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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피오르드와 대자연의 플람, 구드방엔을 거쳐
베르겐과 올레순, 트론헤임까지 떠나는 오보이!의 도시특집
오슬로 Oslo
노르웨이의 수도로, 남부 해안에 위치해 오랜 옛날부터 항구도시로 번영했다. 대도시이지만 피오르 해안과 산지로 둘러싸여 조금만 외곽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도심지에서도 넓은 공원과 걷기 좋은 길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긴 시간 동안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방식을 고심해 온 결과다. 1993년 대중교통과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와 인프라를 개편하는 환경도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7년에는 기후예산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교통, 건축, 폐기물 관리 등 전반에서 온실가스 관리를 시작했다. 이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임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고 있고, 이러한 성과로 2019년 ‘유럽녹색수도’에 선정되기도 했다.
헬싱키를 경유하여 도착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온통 눈천지였다.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온 시내는 겨울왕국이었다. 스키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자주 보였다. 노르딕 스키 강국의 사람들답게 여차하면 스키를 신고 달릴 기세였다. 오슬로에서 처음 만난 노르웨이 거주인인 미셸은 오슬로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오슬로의 겨울이 항상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그들도 너무 많은 눈이 내리고 추워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기후변화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오슬로의 바다도 얼어붙어 있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차가운 날씨는 도시를 고요한 적막속으로 몰아넣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오슬로는 활기차게 꿈틀거린다. 대형 크루즈 선에서 내린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상점을 구경하며 눈이 쌓인 오슬로 시내를 활보했고 오페라하우스 맞은편 꽁꽁 언 바닷가의 숨막히게 뜨거운 사우나에서 벌겋게 몸을 익힌 오슬로 시민들은 얼음을 깨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들의 피부는 우리보다 훨씬 더 두꺼운 것일까? 극한의 체험으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소리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나보고 저 바다로 뛰어들라 하면 그대로 도망칠 것 같다.
플람 Flåm
세계 피오르 중 가장 깊고 길이로는 두 번째인 송네피오르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송네피오르 관광의 중심지이자 피오르 협곡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악열차 플롬바나의 정거장이 있는 곳이어서, 인구 5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지만 매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노르웨이의 목가적인 마을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는 ‘노르웨이 인 어 넛쉘 Norway in a nutshell’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기차와 소형 크루즈선, 버스를 갈아타며 베르겐까지 이동하게 된다. 첫번째 코스는 피오르드 소형 크루즈선이 출발하는 작은 마을 플람까지 향하는 기차. 눈이 내리는 오슬로의 사흘째 아침, 시간을 맞춰 기차가 출발하는 오슬로 중앙역에 도착했다.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긴 복도 끝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기차가 출발하려면 15분 정도가 남았는데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나가질 않는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기차를 정비중이라는 반복되는 방송과 함께 70분이 흘렀다. 군중들과 함께 서있는 역무원에게 플람으로 향하는 연결 기차편에는 문제가 없는지 물어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플람까지 가게 될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기색도 없다. 플랫폼 입구에 서있는 승객들에게도 동요의 기색은 읽히지 않는다. 그렇게 하염없이 서있는데 드디어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기차에 올랐고 그렇게 기다린 끝에 플람행 열차는 출발했다. 스케줄이 꼬일까 걱정한 건 우리 일행밖에 없는 것 같았다.
구드방엔 Gudvangen
송네피오르의 지류 중 하나인 내뢰이피오르에 있는 마을이다. 내뢰이피오르는 가장 좁은 부분의 폭이 250m에 그칠 정도로 가파르고 험준한 협곡이 특징인데, 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와 피오르 특유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크루즈뿐 아니라 하이킹이나 캠핑, 카약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에 좋다.
플람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은 예정대로라면 구드방엔으로 직접 들어와야 했지만 얼어붙어버린 바다 때문에 경로를 바꿔야 했다. 배는 방향을 바꾸어 구드방엔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로 입항했고 그곳에서 승객들을 급히 마련된 버스로 갈아타게 한 후 원래 배가 향해야 할 곳으로 달려갔다. 다시 한 번 예정에 없던 일정의 변경이 있었지만 버스에 탄 일행은 전보다 더 여유로워 보였고 오히려 예정에 없던 라이드에 오른 승객들의 표정은 생각치도 못한 선물을 풀어보는 아이의 그것과도 닮아있었다.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도 승객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구드방엔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작은 호텔 둘, 주유소와 편의점 하나, 그리고 바이킹 박물관. 기차와 배를 타고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물지 않고 그대로 다음 도착지로 떠났다. 구드방엔에 남은 것은 우리를 포함한 단 두 팀이었다. 호텔은 방갈로 형태의 1층짜리 작은 원형 건물,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의 집같은 느낌이 드는 호텔방, 어쩌면 이 마을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베르겐 Bergen
노르웨이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노르웨이에서 2번째로 크다. 12~13세기에 노르웨이의 수도였으며 노르웨이의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만이다. 1070년 올라프 3세가 설립한 후 1100년경 성이 세워진 뒤 상업적·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으며, 12세기에는 교회관구가 세워졌다. 14세기에 상권을 독점한 게르만 상인들의 영향력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현대에는 주로 어업·조선업과 그에 관련된 선박수리, 장비생산, 기계·금속제품 생산, 식품가공 등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발전을 다변화시켰다.
베르겐은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왠지 오슬로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도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뭔가 엄청나게 큰 마을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겨울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가진 사랑스러운 마을. 과연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될 만 하다. 베르겐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오로라를 보기 위한 많은 배들이 들르거나 출발하는 항구도시이다. 어업과 무역이 발달한 상업 도시이지만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가파른 노면을 거슬러 오르는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볼 수 있는 베르겐의 전경은 장관이다. 편도 티켓만 끊고 전망대까지 올라온 아이들은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베르겐 일정의 마지막은 크루즈 승선을 위한 이동이다. 이동이라고 해봐야 걸어서 15분,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터미널로 가면 된다. 터미널에는 벌써 승객들이 승선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절차는 너무 간단하다. 짐을 맡기고 배에 오르면 된다. 항공여행 같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없다. 동양인 승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승선을 도와주는 스탭이 우리 일행을 보고는 한국 승객을 처음 봤다고 말한다. 우리가 크루즈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국가 식별 코드에 한국이 아예 없어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힘들게 예약했다고 말하니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올레순 Ålesund
어업 중심의 항구 도시로 여러 개의 섬이 다리와 구불구불한 수로로 연결되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모인 곳으로도 유명한데, 1904년 대형 화재로 도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가 당시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재건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심부에 위치한 악슬라 전망대에 오르면 이러한 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항구 도시인 올레순은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로 가는 관문이다. 이번 일정에 게이랑에르는 포함되지 않았다. 해안선 총 연장 길이가 5만 킬로가 넘는 장대한 대자연의 신비를 모두 확인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의 이미지가 강한 올레순은 역시 오랜 어업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어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크루즈에서 내린 승객들이 시내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몇몇 기념품 가게는 문을 열었지만 마을은 조용하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사투를 벌이던 작은 조각배보다는 크지만 세월이 느껴지는멋지고 작은 어선이 올레순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익히 보아오던 현대식의 대형 선박들과 비교해서 이 작고 오래된 배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올레순 항구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이 작은 어선 앞뒤로도 비슷한 연식과 크기의 배들이 몇 척 늘어서 있었다. 노르웨이 서남부 끝에 위치한 낚시바늘 모양의 땅으로 예로부터 어업과 무역이 발달한 소도시인 올레순. 피요르드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이 도시의 주요 관광 어트랙션 중의 하나인 이 오래된 어선들은 철저하게 상업화, 대형화 된 현대 어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트론헤임 Trondheim
바이킹 시대,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수도 역할을 했던 오래된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니다로스 성당은 재건과 복원을 반복해 당시의 고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최북단에 위치한 중세 성당이라는 명성이 덧붙어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니델바 강변을 따라 형성된 구시가지의 풍경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 일행은 하빌라 크루즈의 중간 기착지인 트론헤임에서 이번 도시 특집 일정을 마무리 했다. 배는 노르웨이 최북단까지 올라갈 것이다.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는 또 다른 자연의 경이가 펼쳐지겠지. 더 올라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다지만 오보이!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트론헤임은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볼 것들, 차분한 분위기로 이틀간 작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왕들이 즉위식을 가졌던 천년 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과 목조건물들이 강가 양쪽에 늘어선 구시가, 그 양쪽의 건물들을 오갈 수 있는 올드타운브리지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즐비한 시내를 돌아봤다. 한 CNN 기자가 인생식당이라며 극찬한 노르웨이 전통 스타일 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감자 요리도 먹었다. 너무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노르웨이 청년 샤크는 우리 일행을 위해 식당 앞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포즈를 취해 줬다.
트론헤임에 정박 후 노르웨이 최북단으로 향할 배에 안녕을 고하고 시내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우리 일행은 반가운 털뭉치와 인사를 나눴다. 이 아이의 이름은 루카, 아주머니는 강아지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우리를 보고 말을 건넨다. 우리는 트론헤임과 노르웨이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묻고 싶었지만 자신은 노르웨이인이 아니라 잠시 항구에 머무는 중이란다. 아주머니는 네덜란드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 로테르담에서 왔고 작은 배로 유럽을 여행중이다. 루카도 당연히 네덜란드 출신이다. 잠시 트론헤임에 배를 묶고 머물다가 어디가 될지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출발할 예정인 배의 돛 꼭대기에는 작은 네덜란드기가 선명하게 휘날리고 있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26 ‘PURE & CLEAN NORWA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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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피오르드와 대자연의 플람, 구드방엔을 거쳐
베르겐과 올레순, 트론헤임까지 떠나는 오보이!의 도시특집
오슬로 Oslo
노르웨이의 수도로, 남부 해안에 위치해 오랜 옛날부터 항구도시로 번영했다. 대도시이지만 피오르 해안과 산지로 둘러싸여 조금만 외곽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도심지에서도 넓은 공원과 걷기 좋은 길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긴 시간 동안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방식을 고심해 온 결과다. 1993년 대중교통과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와 인프라를 개편하는 환경도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7년에는 기후예산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교통, 건축, 폐기물 관리 등 전반에서 온실가스 관리를 시작했다. 이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임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고 있고, 이러한 성과로 2019년 ‘유럽녹색수도’에 선정되기도 했다.
헬싱키를 경유하여 도착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온통 눈천지였다.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온 시내는 겨울왕국이었다. 스키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자주 보였다. 노르딕 스키 강국의 사람들답게 여차하면 스키를 신고 달릴 기세였다. 오슬로에서 처음 만난 노르웨이 거주인인 미셸은 오슬로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오슬로의 겨울이 항상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그들도 너무 많은 눈이 내리고 추워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기후변화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오슬로의 바다도 얼어붙어 있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차가운 날씨는 도시를 고요한 적막속으로 몰아넣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오슬로는 활기차게 꿈틀거린다. 대형 크루즈 선에서 내린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상점을 구경하며 눈이 쌓인 오슬로 시내를 활보했고 오페라하우스 맞은편 꽁꽁 언 바닷가의 숨막히게 뜨거운 사우나에서 벌겋게 몸을 익힌 오슬로 시민들은 얼음을 깨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들의 피부는 우리보다 훨씬 더 두꺼운 것일까? 극한의 체험으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소리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나보고 저 바다로 뛰어들라 하면 그대로 도망칠 것 같다.
플람 Flåm
세계 피오르 중 가장 깊고 길이로는 두 번째인 송네피오르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송네피오르 관광의 중심지이자 피오르 협곡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악열차 플롬바나의 정거장이 있는 곳이어서, 인구 5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지만 매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노르웨이의 목가적인 마을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는 ‘노르웨이 인 어 넛쉘 Norway in a nutshell’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동하기로 했다. 기차와 소형 크루즈선, 버스를 갈아타며 베르겐까지 이동하게 된다. 첫번째 코스는 피오르드 소형 크루즈선이 출발하는 작은 마을 플람까지 향하는 기차. 눈이 내리는 오슬로의 사흘째 아침, 시간을 맞춰 기차가 출발하는 오슬로 중앙역에 도착했다.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긴 복도 끝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기차가 출발하려면 15분 정도가 남았는데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나가질 않는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기차를 정비중이라는 반복되는 방송과 함께 70분이 흘렀다. 군중들과 함께 서있는 역무원에게 플람으로 향하는 연결 기차편에는 문제가 없는지 물어봤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플람까지 가게 될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기색도 없다. 플랫폼 입구에 서있는 승객들에게도 동요의 기색은 읽히지 않는다. 그렇게 하염없이 서있는데 드디어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기차에 올랐고 그렇게 기다린 끝에 플람행 열차는 출발했다. 스케줄이 꼬일까 걱정한 건 우리 일행밖에 없는 것 같았다.
구드방엔 Gudvangen
송네피오르의 지류 중 하나인 내뢰이피오르에 있는 마을이다. 내뢰이피오르는 가장 좁은 부분의 폭이 250m에 그칠 정도로 가파르고 험준한 협곡이 특징인데, 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와 피오르 특유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크루즈뿐 아니라 하이킹이나 캠핑, 카약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에 좋다.
플람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은 예정대로라면 구드방엔으로 직접 들어와야 했지만 얼어붙어버린 바다 때문에 경로를 바꿔야 했다. 배는 방향을 바꾸어 구드방엔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로 입항했고 그곳에서 승객들을 급히 마련된 버스로 갈아타게 한 후 원래 배가 향해야 할 곳으로 달려갔다. 다시 한 번 예정에 없던 일정의 변경이 있었지만 버스에 탄 일행은 전보다 더 여유로워 보였고 오히려 예정에 없던 라이드에 오른 승객들의 표정은 생각치도 못한 선물을 풀어보는 아이의 그것과도 닮아있었다.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도 승객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구드방엔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작은 호텔 둘, 주유소와 편의점 하나, 그리고 바이킹 박물관. 기차와 배를 타고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물지 않고 그대로 다음 도착지로 떠났다. 구드방엔에 남은 것은 우리를 포함한 단 두 팀이었다. 호텔은 방갈로 형태의 1층짜리 작은 원형 건물,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의 집같은 느낌이 드는 호텔방, 어쩌면 이 마을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베르겐 Bergen
노르웨이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노르웨이에서 2번째로 크다. 12~13세기에 노르웨이의 수도였으며 노르웨이의 서해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만이다. 1070년 올라프 3세가 설립한 후 1100년경 성이 세워진 뒤 상업적·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으며, 12세기에는 교회관구가 세워졌다. 14세기에 상권을 독점한 게르만 상인들의 영향력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현대에는 주로 어업·조선업과 그에 관련된 선박수리, 장비생산, 기계·금속제품 생산, 식품가공 등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발전을 다변화시켰다.
베르겐은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왠지 오슬로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도시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뭔가 엄청나게 큰 마을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겨울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가진 사랑스러운 마을. 과연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될 만 하다. 베르겐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오로라를 보기 위한 많은 배들이 들르거나 출발하는 항구도시이다. 어업과 무역이 발달한 상업 도시이지만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가파른 노면을 거슬러 오르는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볼 수 있는 베르겐의 전경은 장관이다. 편도 티켓만 끊고 전망대까지 올라온 아이들은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베르겐 일정의 마지막은 크루즈 승선을 위한 이동이다. 이동이라고 해봐야 걸어서 15분,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터미널로 가면 된다. 터미널에는 벌써 승객들이 승선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절차는 너무 간단하다. 짐을 맡기고 배에 오르면 된다. 항공여행 같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없다. 동양인 승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승선을 도와주는 스탭이 우리 일행을 보고는 한국 승객을 처음 봤다고 말한다. 우리가 크루즈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국가 식별 코드에 한국이 아예 없어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힘들게 예약했다고 말하니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올레순 Ålesund
어업 중심의 항구 도시로 여러 개의 섬이 다리와 구불구불한 수로로 연결되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모인 곳으로도 유명한데, 1904년 대형 화재로 도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가 당시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재건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심부에 위치한 악슬라 전망대에 오르면 이러한 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항구 도시인 올레순은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로 가는 관문이다. 이번 일정에 게이랑에르는 포함되지 않았다. 해안선 총 연장 길이가 5만 킬로가 넘는 장대한 대자연의 신비를 모두 확인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의 이미지가 강한 올레순은 역시 오랜 어업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어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크루즈에서 내린 승객들이 시내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몇몇 기념품 가게는 문을 열었지만 마을은 조용하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사투를 벌이던 작은 조각배보다는 크지만 세월이 느껴지는멋지고 작은 어선이 올레순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익히 보아오던 현대식의 대형 선박들과 비교해서 이 작고 오래된 배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올레순 항구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이 작은 어선 앞뒤로도 비슷한 연식과 크기의 배들이 몇 척 늘어서 있었다. 노르웨이 서남부 끝에 위치한 낚시바늘 모양의 땅으로 예로부터 어업과 무역이 발달한 소도시인 올레순. 피요르드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이 도시의 주요 관광 어트랙션 중의 하나인 이 오래된 어선들은 철저하게 상업화, 대형화 된 현대 어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트론헤임 Trondheim
바이킹 시대,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수도 역할을 했던 오래된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니다로스 성당은 재건과 복원을 반복해 당시의 고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최북단에 위치한 중세 성당이라는 명성이 덧붙어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니델바 강변을 따라 형성된 구시가지의 풍경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 일행은 하빌라 크루즈의 중간 기착지인 트론헤임에서 이번 도시 특집 일정을 마무리 했다. 배는 노르웨이 최북단까지 올라갈 것이다.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는 또 다른 자연의 경이가 펼쳐지겠지. 더 올라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다지만 오보이!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트론헤임은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볼 것들, 차분한 분위기로 이틀간 작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왕들이 즉위식을 가졌던 천년 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과 목조건물들이 강가 양쪽에 늘어선 구시가, 그 양쪽의 건물들을 오갈 수 있는 올드타운브리지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즐비한 시내를 돌아봤다. 한 CNN 기자가 인생식당이라며 극찬한 노르웨이 전통 스타일 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감자 요리도 먹었다. 너무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노르웨이 청년 샤크는 우리 일행을 위해 식당 앞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포즈를 취해 줬다.
트론헤임에 정박 후 노르웨이 최북단으로 향할 배에 안녕을 고하고 시내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우리 일행은 반가운 털뭉치와 인사를 나눴다. 이 아이의 이름은 루카, 아주머니는 강아지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우리를 보고 말을 건넨다. 우리는 트론헤임과 노르웨이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묻고 싶었지만 자신은 노르웨이인이 아니라 잠시 항구에 머무는 중이란다. 아주머니는 네덜란드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 로테르담에서 왔고 작은 배로 유럽을 여행중이다. 루카도 당연히 네덜란드 출신이다. 잠시 트론헤임에 배를 묶고 머물다가 어디가 될지 모르는 또 다른 곳으로 출발할 예정인 배의 돛 꼭대기에는 작은 네덜란드기가 선명하게 휘날리고 있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26 ‘PURE & CLEAN NORWA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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