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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동물권,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과 실천, 프로젝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심형준 감독, 배우 이주영, 비건타이거 양윤아, 오보이! 김현성 편집장
그린피스, 후지필름, 도그어스플래닛, 수퍼빈 and more.

스튜디오 사진 김현성, 유예진 | 현장 스케치와 영화 스틸 사진 임영웅, 페퍼로니스튜디오 | 영화 촬영과 스틸 사진 장비 지원 후지필름

 

우연이 만든 최고의 팀워크, 그리고 나비효과
이들이 만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지도

‘언셀프’가 열리기 전까지 심형준 감독, 배우 이주영, 비건타이거의 양윤아는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셀러로 참여한 현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통의 관심사가 드러났다. 환경, 동물권,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곧 의기투합으로 이어졌고, 마침 심형준 감독이 그린피스의 제안과 후지필름의 지원으로 진행하던 환경 영화 프로젝트에 두 사람이 전격 합류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오보이! 김현성 편집장도 가만있을 수 없었고 영화 포스터 촬영과 홍보를 자청하며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 <클리어>. 촬영을 마치고 편집 과정에 들어간 지금,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고 잘 짜인 각본 같다. 이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동물과 환경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단체, 기업이 마치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만남, 이 영화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 동물권과 환경 신(Scene)의 발전을 이끌 아주 중요한 나비효과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 영화를 만든 네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 심형준 감독, 배우 이주영, 비건타이거 양윤아, 오보이! 김현성 편집장이 함께하는 대담. 그들이 어떻게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생각과 과정을 거쳐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 이 흥미로운 연결이 어떻게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질지. 




김현성 세 분은 저 만나기 전에 서로 만난 적 없죠? 심형준 감독님, 이주영 씨, 양윤아 실장님 각각 제가 처음 만났다가 서로 알게 됐는데, 셋이 갑자기 일을 꾸며서 영화를 찍게 됐잖아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한번 모이자고 했어요. 형준 씨는 저랑 알게 된 지 한 7, 8년 됐나요? 한국에 들어왔다고 연락했을 때요.

심형준 더 됐죠. 이제 딱 12년 됐어요.

김현성 그렇구나.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심형준인데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호기심이 생겨서 오라고 했어요.

심형준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제가 윤도현 형네 회사에 있었어요. 그때 도현이 형 사진 아카이빙을 쭉 봤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는 거예요. 보통 밴드 네 분, 다섯 분 찍을 때의 전형적인 느낌, 포즈 같은 게 있는데 그 사진은 너무 재미있어서 누가 찍은 거냐 물어봤더니 김현성 실장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촬영 비하인드도 많이 들었는데 재미있는 분 같았고, 저도 이제 한국에 막 와서 활동을 시작해야 하니 한번 뵙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었죠.

김현성 그때부터 인연이 돼서 오보이! 화보도 한 번 찍었었고, 흥미로운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친분을 이어오다가 이번에 이렇게 같이 하게 된 거죠. 양윤아 실장님은 비건페스티벌 때문에 알게 됐죠?

양윤아 네. 저도 거의 한 10년 전인데, 2016년 5월에 연락드렸었어요. 제가 패션 쪽에 있다가 NGO에서 활동을 3년 정도 하는 동안 오보이!를 너무 감명 깊게 봤거든요. 엄청 패셔너블하고 멋있는데 동물과 생태에 관한 얘기를 다루고 있어서요. 비건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SNS로 메시지를 드렸죠. ‘비건 패션 브랜드를 하는 사람이고,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건페스티벌을 열려고 하는데 오시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진짜 와주셨어요. 그때부터 알게 됐죠. 

김현성 우리나라에 비건 문화라는 게 점점 정착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죠. 정말 좋은 행사예요. 지금 잘 되고 있나요? 

양윤아 네. 지금은 같이 했던 기획자 2명하고 대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서포팅을 하고 있어요. 기획자랑 서포터즈는 다 자원봉사예요. 그 친구들이 계속 운영하고 있어요. 



김현성 비거니즘이라는 건 사실 먹는 거에 국한되지 않고 패션이라든가 라이프스타일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이잖아요. 비건페스티벌이 먹거리 중점에서 더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다양한 행사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지금도 너무 잘하고 계시지만요. 양윤아씨가 처음 주도해서 만들었을 때 너무나 좋은 행사니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으로 갔었죠. 또 비건타이거라는 너무나 좋은 브랜드를 이끌어 가고 계시니까 비건 패션, 나아가 전체 패션 신 안에서 더 멋진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응원하고 있었어요. 주영씨는 비교적 최근에 만났는데, 처음 본 게 카라 동물영화제였어요. 영화제에서 제가 말을 걸었죠. 제 소개를 하고 알고 지내고 싶다고요.

이주영 저는 이미 오보이!를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말씀 드린 적 없는데, 예전에 모델 활동했을 때 편집장님이랑 미팅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제가 그때 떨어졌어요. (웃음) 

김현성 네? 정말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어떤 촬영이었죠? 

심형준 왜 그러셨어요. (웃음) 

이주영 저도 어떤 거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저랑 다른 한 명 중에 서 고민하셨는데 결국 떨어졌어요. 그때 굉장히 핫했던 사진가셨기 때문에 사실 미팅 한 것만으로도 되게 영광이었죠. 그렇게 저는 이미 편집장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김현성 와, 그 얘기를 왜 아직까지 안 했어요? 

이주영 오늘,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려고요. 이런 반응을 기다리면서. (웃음) 사실 편집장님이 잘 당황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시잖아요. 

김현성 정말 깜짝 놀랐네요.(웃음) 주영 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찾아보니 환경이나 동물권에 관심도 많고, 자기 신념을 말하는 건 좀 조심스러울 수 있는데 용기 있게 말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더 잘 알고 싶었어요. 그 후 몇 번 만나서 항상 갖고 다니는 카메라로 동네 돌아다니며 개인 사진도 찍고 그랬죠. 오보이! 화보도 찍고,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다 같이 작년 언셀프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동물보호 단체나 환경단체 분들을 정말 존경해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 하거든요. 동물을 정말 사랑하고 환경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지만 그런 용기가 없어서 오보이!를 만든 거예요. 인식을 바꾸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오보이!를 만드는 15년 동안 계속 마음 한켠이 무거웠어요. 당장 도움이 필요하거나 고통받는 동물들이 너무나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속상해서 언셀프를 시작한 거예요. 언셀프를 통해서 수익금을 마련하거나 하면서 직접 동물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요. 그러면서 이번 언셀프에 세 분이 다 셀러로 참여 하면서 서로 인사하고 쿵짝쿵짝하더니 갑자기 뭐 영화를 찍는다, 의상을 담당한다 해서 나도 뭔가 해야 되겠다 싶었어요. 사실 적극적으로 먼저 누구한테 일을 제안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형준씨한테 전화해서 정말 말 그대로 ‘숟가락 얹고 싶다’고 얘기 했었죠. 포스터 사진 찍고 홍보를 도와주겠다고 자청을 했고 형준 씨도 흔쾌하게 좋겠다고 얘기해 줘서 이렇게 같이 하게 됐어요.

 


심형준 사실 환경에 대한 관심이나 인식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직 알아가는 단계죠. 훌륭하신 분들 앞에서 환경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게 뭔가 쑥스럽네요. 최근에 푸바오가 중국으로 반환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안녕, 할부지’라는 영화를 찍을 때 요청을 한 게 있어요.‘현 장에서 쓰레기 를 줄이자.’ 촬영 현장을 보면 다 마시지도 않은 생수병부터 각종 일회용기, 음식물 쓰레기가 엄청 나오고 치우는 시간도 꽤 걸려요. 연출팀들이 다 싸가기도 하지만, 집에 가져가서도 어떻게 처리할지도 잘 모르고요. 다들 자기 파트의 일이 있다 보니 거기까지 관심을 못 두는 거죠. 항상 죄스럽게 느껴졌었는데 내 현장에서는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규모가 드라마나 예능처럼 크지 않아서 다 같이 한번 실천해 보자고 했어요. 스태프들한테는 좀 미안하죠.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생각, 철학이 있을 텐데 들어보지도 않고 따르라고 지시하는 것 같고요. 감사하게도 스태프들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고 자기가 먹고 남긴 쓰레기에 대해 조금 더 신경 쓰고 책임을 갖게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 과정 속에서 빌드업이 되는 걸 보니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리고 이번 현장이 두 번째였는데요. 줄여보자고 했던 것 중에 하나가 핫팩이에요. 하루 뜨겁게 타고나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검색을 해 보니 이것도 어마어마한 이슈가 있더라고요. 소각 처리해도 안 좋고 내용물도 다 철가루가 아니더라고요. 보통 핫팩은 촬영장에서 다 제공이 되거든요. 각자 필요 하에 지참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현장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지는 않겠다고 했어요. 물도 연출팀이 워터 저그에 가져오면 배우나 스태프들이 따라 마시는 시스템으로 했습니다.

김현성 겨울에 길고양이 밥자리에도 핫팩이 정말 많이 필요하거든요. 춥고 물이 얼고 하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환경에 너무 안 좋은 거라, 뜨거운 물 넣어서 쓰는 물주머니 핫팩을 활용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회용 핫팩이 많이 쓰여서 마음이 안 좋죠. 

심형준 어떻게 이 영화가 시작됐는지, 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설명 하다 보니 나온 얘기인데 그렇게 안 좋은 마음이 들면서 언젠가는 환경에 대해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3년 전인가,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반대 캠페인으로 이날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뮤직비디오 제안을 주셔서 같이 한 적이 있었던 그린피스에서 최근에 다시 연락이 와서 환경 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승선하게 됐어요. 이번에 부산에서 제5차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열렸는데, 좀 더 강력한 협약을 촉구하기 위해 부산에 오랫동안 정박해 있었거든요. ‘배에 탄 김에 제가 여기에서 영화를 찍어도 되겠습니까’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유명인들이 많이 타셨던 상징적인 배예요. 류준열 배우부터 하비에르 바르뎀도 참석했었고, 그런 분들을 집중해서 촬영한 적은 있는데 그린피스 크루들이 출연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이분들과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한번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제안을 드렸어요.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또 후지필름에서 연락이 왔어요. 전주영화제 영화를 제안 주셨는데 환경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또 흔쾌히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이 두 가지를 합쳐서 한 영화로 만들게 됐어요. 

김현성 후지필름도 기업으로서의 책임감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심형준 ‘안녕, 할부지’를 통해서 만났던 김푸름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같이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파트 1을 촬영했고, 그 부분을 편집하면서 파트 2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어요. 그때 마침 언셀프에 참여를 하게 됐고 편집장님을 통해 주영씨를 소개받았는데 너무 좋았어요. 주영 씨 출연하신 영화, 드라마를 거의 다 봤고, 감독들이면 다 작업을 해 보고 싶은 배우가 아닐까 싶었는데 현장에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카메오로 출연을 부탁 드렸다가 변수가 생기면서 갑자기 주인공으로 급부상했죠. 엄청 고생하셨어요. 또 주영 씨 역할이 외계인이다 보니 어떻게 포장을 해야 될까 고민을 했는데, 같이 셀러로 참여했던 비건타이거 말씀을 하셔서 찾아봤더니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또 연락을 드렸죠. 

김현성 비건타이거라는 브랜드와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가 딱. (웃음) 

심형준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 잘 들어맞았던 것 같아요.



김현성 내가 자꾸 농담처럼 비건타이거가 쉬운 브랜드는 아니라고 얘기를 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이 볼캡이 평범한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이템인 것 같거든요. 잘 쓰고 다니지만 평소의 비건타이거 이미지와는 좀 많이 다르죠. (웃음) 대부분 상당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이고 과감한, 펑키한 느낌이잖아요. 주영 씨 이미지를 나타내기에 딱 좋은데, 그래도 좀 더 친근하고 쉬운 느낌의 라인을 만들 계획은 없어요? 비건타이거의 생각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으니까.

이주영 지금 입고 있는 것도 비건타이거 재킷인데 꽤 대중적이지 않나요? 이 안의 티셔츠도 그렇고요. 비건타이거의 장점 중 하나가,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재가 정말 좋아요. 이 티셔츠도 정말 부드럽고 재킷 주머니 안감, 이런 디테일들이 좋아요. 이 재킷 소재가 한지 가죽인데,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쉽지 않으실 텐데 방향을 고수하신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워요. 

양윤아 처음에 평범한 아이템을 안 만들었던 건, 세상에 패션 브랜드가 너무나 많은데 굳이 내가 평범한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들어서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비건 패션 브랜드를 만든 진짜 이유, 패션 산업에서 동물 착취와 학대로 점철되는 아이템을 대신하는 것 위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퍼, 가죽, 실크 등을 대체하는 소재에 프린트로 메시지도 넣고, 강력한 느낌을 주는 아이템들이 나왔죠. 한 4년, 5년 정도는 그렇게 유지를 하다가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면서 ‘평범한 옷도 비건타이거 아이템으로 입고 싶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브랜드를 너무 좋아하는데 약간 쑥스럽다. 너무 주목받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행사장이나 중요한 약속에 입는 거 말고, 매일 입고 지하철은 탈 수 있을 정도의 감을 유지해 보자’하고 그런 방향으로 조금씩 가고 있어요. 기존의 과감한 느낌의 라인이 80% 정도 됐었는데, 20~30%로 줄이고 사람들 속에 스며드는 아이템 비중으로 늘리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주영씨가 입으신 이 부드러운 티처럼요. 

이주영 이 치마도 비건타이거 제품이에요. 

양윤아 2025년 주제가 ‘더 웨이브(The Wave)’여서 약간 해파리 같은 요정 이미지도 있고, 물결 같은 모양을 표현하고 싶어서 디자인 했습니다. 주영씨는 제 뮤즈예요. 입는 옷마다 너무 잘 어울리셔서 너무 좋아요. 

김현성 언셀프에서 주영 씨가 입고 다녔던 팔이 긴, 줄무늬 니트 있잖아요. 진짜 잘 어울린다, 정말 찰떡이다 했어요. 정말 잘 만난 것 같아요. 일부러 사람들을 엮은 건 아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영화 자체도 흥미롭고 또 거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를 만났고, 의상도 그야말로 영화 때문에 만든 것 같잖아요. 저는 주영 씨가 현장에서 의상 입고 콘트라베이스 메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아, 완전히 이 영화 때문에 제작한 옷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양윤아 가지고 있던 옷으로 스타일링하고 조금 리폼을 하긴 했어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직 제목이 없다고 하셔서 제 나름대로 ‘플라스틱 에일리언’이라고 가상의 제목을 정하고 읽었어요. (웃음) 그리고 조감독님께 어디서 촬영하는지 여쭤봐서 장소 느낌도 보고 거기에 맞는 컬러감, 또 배우들끼리 붙는 신이 있을 때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을 했어요. 무엇보다 이 행성의 사람이 아닌 느낌으로 여러 가지 다른 질감의 것들이 섞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옷으로 매치해 보니 잘 맞았어요. 피팅할 때도 재밌었는데 현장 사진 보니까 더 만족스러웠어요. 

김현성 주영 씨도 그렇고 촬영했던 재개발 지구도 딱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세트 같은 느낌이어서 모든 것들이 다 너무 완벽한 거예요. 그래서 편집이 더 기대가 됩니다. 주영씨 캐릭터는 설정 자체가 외계인, 약간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잖아요. 실제의 지구의 상황도 국가 지도자들끼리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펴면서 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르는 국제기후협약도 탈퇴하고. 현실도 환경에도 그렇고 동물들에게도 너무 안 좋은 상황이긴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영화를 찍으면서 느끼는 게 남달랐을 것 같아요. 주영씨가 어떤 느낌으로 촬영을 했는지 궁금해요. 

이주영 어려운 질문이에요. 영화에 플라스틱이 주되게 나오는데, 플라스틱이라는 게 편리하긴 하지만 지구와 인간한테는 해로운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너무나 넘쳐나고, 쓰레기 산 같은 것도 생기고 있고요. 우리가 재활용 공장도 갔었지만 플라스틱이 엄청난 양으로 쌓여있고 또 계속 들어오잖아요. 이런 상황들이 미디어에서도 많이 노출되고 있고요. 그런 걸 보면 영화 속 주영이가 느끼는 감정을 저도 비슷하게 느끼면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아이러니하잖아요. 나한테 편리함을 주는데 이렇게 지구를 죽이고 있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요. 또 그걸 내가 쓰고 있다는 모순과 혼란스러움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쉽게 넘어가고 싶은데 성격적으로 그게 잘 안 되다 보니까 쓸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지고요. 외계인 주영이의 입장에서 플라스틱이 없어서는 안 되는데, 정말 차라리 이게 우리한테 필요하고 좋은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그런 외계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갖게 돼요. 평상시의 그런 마음들을 갖고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 기사 전문은 OhBoy! No.132 ‘FIND YOUR UNSELF’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32 JAN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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