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 우주먼지 지웅배
천문학자이자 유튜버 우주먼지 지웅배가 들려주는 우주의 개념과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흥미롭고 사려 깊은 얘기들
지금 우리는 우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천문학이 무엇을 연구하는가’를 정의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우선 ‘우리는 혼자인가. 지구처럼 생명체를 품고 있는 행성이 우리 하나뿐일까.’에 대한 연구 분야가 있고, 두 번째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주의 탄생과 진화, 우주의 종말까지를 살펴보는 것이 있습니다.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는 외계 행성이 너무나 많고 찾는 것조차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에요. 진짜 생명체가 있는지는 아직 몰라요. 관측을 많이 못해서라기보다는 뭘 기준으로 ‘이 행성에 생명체가 있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합의가 안 돼 있어요. 외계 행성의 대기권을 관측하면 수증기도 있고 이산화탄소, 메테인도 있거든요. 이런 화학 성분까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있으니 광합성을 하는 식물, 생명체가 있다’고 단정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럼 외계 생명체가 지구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도 있는 걸까요?두 가지 의견이 다 있습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생명 진화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비슷할 거라고 봐요. 지구에서 벌어진 생명 탄생과 진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루트이긴 하거든요. 대표적으로 물의 존재를 중요시 여깁니다. 우주에서 분자 결합이 가능한 원소 중에 수소와 산소가 제일 많은데, 굳이 더 복잡한 분자를 구하기 더 어려운 거죠. 물은 넓은 온도 범위에 걸쳐서 액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 활동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다른 곳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 역시 물을 주 연료로 쓰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의 측면에서는요?100년 전 에드윈 허블이 우주 팽창을 발견하고 그 이후로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라는 큰 그림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도 이견이 없어요. 최근 들어서는, 그 팽창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에 대해서 조금씩 이견이 있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앞으로 우주가 어떤 종말을 맞을지에 대해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하기 때문이에요. 팽창이 계속 빨라진다면 결국 우주는 원자 단위로 다 흩어져서 해체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차가운 세계로 종말을 맞이할 거고요. 만약에 가속도가 줄면 심지어 다시 수축까지 할 수 있어서 빅뱅의 반대인 ‘빅 크런치(Big crunch)’가 돼 우주가 다시 한 점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역사도 가능한 거죠. 우주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꾸는 논쟁이에요. 물론 아주 먼 미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얼마나 우리가 우주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게 천문학으로 대표되는 거대 자연과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져요. 과학의 역할이 뭔지를 많이 고민해 봤는데,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가는 게 과학의 역할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과학을 통해서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건 되게 중요한 도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계속 궁금해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게, 그 지적인 욕구를 자극해 주는 게 과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계 생명체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 거의 100% 기대를 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체가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행성들은 너무나 많이 발견됐고, 우주는 138억 년을 살았어요.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45억 년 정도고요.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과 진화가 어디선가 또 재현될 수 있을 정도로 우주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또 환경 조건으로도 꽤 유력한 곳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없는 게 더 과학적으로 신기할 것 같아요. 백 년, 천 년을 찾아도 생명체가 안 나온다면 그게 또 다른 종류의 과학의 위기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외계 생명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조금 도망가는 답변일 수도 있는데, 먼저 약간의 양해가 필요해요. 많은 분들이 <아바타>나 <디스트릭트 9> 같은 영화에 나오는 인간형 외계 생명체를 기대할 텐데,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게 발견되더라도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를 생각해 봐도 지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박테리아, 미생물 같은 것이거든요. 생명이 진화한다는 건 원시적인 모습을 거쳐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점점 윗 단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아가기 어려워질 거예요. 우주에도 당연히 더 원시적인,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더 흔할 거란 말이죠. 언제쯤 생명체가 발견될까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단언컨대 최초로 발견되는 건 현미경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일 겁니다.
SF에서 그리는 외계인 모습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것 같아요. SF 보시다 보면 과학자로서 말이 안 되는 설정 같은 게 눈에 띄지는 않나요?SF에 나오는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 여러 장치들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 따져가며 즐기는 게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픽션이니까요. ‘광선검은 빛인데 어떻게 서로 부딪히냐’ 이런 거 하나하나 따지지 않잖아요. 중요한 건 과학적 설정이 맞느냐가 아니라 창작자가 정한 설정과 논리를 계속 유지하는가 라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감명 깊게 봤던 영화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예요. 머지않은 미래에 달이나 화성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오가는, 우주가 일상의 공간이 되어 버린 시대인데 주인공은 더 이상 우주에 가도 감동을 받지 않아요. 마치 우리의 평범한 출근길 같은 거죠. 그게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했던 게, 아직 우리는 우주를 마음껏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저’ 탐사 로봇이 찍어 준 ‘창백한 푸른 점’ 같은 사진을 보면 감동받고 잊고 있던 지구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풍경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느꼈던 감동을 후손들도 느낄까요?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그런 우주와의 관계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외부인의 시점에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소중함, 아름다움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능력도 길러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좀 다른 얘기인데, 칼 세이건이 인류가 ‘기술적 청소년기를 살고 있다’고 정의한 적이 있어요. 인류는 스스로를 파국에 이르게 할 정도의 위험한 기술을 쥐고 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거죠. 특히 당시에 한창 핵무기를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그에 착안해서 청소년기의 주요한 특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유독 남의 시선을 더 신경 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 앞에 펼쳐진 지구를 보면서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전쟁이나 혼란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칼 세이건의 지적이 유효한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단계인데, 우리는 지구를 떠나려고 하고 있잖아요. 민간 우주 관광도 본격화 됐고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공언하고 있고요.‘뉴 스페이스’로 대변되는 트렌드 변화가 생기면서 국가 주도로만 이루어지던 우주 개발 산업이 민간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어요. 충격이었던 건 트럼프 행정부가 ‘나사(NASA)’ 국장으로 관료 출신도, 과학자, 공학자도 아닌 기업가를 지명한 건데요. 단지 스페이스X 로켓으로 민간 우주여행을 해 본, 좀 거칠게 말하면 우주 관광객 출신이죠. 달에 가는 ‘아르테미스 계획’에 나사가 한창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좀 더 노력과 돈을 들여서 한꺼번에 화성에 가자는 발언을 한 일도 있었고요. 일론 머스크든 트럼프 행정부든 화성에 가겠다는 목적은 뚜렷해 보여요. 공교롭게도 과거 소련과 미국의 우주 냉전처럼 소위 ‘우주 굴기’의 중국도 굉장히 공격적이거든요. 독자적인 우주정거장도 짓고요. 정서적으로 중국 과학자들은 반드시 미국보다 화성에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붉은 행성엔 붉은 깃발이 먼저 꽂혀야 한다’라는 정서, 그러니까 화성 자체를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무대로 생각하죠. 탐사 로봇 보내는 걸 성공하기도 했고, 그런 성과가 있으니 또 미국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
화성 테라포밍이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고치기 위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기술적인 가능성에 대한 평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우려가 있을 것 같아요.두 가지의 비판이 가능한데 첫 번째, ‘기술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충분치 않습니다. 화성의 흙으로 식물을 기르고 사람을 보내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화성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하면 다른 문제죠.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Visit, yes. Settle, not yet’. 일단 화성은 지구에 비해서 중력이 너무 약해서 대기도 거의 없고 설령 대기를 만든다고 해도 약한 중력 때문에 금방 날아가 버릴 거예요. 약한 중력 탓에 내부가 지질학적으로 활발하지 않아서 태양풍, 방사선을 막아주는 자기장도 못 만들어요. 굳이 화성에서 살겠다고 하면 대안은 땅 밑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화성에 있는 모든 얼음을 녹이고 스며들어 있는 수증기를 다 꺼내봤자 화성의 대기압을 지구처럼 채우기엔 한참 못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화성에 있는 걸로 안 되면 소행성이나 혜성까지 다 갖고 와서 추락시켜야 하는데 혜성이 천 개는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많아요. 윤리적, 철학적 차원에서도, 우리가 화성에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게 미래를 향하는 멋진 슬로건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지구에서 벌어지는 환경 문제 같은 것들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어떤 마약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구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할 문제들을 유배시키고 둔감해지게 하는 거죠. ‘괜찮아. 화성에 가서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하면 되지.’ 이런 건데, 중간고사 망하면 ‘그래, 중간고사 버리고 기말고사 제대로 한다.’ 이런 것 같아요. 일론 머스크는 화성으로 진출하는 인류를 ‘다중행성종’이라고 되게 멋지게 표현했지만 차라리 저는 ‘우주 화전민’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해요. 첫 번째 행성을 불사르고 두 번째 행성으로 옮기는 거죠. 애초에 생명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확실치도 않은 화성을 개간하는 것보다 그래도 생명이 살았는데 잠깐 망가져가고 있는 지구를 되살리는 게 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진짜 화성까지 테라포밍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충분히 지구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늘 우주를 보는 일을 하시니까, 지구를 볼 때 좀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요.천문학의 역사가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우리 DNA에 각인되어 있는 우주론적 나르시시즘을 계속 망가뜨리고 떨쳐내게 해 왔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과분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어요. 문화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심지어 고대 과학에서도요. 그런데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우주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아무런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그냥 이 광막한 우주 한복판 어딘가에 처박혀 있고 우주가 진화하는 와중에 어쩌다 튀어나왔을 뿐이라는 시니컬한 관점을 가지게 된 거죠. 지구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우주의 수많은 것 중 하나, 단지 내가 여기 살고 있다, 그냥 그런 정도로 느끼는 것 같아요.
* 기사 전문은 OhBoy! No.133 ‘SPACE DI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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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우주먼지 지웅배
천문학자이자 유튜버 우주먼지 지웅배가 들려주는 우주의 개념과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흥미롭고 사려 깊은 얘기들
지금 우리는 우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천문학이 무엇을 연구하는가’를 정의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우선 ‘우리는 혼자인가. 지구처럼 생명체를 품고 있는 행성이 우리 하나뿐일까.’에 대한 연구 분야가 있고, 두 번째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주의 탄생과 진화, 우주의 종말까지를 살펴보는 것이 있습니다.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는 외계 행성이 너무나 많고 찾는 것조차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에요. 진짜 생명체가 있는지는 아직 몰라요. 관측을 많이 못해서라기보다는 뭘 기준으로 ‘이 행성에 생명체가 있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합의가 안 돼 있어요. 외계 행성의 대기권을 관측하면 수증기도 있고 이산화탄소, 메테인도 있거든요. 이런 화학 성분까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있으니 광합성을 하는 식물, 생명체가 있다’고 단정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럼 외계 생명체가 지구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도 있는 걸까요?두 가지 의견이 다 있습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생명 진화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비슷할 거라고 봐요. 지구에서 벌어진 생명 탄생과 진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루트이긴 하거든요. 대표적으로 물의 존재를 중요시 여깁니다. 우주에서 분자 결합이 가능한 원소 중에 수소와 산소가 제일 많은데, 굳이 더 복잡한 분자를 구하기 더 어려운 거죠. 물은 넓은 온도 범위에 걸쳐서 액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 활동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다른 곳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 역시 물을 주 연료로 쓰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의 측면에서는요?100년 전 에드윈 허블이 우주 팽창을 발견하고 그 이후로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라는 큰 그림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도 이견이 없어요. 최근 들어서는, 그 팽창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에 대해서 조금씩 이견이 있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앞으로 우주가 어떤 종말을 맞을지에 대해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하기 때문이에요. 팽창이 계속 빨라진다면 결국 우주는 원자 단위로 다 흩어져서 해체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차가운 세계로 종말을 맞이할 거고요. 만약에 가속도가 줄면 심지어 다시 수축까지 할 수 있어서 빅뱅의 반대인 ‘빅 크런치(Big crunch)’가 돼 우주가 다시 한 점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역사도 가능한 거죠. 우주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꾸는 논쟁이에요. 물론 아주 먼 미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얼마나 우리가 우주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게 천문학으로 대표되는 거대 자연과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져요. 과학의 역할이 뭔지를 많이 고민해 봤는데,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가는 게 과학의 역할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과학을 통해서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건 되게 중요한 도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계속 궁금해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게, 그 지적인 욕구를 자극해 주는 게 과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계 생명체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외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 거의 100% 기대를 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체가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행성들은 너무나 많이 발견됐고, 우주는 138억 년을 살았어요.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45억 년 정도고요.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과 진화가 어디선가 또 재현될 수 있을 정도로 우주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또 환경 조건으로도 꽤 유력한 곳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없는 게 더 과학적으로 신기할 것 같아요. 백 년, 천 년을 찾아도 생명체가 안 나온다면 그게 또 다른 종류의 과학의 위기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외계 생명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조금 도망가는 답변일 수도 있는데, 먼저 약간의 양해가 필요해요. 많은 분들이 <아바타>나 <디스트릭트 9> 같은 영화에 나오는 인간형 외계 생명체를 기대할 텐데,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게 발견되더라도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를 생각해 봐도 지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박테리아, 미생물 같은 것이거든요. 생명이 진화한다는 건 원시적인 모습을 거쳐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점점 윗 단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아가기 어려워질 거예요. 우주에도 당연히 더 원시적인,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더 흔할 거란 말이죠. 언제쯤 생명체가 발견될까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단언컨대 최초로 발견되는 건 현미경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일 겁니다.
SF에서 그리는 외계인 모습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것 같아요. SF 보시다 보면 과학자로서 말이 안 되는 설정 같은 게 눈에 띄지는 않나요?SF에 나오는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 여러 장치들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 따져가며 즐기는 게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픽션이니까요. ‘광선검은 빛인데 어떻게 서로 부딪히냐’ 이런 거 하나하나 따지지 않잖아요. 중요한 건 과학적 설정이 맞느냐가 아니라 창작자가 정한 설정과 논리를 계속 유지하는가 라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감명 깊게 봤던 영화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예요. 머지않은 미래에 달이나 화성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오가는, 우주가 일상의 공간이 되어 버린 시대인데 주인공은 더 이상 우주에 가도 감동을 받지 않아요. 마치 우리의 평범한 출근길 같은 거죠. 그게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했던 게, 아직 우리는 우주를 마음껏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저’ 탐사 로봇이 찍어 준 ‘창백한 푸른 점’ 같은 사진을 보면 감동받고 잊고 있던 지구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풍경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느꼈던 감동을 후손들도 느낄까요?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그런 우주와의 관계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외부인의 시점에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소중함, 아름다움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능력도 길러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좀 다른 얘기인데, 칼 세이건이 인류가 ‘기술적 청소년기를 살고 있다’고 정의한 적이 있어요. 인류는 스스로를 파국에 이르게 할 정도의 위험한 기술을 쥐고 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거죠. 특히 당시에 한창 핵무기를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그에 착안해서 청소년기의 주요한 특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유독 남의 시선을 더 신경 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 앞에 펼쳐진 지구를 보면서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전쟁이나 혼란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칼 세이건의 지적이 유효한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단계인데, 우리는 지구를 떠나려고 하고 있잖아요. 민간 우주 관광도 본격화 됐고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공언하고 있고요.‘뉴 스페이스’로 대변되는 트렌드 변화가 생기면서 국가 주도로만 이루어지던 우주 개발 산업이 민간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어요. 충격이었던 건 트럼프 행정부가 ‘나사(NASA)’ 국장으로 관료 출신도, 과학자, 공학자도 아닌 기업가를 지명한 건데요. 단지 스페이스X 로켓으로 민간 우주여행을 해 본, 좀 거칠게 말하면 우주 관광객 출신이죠. 달에 가는 ‘아르테미스 계획’에 나사가 한창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좀 더 노력과 돈을 들여서 한꺼번에 화성에 가자는 발언을 한 일도 있었고요. 일론 머스크든 트럼프 행정부든 화성에 가겠다는 목적은 뚜렷해 보여요. 공교롭게도 과거 소련과 미국의 우주 냉전처럼 소위 ‘우주 굴기’의 중국도 굉장히 공격적이거든요. 독자적인 우주정거장도 짓고요. 정서적으로 중국 과학자들은 반드시 미국보다 화성에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붉은 행성엔 붉은 깃발이 먼저 꽂혀야 한다’라는 정서, 그러니까 화성 자체를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무대로 생각하죠. 탐사 로봇 보내는 걸 성공하기도 했고, 그런 성과가 있으니 또 미국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
화성 테라포밍이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고치기 위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 기술적인 가능성에 대한 평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우려가 있을 것 같아요.두 가지의 비판이 가능한데 첫 번째, ‘기술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충분치 않습니다. 화성의 흙으로 식물을 기르고 사람을 보내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화성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하면 다른 문제죠.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Visit, yes. Settle, not yet’. 일단 화성은 지구에 비해서 중력이 너무 약해서 대기도 거의 없고 설령 대기를 만든다고 해도 약한 중력 때문에 금방 날아가 버릴 거예요. 약한 중력 탓에 내부가 지질학적으로 활발하지 않아서 태양풍, 방사선을 막아주는 자기장도 못 만들어요. 굳이 화성에서 살겠다고 하면 대안은 땅 밑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화성에 있는 모든 얼음을 녹이고 스며들어 있는 수증기를 다 꺼내봤자 화성의 대기압을 지구처럼 채우기엔 한참 못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화성에 있는 걸로 안 되면 소행성이나 혜성까지 다 갖고 와서 추락시켜야 하는데 혜성이 천 개는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많아요. 윤리적, 철학적 차원에서도, 우리가 화성에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게 미래를 향하는 멋진 슬로건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지구에서 벌어지는 환경 문제 같은 것들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어떤 마약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구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할 문제들을 유배시키고 둔감해지게 하는 거죠. ‘괜찮아. 화성에 가서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하면 되지.’ 이런 건데, 중간고사 망하면 ‘그래, 중간고사 버리고 기말고사 제대로 한다.’ 이런 것 같아요. 일론 머스크는 화성으로 진출하는 인류를 ‘다중행성종’이라고 되게 멋지게 표현했지만 차라리 저는 ‘우주 화전민’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해요. 첫 번째 행성을 불사르고 두 번째 행성으로 옮기는 거죠. 애초에 생명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확실치도 않은 화성을 개간하는 것보다 그래도 생명이 살았는데 잠깐 망가져가고 있는 지구를 되살리는 게 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진짜 화성까지 테라포밍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충분히 지구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늘 우주를 보는 일을 하시니까, 지구를 볼 때 좀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요.천문학의 역사가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우리 DNA에 각인되어 있는 우주론적 나르시시즘을 계속 망가뜨리고 떨쳐내게 해 왔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과분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어요. 문화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심지어 고대 과학에서도요. 그런데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우주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아무런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그냥 이 광막한 우주 한복판 어딘가에 처박혀 있고 우주가 진화하는 와중에 어쩌다 튀어나왔을 뿐이라는 시니컬한 관점을 가지게 된 거죠. 지구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우주의 수많은 것 중 하나, 단지 내가 여기 살고 있다, 그냥 그런 정도로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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