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자가 진단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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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인이라는 증거

나만의 내적 세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에서 안정감을 찾는 것이 내향인의 정의라면 
나는 그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인간이다. 
혈액형이나 MBTI 같은 테스트를 별로 신용하지 않기도 하고 내 MBTI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나 같은 인간이 i 가 아니라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내향인의 범주에 들지 않을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에 서투르고 밖으로 다니는 것을 싫어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건 
내성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인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여기 몇 가지 증거가 있다. 
| 편집장 김현성



나가지 않는다 | 직업적으로 자주 외출할 일이 없기도 하고 웬만하면, 가급적, 가능한,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살고 있다. 외출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생기가 돈다. 오래 외출을 하지 않으면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일주일 나가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한 달 동안 나가지 않는 건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촬영이나 미팅, 기타 불가피한 일이 없다면 외출하지 않는 날이 더 길어진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친 인간 취급당할까 봐 말하지 않는 편이지만 평생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오직 집만이 안식처이고 피난처이다. 밖에서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재충전이 시작되고 곧 기분이 좋아진다. 나와 반려동물만 있는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순간은 마치 방전 직전의 전기자동차가 전기를 꼽아 충전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말하지 않는다 | 살면서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어도 당최 할 말이 없었다. 미팅이나 소개팅을 나가면 상대로 나온 여성이 어김없이 꼭 하는 말이 두 가지 있었다. “말이 참 없으신가 봐요.” “혹시 화 나셨어요?”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예의 없고 경우 없는 인간인가 하는 생각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인간을 만나러 나와서 그런 무례한 행동을 참고 대해준 상대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건 절대로 그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여자들은 나에게 그 두 가지 얘기를 했고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고 얼버무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것도 고칠 수 없는 습성 중의 하나이다. 말이 일단 터지면 괜찮지만 어색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는 기술은 아마도 내가 대한민국 제일일 것이다. 나를 수 십년 겪어온 아내는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가족을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내가 예뻐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밝게 만드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나도 뭔가 끊이지 않고 재미있게 얘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오로지 지하철 | 외출을 하게 되면 무조건 걷는 편이다.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한다. 불가피하다면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을 타면 누군가와 대화할 일도, 뭔가를 물어봐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버스보다 지하철이 좋다. 지하철에서는 사람이 많아도 그들 모두는 나에게는 그저 게임 속 비조작형 캐릭터인 NPC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나도 그들에게는 똑같이 게임 속 NPC일 것이다. 내가 NPC화 되는 그 공간이 편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고독을 즐긴다는 건 내향인의 특성일 것이다. 택시는 절대로 타지 않는다. 작은 공간에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앉아있는 건 고문과도 같다.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의 어색한 정적은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기사님이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서 운을 띄우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가 자칫 말이라도 길어지면 그때부터는 후회와 고통의 시작이다. 내 돈을 내고 그런 고생을 하는 건 사양이다.

 | 꿈은 온전히 당사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고유의 경험이기 때문에 꿈 얘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내 꿈 얘기를 해도 듣는 사람은 그 광경과 느낌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할 것이고, 나도 타인의 꿈 얘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향인을 규정지을 수 있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얘기해 봐야겠다. 나는 꿈을 엄청나게 많이 꾼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꿈을 꾼다. 하루 평균 세네가지 얘기가 무작위로 연결되며 꿈을 꾸는 편이다. 외향인인 아내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 꿈을 꾸고 단지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하지만 어쨌든 아내는 꿈보다는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초등학교 3,4학년 가량부터 20대 후반 정도까지 꿈을 꾸며 봤던 광경과 갔던 장소들 대부분이 하나의 큰 지도처럼 연결되어 나의 뇌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그건 내가 평생 꾼 꿈의 세계였고 한밤중 잠들기 전 눈을 감고 그 세계를 다시 기억하며 돌아다니는 일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 꿈을 꾸지 않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마치 두 배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실이 어떻든 나에게는 꿈의 세계라는 대안 인생이 하나 더 덤으로 있다. 꿈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망적이지 않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귀신이나 괴물이 쫓아와도 그건 나에게는 그저 행복한 놀이일 뿐이다. 이런 것도 내향인의 특징 중 하나일까?

동물 | 물론 동물을 사랑하고 교감하는 외향인도 많다. 하지만 내향인과 동물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사람이 싫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과 있을 때보다 동물과 있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고 안정감을 느낀다라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사람들의 기분을 정확히 이해한다. 사람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화가 났는지 의아해할 정도의 상태로만 유지되는 나라는 인간이 동물과 있을 때의 표정과 행동, 말투를 보면 기가 찰 것이다. 그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아내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무릎에 파고들어 골골거리며 늘어져 있는 고양이가 내 인생을 몇 배 더 풍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나와 동물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가 내향인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혼자있는 게 좋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싫을 뿐이다. 사람들과 말 섞는 게 싫고 동물들과 있을 때 행복함을 느낄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잘 버티면서 별 탈 없이 살아왔다. 나는 내향인이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39 ‘i WILL SURVI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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