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면 우리는 죽는다
사실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현실은 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동물사랑을 왜곡하고 반려동물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차별적인 생산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로 인해 세상에 나와 버려지고 고통받는 동물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고 해도 탐욕스럽고 기만적인 업계와 무정하고 이기적인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좁은 철장에 갇혀 출산을 반복하다가 죽어가는 수많은 어미 반려동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입이 아프게 동물사랑을 외쳐도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러므로, 그럴수록 우리는 더 열심히 지속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 사랑이 아니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다.
동물권에 대한 이슈는 각 영역의 다양한 상황과 개개인의 생각의 차이, 각 사안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이 등으로 항상 논쟁적이고 소모적이다. 반려동물과 축산동물,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차별적이고 편협한 시선, 다양하게 표출되는 선입견과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식의 일방통행식 태도는 동물권 논의를 제자리걸음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요소들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문제에 대한 이슈는 논외로 치더라도 반려동물의 동물권 문제 단일이슈 안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과 아집이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어떤 문제를 들여다보는 걸 좋은 태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원할 것만같은 논쟁적인 주제가 있다. 그건 어떤 경로를 통해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가의 문제이다. 오보이!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기에 독자 들에게는 익숙한 주제이겠지만 창간 14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보여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반려동물을 분양받는 사람들의 주장, 그 인식에 대한 문제점과 자기합리화, 교묘 하게 이미지 세탁을 하며 생명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문제까지, 이런 논쟁 속에서 고통받는 반려동물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의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어떻게 그들의 가족이 됐는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키우던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정도로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도, 시비 걸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같은 자신의 반려동물 때문에 고통받고 상처받는 다른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외면한다면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낳은 어미의 평생의 고통과 자신이 반려동물을 돈을 주고 사 옴으로써 지속되고 유지되는 동물학대의 시스템이 정당화 되거나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을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을 가족으로 들인다는 건 엄청 난 책임감과 상당히 부담스러운 재정적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또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상당한 지식과 꾸준한 관심, 지속적인 사랑이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애정과 관심만 있다고 동물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산과 후회를 유발할 수 있는 일이다. 동물을 키우기 위해 알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포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듯 동물을 사고 아이와 연인에게 선물한다. 그렇게 쉽게 산 동물은 또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인간의 ‘피치못할 사정’이라는 것에 의해 다른 곳으로 보내지거나 무심하고 잔인하게 버려진다.
반려동물 산업은 전체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중에 있다. 사료나 용품 산업의 규모가 커지는 걸 비판할 지점은 없다고 해도 생명을 사고파는 반려동물 분양시장이 커지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해 우리나라에서만 10만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상황이다. 수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업계의 자정을 바라는 건 무리한 일이라고 해도 반려동물 분양 업계가 교묘하게 마치 자신들이 유기동물의 동물권을 보호하는 단체인양 소비자들을 호도하고 속이는 작금의 상황은 그 심각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식이 부족한 소비자와 이미지 세탁으로 분양을 부추기는 업자들의 조합은 동물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동물을 분양받은 사람이 자신의 동물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건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이다. 상업적으로 동물을 유통하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동물을 분양받는 건 이기적이고 무정하며 다른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명을 사고 파는 행위는 동물권을 해치는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동물을, 생명을 사고 파는 건 동물 사랑이 아니다. 동물권 운동 안에서의 수많은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어떤 반대 논리나 이견 없이 의견이 일치되는 사안이다.
전반적인 동물권 논의는 모든 동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과 축산동물, 야생동물을 동일한 시선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동물복지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반려동물을 사고 팔면서, 또 반려동물을 자기 필요와 사정에 따라 어딘가로 보내고 버리면서 동물복지와 동물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개식용 종식과 비거니즘을 얘기하고 진정한 동물복지와 지구의 내일을 얘기하기 위해선 동물을 사고 팔며 또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진지하게 동물권을 얘기하는 이들과 반려동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뒤섞여서 동물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은 동물복지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 눈에는 위선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진정으로 동물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한낱 장식으로만,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인형같은 존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볼 생각도 하등의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21 ‘LAST HOME LAST HOP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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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면 우리는 죽는다
사실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현실은 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동물사랑을 왜곡하고 반려동물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차별적인 생산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로 인해 세상에 나와 버려지고 고통받는 동물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고 해도 탐욕스럽고 기만적인 업계와 무정하고 이기적인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좁은 철장에 갇혀 출산을 반복하다가 죽어가는 수많은 어미 반려동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입이 아프게 동물사랑을 외쳐도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러므로, 그럴수록 우리는 더 열심히 지속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 사랑이 아니다. 동물을 산다는 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다.
동물권에 대한 이슈는 각 영역의 다양한 상황과 개개인의 생각의 차이, 각 사안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이 등으로 항상 논쟁적이고 소모적이다. 반려동물과 축산동물,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차별적이고 편협한 시선, 다양하게 표출되는 선입견과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식의 일방통행식 태도는 동물권 논의를 제자리걸음하게 만드는 고질적인 요소들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문제에 대한 이슈는 논외로 치더라도 반려동물의 동물권 문제 단일이슈 안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과 아집이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어떤 문제를 들여다보는 걸 좋은 태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원할 것만같은 논쟁적인 주제가 있다. 그건 어떤 경로를 통해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가의 문제이다. 오보이!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기에 독자 들에게는 익숙한 주제이겠지만 창간 14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보여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반려동물을 분양받는 사람들의 주장, 그 인식에 대한 문제점과 자기합리화, 교묘 하게 이미지 세탁을 하며 생명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문제까지, 이런 논쟁 속에서 고통받는 반려동물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의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어떻게 그들의 가족이 됐는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키우던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정도로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도, 시비 걸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같은 자신의 반려동물 때문에 고통받고 상처받는 다른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외면한다면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낳은 어미의 평생의 고통과 자신이 반려동물을 돈을 주고 사 옴으로써 지속되고 유지되는 동물학대의 시스템이 정당화 되거나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을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을 가족으로 들인다는 건 엄청 난 책임감과 상당히 부담스러운 재정적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또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상당한 지식과 꾸준한 관심, 지속적인 사랑이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애정과 관심만 있다고 동물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산과 후회를 유발할 수 있는 일이다. 동물을 키우기 위해 알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포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듯 동물을 사고 아이와 연인에게 선물한다. 그렇게 쉽게 산 동물은 또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인간의 ‘피치못할 사정’이라는 것에 의해 다른 곳으로 보내지거나 무심하고 잔인하게 버려진다.
반려동물 산업은 전체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중에 있다. 사료나 용품 산업의 규모가 커지는 걸 비판할 지점은 없다고 해도 생명을 사고파는 반려동물 분양시장이 커지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해 우리나라에서만 10만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상황이다. 수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업계의 자정을 바라는 건 무리한 일이라고 해도 반려동물 분양 업계가 교묘하게 마치 자신들이 유기동물의 동물권을 보호하는 단체인양 소비자들을 호도하고 속이는 작금의 상황은 그 심각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식이 부족한 소비자와 이미지 세탁으로 분양을 부추기는 업자들의 조합은 동물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동물을 분양받은 사람이 자신의 동물을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건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이다. 상업적으로 동물을 유통하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동물을 분양받는 건 이기적이고 무정하며 다른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명을 사고 파는 행위는 동물권을 해치는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동물을, 생명을 사고 파는 건 동물 사랑이 아니다. 동물권 운동 안에서의 수많은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어떤 반대 논리나 이견 없이 의견이 일치되는 사안이다.
전반적인 동물권 논의는 모든 동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과 축산동물, 야생동물을 동일한 시선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동물복지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반려동물을 사고 팔면서, 또 반려동물을 자기 필요와 사정에 따라 어딘가로 보내고 버리면서 동물복지와 동물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개식용 종식과 비거니즘을 얘기하고 진정한 동물복지와 지구의 내일을 얘기하기 위해선 동물을 사고 팔며 또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진지하게 동물권을 얘기하는 이들과 반려동물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뒤섞여서 동물사랑을 얘기하는 모습은 동물복지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 눈에는 위선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진정으로 동물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한낱 장식으로만,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인형같은 존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볼 생각도 하등의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21 ‘LAST HOME LAST HOP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21 MAR AP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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