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OFFICIAL VISITOR’S GUIDE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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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을 처음 방문하는 모든 외계 생명체들을 위한 비공식 필독 가이드
U+IF728 지구 사용 설명서 001 :

자, 지구에 오신 걸 환영…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지구는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아마 당신은 출발하기 전에 “지구, 푸른 행성! 생명과 문화가 가득한 곳!” 같은 여행 안내 책자를 보고 왔겠죠? 음… 업데이트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당신이 지구에 친구를 찾으러 왔든, 정복하러 왔든,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실수로 착륙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지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 당신은 아마 우주선을 돌리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그래도 오신 김에 이 별의 자연과 환경, 정치와 사회, 문화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안내해 드릴게요. 물론, 듣다 보면 슬슬 “그냥 다음 행성으로 갈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세요. 적어도 지구인들은 수많은 실수와 모순 속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존재들이거든요.





WHO SHOULD CONTACT 입국심사?

지구에 온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 누구랑 얘기를 해야 하냐고요? 글쎄요, 이 행성에는 80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살고 있거든요. 그냥 아무한테나 말 걸었다가는 “설문조사 안 합니다”라는 말만 듣고 끝날 수도 있어요. 

일단 우리에게 와봤자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핵심을 알려드리죠. 당신의 컨택트 포인트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왜냐고요? 지구에서 제일 힘센 나라가 미국이거든요. 언제나 거의 항상 그랬어요. 심지어 우리가 보는 영화에서도 당신들은 항상 제일 먼저 미국으로만 가더라고요. 

그리고 운 좋게도 지금 미국 대통령은 엄청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에요.(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의 절친 중 한 명은 우주를 왔다 갔다하는 초거부예요. 인간들이 이 행성을 완전히 망가뜨리면 백만 명을 데리고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죠. 그 말인즉, 당신들이 지구를 접수할 생각이라면 그들과 미리 협상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우리도 좀 태워가 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UN이나 EU 같은 곳은 찾아가도 별 소용이 없을 거예요. 회의는 열심히들 하지만, 뭔가… 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무튼, 성공적인 첫 만남을 기원합니다! 혹시라도 실수로 지구를 폭파시키게 된다면… 그건 우리한테 미리 얘기해 주세요. 적어도 보고 있던 넷플릭스 시리즈 마지막편은 보고 가고 싶으니까요.



OUR HISTORY 지구의 역사가 궁금하세요?

그런데 혹시 이 행성의 역사에 대해 공부 좀 하고 오셨나요? 만약 안 하셨다면… 음, 축하합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이 행성의 역사는 어차피 전쟁과 갈등의 연속이 전부입니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싸울 핑계를 찾고, 이유를 만들고,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땅 때문에 싸우고, 종교 때문에 싸우고, 서로 다르게 생겼다고 싸우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싸우고, 심지어 같은 가족끼리도 싸웁니다. 

이렇게 싸우다가 결국 무기가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한 방이면 행성 전체를 날려버릴 무기”까지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고 나서는 “이제 너무 위험하니까 평화를 유지하자”고 합니다. …그러고도 여전히 싸우고 있어요. 더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싸움을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역사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복붙’되는 거죠.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릴게요. 인간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주면 이렇게 말합니다. “음… 그런데 이건 원래 우리 방식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책을 거부하는 데에도 놀라운 능력을 가졌어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혹시라도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가세요. 어차피 인간들은 답을 듣고도 자기들끼리 또 싸울 테니까요.



ALL LIVING THINGS 인간만 빼고 다 아름다워요

당신 혹시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별을 기대하셨나요? 맞아요, 이 행성에는 약 870만 종의 생물이 조화롭게 살고 있죠. 하지만 딱 한 종이 말썽이에요. 바로, “인간(HOMO SAPIENS)” 입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는 “지능이 뛰어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자랑하지만, 동물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다 망치고 다니는 종”이죠.

 우선, 인간들은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SNS에 올리고, 생일도 챙겨줘요. 하지만 돼지, 소, 닭은 공장의 부품처럼 찍어내고 있어요. 어떤 동물은 친구고, 어떤 동물은 음식이라는 기준은? 그냥 인간 마음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야생 동물을 보호하자!”라고 말하면서, 희귀한 동물을 돈 주고 사서 애완동물로 키웁니다. “멸종 위기를 막아야 해!”라고 하면서, 동물을 사냥 트로피로 전시하죠. 북극곰이 빙하 위에서 굶어 죽는 걸 보고 눈물 흘리면서, 다음날 SUV를 타고 출근하고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먹습니다. 

결국 지구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지만, 문제는 딱 하나. “인간”.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혹시 은하계에서 평판이 좋은 행성이 있나요? 여기보다는 그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혹시 인간들을 대신 관리해 주실 수 있나요? 적어도 동물들한테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될 거예요.



NOT BLUE ENOUGH? 업데이트가 필요해요

자, 마침내 당신이 이 푸른 행성, 지구에 도착했군요! …어라? 푸르지 않다고요? 네, 그럴 수도 있어요. 사진으로 본 거랑 좀 다르죠? 그거야 인간들이 지난 몇백 년 동안 열심히 파괴(그들 말로는 개발, 발전, 성장) 해왔거든요. 예전에는 공기가 상쾌하고, 바다도 맑고, 숲도 울창했는데, 지금은 미세먼지 필터 없이는 숨쉬기가 어렵고, 바다는 플라스틱 수프가 되어가고, 숲은 도시로 재개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구 온도 조절 시스템도 고장 난 상태예요.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이상 겨울답지 않죠. 

혹시 지구를 식민지로 삼을 생각이라면, 미리 알려드릴게요. 관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냥 “지구 전체가 보수 공사 중” 이에요. 하지만 인간들은 기발한 해결책을 찾았어요! 예를 들면 “탄소 중립!”이라고 외치면서 계속 공장 돌리기, 멸종 위기의 동물 보호를 얘기하면서 소와 돼지는 무한정으로 먹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면서 모두의 손에 들려있는 1회용 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천재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나중에 해결하자.”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아직 희망은 있어요. 어떤 인간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바다거북들은 인간 대신 플라스틱을 씹으며 묵묵히 버티고 있고요. 지구를 떠날 백만 명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79억 9,999만 명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서 환경을 지킬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그러니까, 혹시 지구를 정리하고 새로 꾸밀 계획이 있다면 저희도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적어도 나무라도 몇 그루 심고 가주세요.



ENTERTAINMENT 즐길거리도 많아요

인간들은 스스로를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라고 부릅니다. 자부심이 끝내주거든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춥니다. 과거에는 동굴 벽에 삶을 기록했고 지금은 휴대폰을 꺼내 “자기 얼굴”을 찍으며 기록하죠. (이걸 “셀카”라고 부릅니다.) 음악도 아주 발달했어요! 웅장한 교향곡부터, 기타 하나로 세상을 뒤흔든 락, 그리고… 어떤 곡은 가사가 “YEAH, YEAH, YEAH” 뿐인데도 수백만 명이 따라 부릅니다. 

상상력을 담은 위대한 이야기들도 많아요. 신화와 전설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 했고, 이제는 초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세상을 구하는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외계인 관련 영화의 90%가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내용이라는 거예요. (이런 영화를 보고도 당신이 이곳에 착륙했다면… 정말 용감한 겁니다.) 인간들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불과 칼을 이용해 “요리”라는 문화를 발전시켰어요. 어떤 나라에서는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는 걸 즐기고, 어떤 나라에서는 생선을 날것으로 먹으며 감탄합니다. 그리고 어떤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이 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둥글고, 치즈가 올라가고, 삼각형으로 잘라 먹는 음식입니다. (맞아요, 피자요.)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용도가 아닙니다. 인간들은 “패션”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요. 누군가는 단순한 티셔츠를, 누군가는 이상한 구멍이 잔뜩 난 청바지를,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기 몸보다 더 큰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입습니다. 어떤 스타일이 유행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30년쯤 지나면 예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이 다시 돌아온다.” (왜 그런지는 인간들도 모릅니다.) 이 행성에는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고, 즐기는 문화가 가득합니다. 때로는 이상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가끔은 너무 혼란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인간들에게 문화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들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죠. 그러니 너무 이상해 보이더라도 놀라진 마세요. 이들도 자기들이 만든 문화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 기사 전문은 OhBoy! No.133 ‘SPACE DI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33 MAR AP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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