 열린 연말 전시회에 내 그림이 걸렸던 일, 음악 잡지에 응모해 당첨되어 처음 가보는 동네를 물어물어 사무실까지 찾아가 당첨 선물로 ‘알란파슨스프로젝트’의 LP를 받아 뿌듯했던 기억. 내 사춘기의 기억의 대부분은 온통 음악과 관련된 것들 뿐이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세상을 바꾸고 뮤지션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내 마음 속, 내 안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게 음악이었지만 음악에 그 이상의 것, 인간을, 사회를, 세상의 부조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 있다는 생각은 또 다른 얘기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낯선 유럽의 문물의 늪에 빠져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던 중 우연히 채널 2번의 미군방송 AFKN에서 흘러나오던 뮤직비디오에서는 무려 조지 마이클, 사이몬 르본, 스팅, 보이 죠지, 폴 영, U2의 보노, 등 내가 좋아하던 여러명의 영국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도 지금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알까?’ 라는 가사를 부르는 ‘밴드에이드’의 이곡이 계기가 되어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미국의 팝스타들이 주도하여 만든 ‘위아더월드’까지 이어지며 음악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나도,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의 음악과 공적인 발언, 가사와 기획을 통해 그들의 신념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 돈이 얼마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지, 섹시하고 잘 나가는 여성들이 얼마나 자신에게 빠져있는지, 자신의 차고에 슈퍼카가 몇십대 주차되어 있는지를 노래하는 뮤지션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음악은 즐거운 것이고 지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청량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인간이 다양한만큼 음악도, 뮤지션도 다양하다. 장르의 다양성만큼 음악이 주는 메시지, 뮤지션의 신념과 행동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꼭 ‘선한 영향력’이니 ‘아름다운 생각’같은 지루하고 전형적인 이미지 만들기용 메시지라는 선입견이 있더라도 그런 메시지의 위선을 지적하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역시 너무 삐딱한 태도 아닐까? 설사 전기자동차를 타고 친환경 제품을 이용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약간의 가식과 보여주기식의 의도가 의심된다고 할지언정 그런 생각과 실천이 팬들의 인식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나는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돈많고 여자 많고 정력 세다고 자랑하는 래퍼가 오히려 솔직해서 더 좋다고 얘기하는 이들과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조금 포장하고 약간 과장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이타적인 메시지를 얘기하는 뮤지션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하나인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음악이 세상에 영향을 준만큼 그 자신의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대한 신념을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도축장의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라는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그밖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의 가사를 통해, 평소의 행동이나 다양한 실천을 통해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꼭 거창하게 자선 밴드를 기획하고 대형 콘서트를 열어 전세계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고 채식을 실천하고 유기동물을 위해 봉사를 나가거나 입양하여 가족으로 맞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음악만큼 감동과 울림을 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음악이, 뮤지션들이 조금 더 이 세상을 밝은 곳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환경과 고통받는 동물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40년 전 밴드에이드가 몰고 온 바람만큼 더 많은 뮤지션들이 지구와 약자들을 위한 변화를 몰고 와줬으면 좋겠다.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29 ‘MUSICIANS AC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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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장래 희망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저 ‘독서나 음악 감상, 혹은 등산’ 정도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던 시절에 청춘을 보낸만큼 지금의 나 역시 책읽기와 음악을 듣는 일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새로운 것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없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3년에 반 친구였던 기철이가 들어보라며 전해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던 건 영국 그룹 ‘퀸’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저멀리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산업의 역군’이었던 아버지가 사다 주시곤 했던 ‘아바’나 ‘보니 엠’ 등 부담없고 신나는 디스코 계열의 곡들과는 다른 전혀 새롭고 파격적이고 기발하고 강력한 음악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흔한 중2병 음악 매니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점원 누나가 눈치를 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들던 신촌의 목마레코드,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카세트에 녹음해서 말로 안되는 콩글리쉬로 따라 부르던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금강제화 매장에서 나눠주던 무료 음악잡지인 DJ 김기덕의 ‘Pop PM2’, ‘황인용의 영팝스’에 열심히 그렸지만 조악하기 그지없는 그림엽서를 보내 방송국에서 열린 연말 전시회에 내 그림이 걸렸던 일, 음악 잡지에 응모해 당첨되어 처음 가보는 동네를 물어물어 사무실까지 찾아가 당첨 선물로 ‘알란파슨스프로젝트’의 LP를 받아 뿌듯했던 기억. 내 사춘기의 기억의 대부분은 온통 음악과 관련된 것들 뿐이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세상을 바꾸고 뮤지션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내 마음 속, 내 안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게 음악이었지만 음악에 그 이상의 것, 인간을, 사회를, 세상의 부조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 있다는 생각은 또 다른 얘기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낯선 유럽의 문물의 늪에 빠져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던 중 우연히 채널 2번의 미군방송 AFKN에서 흘러나오던 뮤직비디오에서는 무려 조지 마이클, 사이몬 르본, 스팅, 보이 죠지, 폴 영, U2의 보노, 등 내가 좋아하던 여러명의 영국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도 지금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알까?’ 라는 가사를 부르는 ‘밴드에이드’의 이곡이 계기가 되어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미국의 팝스타들이 주도하여 만든 ‘위아더월드’까지 이어지며 음악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나도,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의 음악과 공적인 발언, 가사와 기획을 통해 그들의 신념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 돈이 얼마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지, 섹시하고 잘 나가는 여성들이 얼마나 자신에게 빠져있는지, 자신의 차고에 슈퍼카가 몇십대 주차되어 있는지를 노래하는 뮤지션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음악은 즐거운 것이고 지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청량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인간이 다양한만큼 음악도, 뮤지션도 다양하다. 장르의 다양성만큼 음악이 주는 메시지, 뮤지션의 신념과 행동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꼭 ‘선한 영향력’이니 ‘아름다운 생각’같은 지루하고 전형적인 이미지 만들기용 메시지라는 선입견이 있더라도 그런 메시지의 위선을 지적하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역시 너무 삐딱한 태도 아닐까? 설사 전기자동차를 타고 친환경 제품을 이용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약간의 가식과 보여주기식의 의도가 의심된다고 할지언정 그런 생각과 실천이 팬들의 인식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나는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돈많고 여자 많고 정력 세다고 자랑하는 래퍼가 오히려 솔직해서 더 좋다고 얘기하는 이들과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조금 포장하고 약간 과장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이타적인 메시지를 얘기하는 뮤지션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하나인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음악이 세상에 영향을 준만큼 그 자신의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대한 신념을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도축장의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라는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그밖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그들의 가사를 통해, 평소의 행동이나 다양한 실천을 통해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꼭 거창하게 자선 밴드를 기획하고 대형 콘서트를 열어 전세계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고 채식을 실천하고 유기동물을 위해 봉사를 나가거나 입양하여 가족으로 맞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음악만큼 감동과 울림을 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음악이, 뮤지션들이 조금 더 이 세상을 밝은 곳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환경과 고통받는 동물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40년 전 밴드에이드가 몰고 온 바람만큼 더 많은 뮤지션들이 지구와 약자들을 위한 변화를 몰고 와줬으면 좋겠다.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29 ‘MUSICIANS AC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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