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향인입니다
어쩌면 오보이 독자들의 대부분은 내향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환경과 동물에 관심있는 내향인들의 생활과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 독자들에게 그들만의 얘기를 듣고 싶어졌다.
내향인 오보이 독자들이 보내온 그들의 얘기를 소개한다.
내향인 충전기充電記 | 이혜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함께 귀가하는 동료가 있다. A역에서 갈아타면 빨리 헤어지고 B역에서 갈아타면 20분 정도 함께 가야한다. 아직 친분은 없으나 호감은 있기에 더 고민하게 된다.(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쉽다) 동료를 알 수 있는 기회인데. 하지만 나와 연차가 많이 차이 나니까 이 사람은 내가 불편하진 않을까. 일을 지금 끝낸 상태니 피곤할지도 모른다. 집에 가기 전 올리브영에 들르겠다는 친구를 눈치 없이 따라가면 안 되는 것처럼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가고 싶을 수도 있다. 생각의 끝에 바로 다음역인 A역에서 갈아탄다고 말했다.
퇴근 후 지인을 만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의 모임 후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며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예측가능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집)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쉴 때 편안함을 느끼고 충전된다. 주5일 근무 직장인에게 단 이틀 밖에 없는 주말은 하루는 가사노동을 하고 하루는 온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모자라다. 따라서 주4일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며, 아무래도 이게 요원하다면 주3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본래 협상은 원했던 것보다 더 나아가 요구해야 어느 정도 비슷하게 들어맞는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충전기를 적어보겠다. 제철식재료로 건강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맑은 날 해가 들어오는 거실 의자에 앉아 직접 내린 드립커피 마시기. 요즘엔 페루 찬차마요에 정착했다. 아무 소리가 없는 상태가 좋지만 적적한 기운이 돌면 기교가 많지 않은 재즈 음반을 틀어두고 책을 읽는다. 길어봤자 최대 30분인 이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한다. 작년에 일과 사람에 지쳤을 땐 사람 목소리도 듣기 싫어서 클래식만 주구장창 재생했다. 그 결과 음악앱 연말정산에 ‘당신의 음악나이는 89세’라는 화면을 마주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빨리 상영관에서 사라지기에 개봉주간에 영화관을 찾는다. 이런 영화관은 대개 열 명 남짓의 관객 뿐. 음식물 반입 금지라 팝콘 씹는 소리나 음식 냄새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도 않고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에 어둠이 유지되기에 영화를 보며 일었던 감정의 격랑을 천천히 잠재울 수 있다. 그런 영화, 그런 영화관, 그곳의 관객들. 가끔은 묘한 연대의식을 느끼며 우리 오늘도 일단 살아보자 다짐하는 마음이 인다.
주말에 간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나 혼자 레인에 남아 안 되는 영법을 이것저것 무한대로 시도해보는 10분. 2시간 동안 수영하지만 이 시간을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속은 고요하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재택근무 하다 욕실을 오가는 순간 침대 위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들어 있는 냐옹이에게 다가가 감싸 안고 가르릉 소리 듣기. 사랑해. 지금 여기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주 작게 말해도 다 알아 듣는 고양이. 내 모든 사랑과 안온이 여기에 있다. 그 고양이는 한 달 전 자기 별로 소풍을 떠났다. 지금쯤 보드라운 플란넬 천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겠지.
한동안 나이를 먹고 그동안 많은 이를 만나본 결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다. 알고 싶고 궁금한 건 점차 줄었다. 인간관계 관리는 카네기나 하라지 나는 그저 좋은 책과 SNS 속 소식과 반려인과의 대화면 사회와 사람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최소한 내향적인 것과 비사교적인 것의 차이는 안다. 나는 에너지를 채우는 방향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기계마다 충전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나도 그렇다.
세상 사람을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나는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오만해져선 안 된다. 명랑하고 다정하며 건강한 할머니가 되려면 자만 대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알고 싶은 사람이 불현듯 나타났을 때 용기를 내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우주를 함께 탐구하는 일은 참으로 기쁘다. 그 사람이 만든 우주와 앞으로 걸어갈 세계는 직접 만나서 얘길 들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발짝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 | Tae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단어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extrovert와 introvert라는 단어를 외우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향인’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건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고 나서였다. 미국에서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리하니 이런 개념이 책으로 나온 것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대입해보니 설명할 수 없던 내 일상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들어가 혼자 책을 읽던 시간, 아무리 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결국 12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던 나. 그게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내향인으로서 내가 취미를 즐기는 방식은 이렇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퀸즈 갬빗’ 은 주인공 베스 하먼이 체스를 통해 성장하고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다. 잔잔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때로는 야구 경기를 본다. 야구 룰과 경기의 흐름을 멍하니 따라가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걸 TV로 보든, 야구장에서 보든 마찬가지다. 주말에는 전시를 보러 간다. 전시는 몸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작품을 눈으로 보는 일이다. 신체 활동과 지적 유희를 함께 충족시키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취미다.
이런 취미에서의 태도는 사람을 대할 때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반발짝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반응을 놓치는 건 아니다. 겉으로는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이야기에 계속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상대가 원하는 답을 하기 위해 잠시 고민해보기도 한다. 심지어 모임과 대화를 이끌기 위해 혼자 몰래 연습도 한다. 하지만 내향인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관찰하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것을 판단으로 이어가지 않으려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향인, 그리고 내향견 | 최소연
저는 갓난쟁이 때부터 사람과의 교류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단체 활동을 질색하며 낯선이와의 소통을 두려워한 타고나길 ‘내향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집에는 나이도 같이 살게 된 지도 5년이 다 되어가는 강아지가 있는데요. 이 친구도 내향견(?)이에요. 개는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은 저를 닮아서 강아지 친구도 못 사귀고 겁쟁이로 자라게 될까봐 집에 온 이후로 제 나름의 노력을 했어요. 처음 시작은 산책할 때 말 거는 행인들에 당황하지 않고 밝게 화답하기, 더 나아가 먼저 인사 건네어보기같은 것들이요. 딱히 별건 아니지만 사실 몸도 마음도 좋지 않아 집에만 박혀있던 그당시 저에겐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행동들이었어요.
근데 이 친구도 원래 타고나길 내향견이라 그런지 낯선 상황에 무던해질 뿐 외향적으로 바뀌진 않더라구요. 이 친구의 기본적인 성향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한 인간중심적인 생각이었구나 깨닫게 됐고 제 욕심으로 스트레스받게 했을 상황들에 반성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내향견을 존중하는 산책을 하고 있어요. 되려 사람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사는 동네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여기로 이사 온 후 몇 년을 살면서 주변을 제대로 둘러본 적도 없고 따분하고 장점이라곤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었어요.
이 친구가 집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산책을 시작하고 초반엔 와 이런 장소가 있었네? 이런 사람이 사는구나?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장소와 npc를 해금하는 재미를 느끼곤했죠. 저희끼리 지은 지명도 있어요. 일명 ‘고양이존’, ‘고라니존’, ‘너구리존’... 이유는 생각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재미는 없는 이름이죠? 하하. 그 장소들을 가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예쁜 풍경들을 마주하게 됐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스몰토크라는게 제가 걱정한 것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재밌더라구요. 동네에 사는 반려인과 반려견들도 많이 만났고 저마다의 스토리에 웃음과 감동이 있었어요. 이 친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경험들이에요.
덕분에 만난 인연 중에는 길 고양이들 밥 챙겨주시는 할아버지(일명 고양이 할아버지)가 계세요. 인사 나누는 사이가 된지 강아지가 집에 온 시간과 똑같이 5년이에요. 고양이들이 기다리니 안갈 수가 없으시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은 시간 나오셔서 챙겨주시고 뒤처리까지 깔끔히 하고 가셔요. 연세가 거의 아흔에 가까우신데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은 몸이 성치 않으셔서 길에 있는 애들도 그렇고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걱정이라고 하시는데 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동네 주민으로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근데 처음에 저희 강아지 이름을 잘못 들으셔서 계속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시는데 언젠가는 말씀 드려야할지 고민이에요...
물론 산책하면서 마냥 유쾌한 일들만 있던건 아니지만 그것 또한 그냥 성장시켜준 모험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달까요. 결국 곳곳에 이 친구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됐고 이 친구와 함께하고 나서야 드디어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내향적인 저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같이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참 전 그냥 조금 대담해진 인격이 생겼을 뿐 내향인임에는 변치 않답니다. 저는 영원히 팀 내향인이에요... 이 친구에 대해 소개를 더 하자면 형제들과 함께 새끼 때 잠깐 보호소에 있다가 임보처에서 지낸 후 저희 집에 왔어요. 이름은 구디예요. 구디를 키우기로 결심한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낸 순간 중 하나일 듯한데 그 용기 한 번에 몇 천, 몇만 배의 행복을 보답받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존재 자체로 매일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나서기 싫은 내향인의 생존기 | 장소희
나는 내향인이다. 꽤 오래전부터, 아니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은 모두가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당연히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게 쑥스러운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발표 날, 죽거나 다치지 않을 정도의 교통사고가 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도 당연한 거 아니었나? 약속이 취소되는 걸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노래도 곧잘 하고, 까불기도 잘 까불던 나의 별명은 ‘안방챔피언’이었다. 그 모든 일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집 안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여고 시절 내내 회장이었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나뿐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럼 내가 하지 뭐’라는 이상한 결론을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임감이라기보다, 그냥 오지랖이었다. 2. 아뿔싸, 대학에서는 더 큰 실수를 했다. 경영학과. 무수한 발표와 팀플의 반복.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도망치는 방법을 배우고, 겨우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제는 학교가 있는 동네는 절대 가지도 않게되었다.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3. 하필 경영을 전공한 나는 취업도 경영전략, 경영지원 등 무수한 ‘경영’이 붙은 업무를 하게되었다. 사내행사진행, 워크샵진행, 회사PR, 온갖 업체와의 미팅..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의 종합선물세트. 이 일들은 현재 진행중이다. 그래.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지. 생계가 달렸으니 너무너무 하기싫지만 일은 해야지. 4.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는 절대, 스스로 나서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나서는 건 정말, 죽기보다 싫으니까. 5. 어느날이었다. 오보이의 ‘매거진 토크’를 신청해서 갔다. 듣는 건 잘하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는 길부터 이상하게 불안했다. ‘혹시 나한테 말 걸면 어떡하지?’ ‘내가 뭘 해야 하는 자리면 어떡하지?’ ‘북토크는 원래 작가가 말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도착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보이 편집장님께 넘기겠다. 다만 확실한건, 내 심장이 물리적으로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여전히 부담스럽고 쉽지는 않지만, 한 번쯤은 나서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정말 제출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이미 조금은 나서버린 기분이다.
오직 반려견 | 이혜지
원래부터 내향인이었지만 2년전 입양한 유기견이 분리불안이 극심하여 더욱더 집순이가 되었다. 친구들하고의 약속은 반년에 한번 잡을까 말까하는데 나가서도 오직 반려견 걱정에 전전긍긍,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당장 집에 달려가고 싶다. 그렇다고 집에서 반려견과 둘이 술래잡기라도 하는 건 또 아니다. 그저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편안히 잠에 드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를 재우고 나는 주방과 욕실을 쓸고 닦고 거품 퐁퐁 청소하는 시간을 즐길뿐이다. 때가 빡빡 닦여나갈때의 그 희열은 친구와의 수다 못지 않게 즐겁다. 집안일을 한차례 해치우고 잠에서 깬 반려견과 밤에 동네 한 바퀴 도는 하루의 마무리는 또 얼마나 산뜻한지 모른다. 오직 엄마만 바라보는 우리 개. 그런 아이의 꼬순내가 너무 좋은 나. 이런 일상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럽여행도 화려한 휴양지도 전혀 부럽지 않다. 집근처엔 봄이면 매화와 벚꽃, 여름이면 매미소리와 초록나무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들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천상 내향인 | evrythinmalife
작년에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는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만 하다가 처음으로 대면근무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이라 기대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담스럽더라고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제가 업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껴 긴장감이 계속 이어져서 하루에도 여러 번 화장실에 다녀올 정도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스트레스성 위염 증세까지 나타나 약을 복용하며 겨우 버텼어요.
그렇게 인턴 기간이 어느새 막바지로 접어들고 마지막 날이 됐을 때, 회사 분들은 제게 “마지막인데 정말 아쉽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같은 말을 하며 많이 안쓰럽게 바라보셨죠.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얼굴이 더 환해지고, 말없이도 히히덕거릴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었어요. 돌이켜보니 제 표정과 태도에 이미 마음이 다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때 동료 한 분이 농담처럼 “ㅇㅇ씨, 마지막인데 왜 이렇게 밝고 즐거워 보여? 우리랑 일하기 싫었나 봐?”라고 말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저는 속으로 ‘이제 더 이상 이 압박감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나와서 웃음을 참고 있던 거였던 겁니다.
당시에는 아니라고, 그런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요. 사실은 그 말과 달리 저는 정말로 꽤 많이 기빨려 있었어요. 저는 결국 어쩔 수 없는 내향형 인간인가 봐요. 헤헤.
아무렇지 않은 하루 | 강지명
우리의 산책은 지난밤 내 개의 구역이 별일 없이 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저기 남은 흔적에 꼼꼼히 냄새를 맡고 다시 영역 표시를 하는 개를 정처 없이 따라간다. 특별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산책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개에게 맡겨진다. 나도 산책 훈련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보호자 옆에서 차분차분 발 맞춰 걷는 개를 보면 지금도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어설프게 옆에 붙어 걷게 하려다 몇 번이나 개의 발을 밟고 난 후 그냥 한 발자국 앞에 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게 둘 다 편안하다.
집 근처에는 공원이 세 개가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은 작은 공원, 큰 공원, 그리고 해변 공원. 물론 진짜 해변은 아니다. 오늘은 가장 가깝고, 그래서 자주 가게 되는 작은 공원에 가는 걸로 (개가) 정했다. 공원으로 가는 짧은 오르막길에는 가로등이 없어 해가 지면 금세 컴컴해진다. 길이 좁아 맞은 편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싶으면 나는 누리의 목줄을 짧게 잡고 풀 쪽으로 살짝 당기는데 오늘은 지나가던 할머니가 허허 웃으며 말한다. “Ich habe keine Angst vor Hunden (난 개를 무서워하지 않아)” 한국에서 워낙 조심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나 봐요. 하고 난 속으로만 대답한다.


자율적인 산책을 선호하지만 누리에게도 허락하지 않는 게 있다. 벽이나 가로등 같은 건축물에 마킹하는 일, 그리고 도보나 다른 집 정원 앞에서 볼일을 보는 일. 그 외에는 대부분 자유롭게 둔다. 작은 공원은 말 그대로 굉장히 아담하다. 천천히 걸어도 십여 분이면 한 바퀴를 돈다. 공원 곳곳에는 쓰레기통이 있고 그 위에 배변 봉투가 걸려 있다. 공짜는 아니다. 매년 우리가 반려견 세금을 내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가져온 봉투가 아직 남아 있지만 가끔은 한두 장씩 뽑아 주머니에 넣는다. 물론 독일에도 배변을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이 있다. 주위를 살피거나 난처해하는 표정도 없이 아주 당당하게 자리를 떠난다. 그럴 때면 똑같이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진심을 다해 쏘아봐 준다. 눈이 마주쳐도 그쪽은 전혀 머쓱해 하지 않지만.


예전에 한 개가 공원 입구에 있는 돌 여러 개중 하나에 올라가서 점프하며 차례로 건너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 했다. 그 개의 천재성에 감탄한 나는 간식을 이용해 누리가 돌 위에 올라가게 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위태롭게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 누리를 보고 포기했다. 잘 먹고 잘 싸면 됐지, 뭐. 개들뿐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곤충, 심지어 벌레들을 배려하는 표시판도 있다. 땅 아래에 개미집이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바로 앞 공터에도 곤충과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으니 강아지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를 본 적이 있었지. 가장 귀여웠던 건 꽃집 계산대 근처 매대에서 팔고 있던 곤충을 위한 작은 펜션들이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잠시 쉬어가라고 집 마당이나 발코니에 걸어놓는다. 이름도 곤충호텔, 벌레여관, 작은 펜션 등 다양하다. 독일에 살다 보면 (특히 마트 계산대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의 굳은 표정과 무뚝뚝함에 움찔할 때가 있는데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툭 다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또 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39 ‘i WILL SURVI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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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입니다
어쩌면 오보이 독자들의 대부분은 내향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환경과 동물에 관심있는 내향인들의 생활과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 독자들에게 그들만의 얘기를 듣고 싶어졌다.
내향인 오보이 독자들이 보내온 그들의 얘기를 소개한다.
내향인 충전기充電記 | 이혜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함께 귀가하는 동료가 있다. A역에서 갈아타면 빨리 헤어지고 B역에서 갈아타면 20분 정도 함께 가야한다. 아직 친분은 없으나 호감은 있기에 더 고민하게 된다.(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쉽다) 동료를 알 수 있는 기회인데. 하지만 나와 연차가 많이 차이 나니까 이 사람은 내가 불편하진 않을까. 일을 지금 끝낸 상태니 피곤할지도 모른다. 집에 가기 전 올리브영에 들르겠다는 친구를 눈치 없이 따라가면 안 되는 것처럼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가고 싶을 수도 있다. 생각의 끝에 바로 다음역인 A역에서 갈아탄다고 말했다.
퇴근 후 지인을 만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과의 모임 후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며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예측가능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집)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쉴 때 편안함을 느끼고 충전된다. 주5일 근무 직장인에게 단 이틀 밖에 없는 주말은 하루는 가사노동을 하고 하루는 온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모자라다. 따라서 주4일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며, 아무래도 이게 요원하다면 주3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본래 협상은 원했던 것보다 더 나아가 요구해야 어느 정도 비슷하게 들어맞는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충전기를 적어보겠다. 제철식재료로 건강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맑은 날 해가 들어오는 거실 의자에 앉아 직접 내린 드립커피 마시기. 요즘엔 페루 찬차마요에 정착했다. 아무 소리가 없는 상태가 좋지만 적적한 기운이 돌면 기교가 많지 않은 재즈 음반을 틀어두고 책을 읽는다. 길어봤자 최대 30분인 이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한다. 작년에 일과 사람에 지쳤을 땐 사람 목소리도 듣기 싫어서 클래식만 주구장창 재생했다. 그 결과 음악앱 연말정산에 ‘당신의 음악나이는 89세’라는 화면을 마주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빨리 상영관에서 사라지기에 개봉주간에 영화관을 찾는다. 이런 영화관은 대개 열 명 남짓의 관객 뿐. 음식물 반입 금지라 팝콘 씹는 소리나 음식 냄새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도 않고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에 어둠이 유지되기에 영화를 보며 일었던 감정의 격랑을 천천히 잠재울 수 있다. 그런 영화, 그런 영화관, 그곳의 관객들. 가끔은 묘한 연대의식을 느끼며 우리 오늘도 일단 살아보자 다짐하는 마음이 인다.
주말에 간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나 혼자 레인에 남아 안 되는 영법을 이것저것 무한대로 시도해보는 10분. 2시간 동안 수영하지만 이 시간을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속은 고요하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재택근무 하다 욕실을 오가는 순간 침대 위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들어 있는 냐옹이에게 다가가 감싸 안고 가르릉 소리 듣기. 사랑해. 지금 여기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주 작게 말해도 다 알아 듣는 고양이. 내 모든 사랑과 안온이 여기에 있다. 그 고양이는 한 달 전 자기 별로 소풍을 떠났다. 지금쯤 보드라운 플란넬 천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겠지.
한동안 나이를 먹고 그동안 많은 이를 만나본 결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다. 알고 싶고 궁금한 건 점차 줄었다. 인간관계 관리는 카네기나 하라지 나는 그저 좋은 책과 SNS 속 소식과 반려인과의 대화면 사회와 사람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최소한 내향적인 것과 비사교적인 것의 차이는 안다. 나는 에너지를 채우는 방향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기계마다 충전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나도 그렇다.
세상 사람을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나는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오만해져선 안 된다. 명랑하고 다정하며 건강한 할머니가 되려면 자만 대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알고 싶은 사람이 불현듯 나타났을 때 용기를 내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우주를 함께 탐구하는 일은 참으로 기쁘다. 그 사람이 만든 우주와 앞으로 걸어갈 세계는 직접 만나서 얘길 들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발짝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 | Tae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단어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extrovert와 introvert라는 단어를 외우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향인’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건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고 나서였다. 미국에서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리하니 이런 개념이 책으로 나온 것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대입해보니 설명할 수 없던 내 일상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들어가 혼자 책을 읽던 시간, 아무리 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결국 12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던 나. 그게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내향인으로서 내가 취미를 즐기는 방식은 이렇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퀸즈 갬빗’ 은 주인공 베스 하먼이 체스를 통해 성장하고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다. 잔잔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때로는 야구 경기를 본다. 야구 룰과 경기의 흐름을 멍하니 따라가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걸 TV로 보든, 야구장에서 보든 마찬가지다. 주말에는 전시를 보러 간다. 전시는 몸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작품을 눈으로 보는 일이다. 신체 활동과 지적 유희를 함께 충족시키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취미다.
이런 취미에서의 태도는 사람을 대할 때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반발짝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반응을 놓치는 건 아니다. 겉으로는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이야기에 계속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상대가 원하는 답을 하기 위해 잠시 고민해보기도 한다. 심지어 모임과 대화를 이끌기 위해 혼자 몰래 연습도 한다. 하지만 내향인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관찰하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동시에 그것을 판단으로 이어가지 않으려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향인, 그리고 내향견 | 최소연
저는 갓난쟁이 때부터 사람과의 교류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단체 활동을 질색하며 낯선이와의 소통을 두려워한 타고나길 ‘내향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집에는 나이도 같이 살게 된 지도 5년이 다 되어가는 강아지가 있는데요. 이 친구도 내향견(?)이에요. 개는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은 저를 닮아서 강아지 친구도 못 사귀고 겁쟁이로 자라게 될까봐 집에 온 이후로 제 나름의 노력을 했어요. 처음 시작은 산책할 때 말 거는 행인들에 당황하지 않고 밝게 화답하기, 더 나아가 먼저 인사 건네어보기같은 것들이요. 딱히 별건 아니지만 사실 몸도 마음도 좋지 않아 집에만 박혀있던 그당시 저에겐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행동들이었어요.
근데 이 친구도 원래 타고나길 내향견이라 그런지 낯선 상황에 무던해질 뿐 외향적으로 바뀌진 않더라구요. 이 친구의 기본적인 성향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한 인간중심적인 생각이었구나 깨닫게 됐고 제 욕심으로 스트레스받게 했을 상황들에 반성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내향견을 존중하는 산책을 하고 있어요. 되려 사람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사는 동네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여기로 이사 온 후 몇 년을 살면서 주변을 제대로 둘러본 적도 없고 따분하고 장점이라곤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었어요.
이 친구가 집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산책을 시작하고 초반엔 와 이런 장소가 있었네? 이런 사람이 사는구나?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장소와 npc를 해금하는 재미를 느끼곤했죠. 저희끼리 지은 지명도 있어요. 일명 ‘고양이존’, ‘고라니존’, ‘너구리존’... 이유는 생각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재미는 없는 이름이죠? 하하. 그 장소들을 가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예쁜 풍경들을 마주하게 됐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스몰토크라는게 제가 걱정한 것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재밌더라구요. 동네에 사는 반려인과 반려견들도 많이 만났고 저마다의 스토리에 웃음과 감동이 있었어요. 이 친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경험들이에요.
덕분에 만난 인연 중에는 길 고양이들 밥 챙겨주시는 할아버지(일명 고양이 할아버지)가 계세요. 인사 나누는 사이가 된지 강아지가 집에 온 시간과 똑같이 5년이에요. 고양이들이 기다리니 안갈 수가 없으시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은 시간 나오셔서 챙겨주시고 뒤처리까지 깔끔히 하고 가셔요. 연세가 거의 아흔에 가까우신데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은 몸이 성치 않으셔서 길에 있는 애들도 그렇고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걱정이라고 하시는데 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동네 주민으로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근데 처음에 저희 강아지 이름을 잘못 들으셔서 계속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시는데 언젠가는 말씀 드려야할지 고민이에요...
물론 산책하면서 마냥 유쾌한 일들만 있던건 아니지만 그것 또한 그냥 성장시켜준 모험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달까요. 결국 곳곳에 이 친구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됐고 이 친구와 함께하고 나서야 드디어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내향적인 저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같이 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참 전 그냥 조금 대담해진 인격이 생겼을 뿐 내향인임에는 변치 않답니다. 저는 영원히 팀 내향인이에요... 이 친구에 대해 소개를 더 하자면 형제들과 함께 새끼 때 잠깐 보호소에 있다가 임보처에서 지낸 후 저희 집에 왔어요. 이름은 구디예요. 구디를 키우기로 결심한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낸 순간 중 하나일 듯한데 그 용기 한 번에 몇 천, 몇만 배의 행복을 보답받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존재 자체로 매일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나서기 싫은 내향인의 생존기 | 장소희
나는 내향인이다. 꽤 오래전부터, 아니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은 모두가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당연히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게 쑥스러운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발표 날, 죽거나 다치지 않을 정도의 교통사고가 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도 당연한 거 아니었나? 약속이 취소되는 걸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노래도 곧잘 하고, 까불기도 잘 까불던 나의 별명은 ‘안방챔피언’이었다. 그 모든 일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집 안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여고 시절 내내 회장이었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나뿐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럼 내가 하지 뭐’라는 이상한 결론을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임감이라기보다, 그냥 오지랖이었다. 2. 아뿔싸, 대학에서는 더 큰 실수를 했다. 경영학과. 무수한 발표와 팀플의 반복.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도망치는 방법을 배우고, 겨우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제는 학교가 있는 동네는 절대 가지도 않게되었다. (내 인생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3. 하필 경영을 전공한 나는 취업도 경영전략, 경영지원 등 무수한 ‘경영’이 붙은 업무를 하게되었다. 사내행사진행, 워크샵진행, 회사PR, 온갖 업체와의 미팅..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의 종합선물세트. 이 일들은 현재 진행중이다. 그래.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지. 생계가 달렸으니 너무너무 하기싫지만 일은 해야지. 4.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는 절대, 스스로 나서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나서는 건 정말, 죽기보다 싫으니까. 5. 어느날이었다. 오보이의 ‘매거진 토크’를 신청해서 갔다. 듣는 건 잘하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는 길부터 이상하게 불안했다. ‘혹시 나한테 말 걸면 어떡하지?’ ‘내가 뭘 해야 하는 자리면 어떡하지?’ ‘북토크는 원래 작가가 말하는 거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도착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보이 편집장님께 넘기겠다. 다만 확실한건, 내 심장이 물리적으로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여전히 부담스럽고 쉽지는 않지만, 한 번쯤은 나서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정말 제출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이미 조금은 나서버린 기분이다.
오직 반려견 | 이혜지
원래부터 내향인이었지만 2년전 입양한 유기견이 분리불안이 극심하여 더욱더 집순이가 되었다. 친구들하고의 약속은 반년에 한번 잡을까 말까하는데 나가서도 오직 반려견 걱정에 전전긍긍,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당장 집에 달려가고 싶다. 그렇다고 집에서 반려견과 둘이 술래잡기라도 하는 건 또 아니다. 그저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편안히 잠에 드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를 재우고 나는 주방과 욕실을 쓸고 닦고 거품 퐁퐁 청소하는 시간을 즐길뿐이다. 때가 빡빡 닦여나갈때의 그 희열은 친구와의 수다 못지 않게 즐겁다. 집안일을 한차례 해치우고 잠에서 깬 반려견과 밤에 동네 한 바퀴 도는 하루의 마무리는 또 얼마나 산뜻한지 모른다. 오직 엄마만 바라보는 우리 개. 그런 아이의 꼬순내가 너무 좋은 나. 이런 일상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럽여행도 화려한 휴양지도 전혀 부럽지 않다. 집근처엔 봄이면 매화와 벚꽃, 여름이면 매미소리와 초록나무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들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천상 내향인 | evrythinmalife
작년에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는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만 하다가 처음으로 대면근무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이라 기대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담스럽더라고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제가 업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껴 긴장감이 계속 이어져서 하루에도 여러 번 화장실에 다녀올 정도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스트레스성 위염 증세까지 나타나 약을 복용하며 겨우 버텼어요.
그렇게 인턴 기간이 어느새 막바지로 접어들고 마지막 날이 됐을 때, 회사 분들은 제게 “마지막인데 정말 아쉽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같은 말을 하며 많이 안쓰럽게 바라보셨죠.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얼굴이 더 환해지고, 말없이도 히히덕거릴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었어요. 돌이켜보니 제 표정과 태도에 이미 마음이 다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때 동료 한 분이 농담처럼 “ㅇㅇ씨, 마지막인데 왜 이렇게 밝고 즐거워 보여? 우리랑 일하기 싫었나 봐?”라고 말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저는 속으로 ‘이제 더 이상 이 압박감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나와서 웃음을 참고 있던 거였던 겁니다.
당시에는 아니라고, 그런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요. 사실은 그 말과 달리 저는 정말로 꽤 많이 기빨려 있었어요. 저는 결국 어쩔 수 없는 내향형 인간인가 봐요. 헤헤.
아무렇지 않은 하루 | 강지명
우리의 산책은 지난밤 내 개의 구역이 별일 없이 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저기 남은 흔적에 꼼꼼히 냄새를 맡고 다시 영역 표시를 하는 개를 정처 없이 따라간다. 특별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산책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개에게 맡겨진다. 나도 산책 훈련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보호자 옆에서 차분차분 발 맞춰 걷는 개를 보면 지금도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어설프게 옆에 붙어 걷게 하려다 몇 번이나 개의 발을 밟고 난 후 그냥 한 발자국 앞에 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게 둘 다 편안하다.
집 근처에는 공원이 세 개가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은 작은 공원, 큰 공원, 그리고 해변 공원. 물론 진짜 해변은 아니다. 오늘은 가장 가깝고, 그래서 자주 가게 되는 작은 공원에 가는 걸로 (개가) 정했다. 공원으로 가는 짧은 오르막길에는 가로등이 없어 해가 지면 금세 컴컴해진다. 길이 좁아 맞은 편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싶으면 나는 누리의 목줄을 짧게 잡고 풀 쪽으로 살짝 당기는데 오늘은 지나가던 할머니가 허허 웃으며 말한다. “Ich habe keine Angst vor Hunden (난 개를 무서워하지 않아)” 한국에서 워낙 조심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나 봐요. 하고 난 속으로만 대답한다.
자율적인 산책을 선호하지만 누리에게도 허락하지 않는 게 있다. 벽이나 가로등 같은 건축물에 마킹하는 일, 그리고 도보나 다른 집 정원 앞에서 볼일을 보는 일. 그 외에는 대부분 자유롭게 둔다. 작은 공원은 말 그대로 굉장히 아담하다. 천천히 걸어도 십여 분이면 한 바퀴를 돈다. 공원 곳곳에는 쓰레기통이 있고 그 위에 배변 봉투가 걸려 있다. 공짜는 아니다. 매년 우리가 반려견 세금을 내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가져온 봉투가 아직 남아 있지만 가끔은 한두 장씩 뽑아 주머니에 넣는다. 물론 독일에도 배변을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이 있다. 주위를 살피거나 난처해하는 표정도 없이 아주 당당하게 자리를 떠난다. 그럴 때면 똑같이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진심을 다해 쏘아봐 준다. 눈이 마주쳐도 그쪽은 전혀 머쓱해 하지 않지만.
예전에 한 개가 공원 입구에 있는 돌 여러 개중 하나에 올라가서 점프하며 차례로 건너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 했다. 그 개의 천재성에 감탄한 나는 간식을 이용해 누리가 돌 위에 올라가게 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위태롭게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 누리를 보고 포기했다. 잘 먹고 잘 싸면 됐지, 뭐. 개들뿐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곤충, 심지어 벌레들을 배려하는 표시판도 있다. 땅 아래에 개미집이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바로 앞 공터에도 곤충과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으니 강아지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를 본 적이 있었지. 가장 귀여웠던 건 꽃집 계산대 근처 매대에서 팔고 있던 곤충을 위한 작은 펜션들이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잠시 쉬어가라고 집 마당이나 발코니에 걸어놓는다. 이름도 곤충호텔, 벌레여관, 작은 펜션 등 다양하다. 독일에 살다 보면 (특히 마트 계산대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의 굳은 표정과 무뚝뚝함에 움찔할 때가 있는데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툭 다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또 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39 ‘i WILL SURVI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39 MAR APR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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