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모른다
김현성
내향인이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에 사는 내향인이라면 그 이유는 더 확실해진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인 과정이 내향인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내향인들은 이 주제를 만나면 쉽게 당황하고 쉽게 긴장하며 쉽게 좌절한다. 인간이 인간을 힘들어하는 건 아마도 내향인들에게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디폴트값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간의 대화는 대체로(어쩌면 모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가장 궁금한 건 항상 나이다. 나이를 묻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한다. ‘빠른’은 한국에서 나이를 따질 때 흔하게 나오는 표현이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면 1학년 밑의 동갑보다 손위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정상적으로 진학한 사람들은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1년 먼저 학교를 들어간 친구를 형이라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젊어서는 한 살이라도 많아 보이려고 노력하고 어느 선을 지나면 한 살이라도 깎으려고 노력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이래저래 나이는 중요하다.
그렇게 주도권을 둘러싼 서열 정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성격이다. 나이가 관계의 명확성(주로 철 지나고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한 유교 사상에 근거를 둔) 확보와 서열을 정리하기 위한 장치라면, 성격은 서로를 다루기 위한 사용설명서에 가깝다. 관계의 초반에 정립한 서열을 기반으로,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서로의 성격에 기반한 소통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정립해 나간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이 말은 종종 이런 뜻이 된다. 그러니까 나를 너무 몰아붙이거나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반대로, “그 사람 원래 그런 성격이야.” 이 말은 이런 식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편리하다. 그러나 조금 게으르다. 한때는 혈액형이 이 역할을 맡고 있었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제멋대로고, O형은 리더십이 있고… 지금 생각하면 다소 허술하고 막무가내인 설정이지만,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꽤 진지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는 훨씬 더 정교한 도구를 손에 넣었다. 바로 MBTI. 네 글자의 알파벳만으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적당히 방어할 수도 있다. “저는 I라서요.” “저 사람은 T라서 그래.”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이해와 포기와 합리화가 동시에 들어 있다.
사람들은 참 흥미롭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하나의 틀 안에 넣어야 마음이 놓인다.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혈액형을 믿었고, MBTI를 따지고, 서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재단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이해하기보다 정리하려 들고, 대화하기보다 분류하려 한다.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된 성격들이 기준선을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들다면서 온라인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향적이라면서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끝없이 설명하고 증명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통제 가능한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끝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설명해야 자신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건 내향성과 외향성의 문제라기보다 ‘어디에서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쉽게 분류하려 한다. 그게 혈액형이든, MBTI든, 혹은 또 다른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나쁘지 않다. 어쩌면 필요하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니까, 이 정도의 간이 설명서라도 있어야 부딪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가끔은 그 끝없는 분류와 단정, 편견과 유사과학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꽤 궁금하긴 하다. 나를 규정해서 설명하고 상대를 평가해서 통제하려고 하는 건 참기 꽤 힘든 유혹이다. 아, 그래서 당신의 MBTI는 뭔가요?
* 기사 전문은 OhBoy! No.139 ‘i WILL SURVI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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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모른다
김현성
내향인이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에 사는 내향인이라면 그 이유는 더 확실해진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인 과정이 내향인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내향인들은 이 주제를 만나면 쉽게 당황하고 쉽게 긴장하며 쉽게 좌절한다. 인간이 인간을 힘들어하는 건 아마도 내향인들에게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디폴트값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간의 대화는 대체로(어쩌면 모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가장 궁금한 건 항상 나이다. 나이를 묻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한다. ‘빠른’은 한국에서 나이를 따질 때 흔하게 나오는 표현이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면 1학년 밑의 동갑보다 손위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정상적으로 진학한 사람들은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1년 먼저 학교를 들어간 친구를 형이라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젊어서는 한 살이라도 많아 보이려고 노력하고 어느 선을 지나면 한 살이라도 깎으려고 노력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이래저래 나이는 중요하다.
그렇게 주도권을 둘러싼 서열 정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성격이다. 나이가 관계의 명확성(주로 철 지나고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한 유교 사상에 근거를 둔) 확보와 서열을 정리하기 위한 장치라면, 성격은 서로를 다루기 위한 사용설명서에 가깝다. 관계의 초반에 정립한 서열을 기반으로,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서로의 성격에 기반한 소통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정립해 나간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이 말은 종종 이런 뜻이 된다. 그러니까 나를 너무 몰아붙이거나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반대로, “그 사람 원래 그런 성격이야.” 이 말은 이런 식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편리하다. 그러나 조금 게으르다. 한때는 혈액형이 이 역할을 맡고 있었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제멋대로고, O형은 리더십이 있고… 지금 생각하면 다소 허술하고 막무가내인 설정이지만,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꽤 진지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는 훨씬 더 정교한 도구를 손에 넣었다. 바로 MBTI. 네 글자의 알파벳만으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적당히 방어할 수도 있다. “저는 I라서요.” “저 사람은 T라서 그래.”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이해와 포기와 합리화가 동시에 들어 있다.
사람들은 참 흥미롭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하나의 틀 안에 넣어야 마음이 놓인다.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혈액형을 믿었고, MBTI를 따지고, 서로의 성격을 규정하고 재단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이해하기보다 정리하려 들고, 대화하기보다 분류하려 한다.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된 성격들이 기준선을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들다면서 온라인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향적이라면서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끝없이 설명하고 증명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통제 가능한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끝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설명해야 자신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건 내향성과 외향성의 문제라기보다 ‘어디에서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쉽게 분류하려 한다. 그게 혈액형이든, MBTI든, 혹은 또 다른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나쁘지 않다. 어쩌면 필요하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니까, 이 정도의 간이 설명서라도 있어야 부딪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가끔은 그 끝없는 분류와 단정, 편견과 유사과학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꽤 궁금하긴 하다. 나를 규정해서 설명하고 상대를 평가해서 통제하려고 하는 건 참기 꽤 힘든 유혹이다. 아, 그래서 당신의 MBTI는 뭔가요?
* 기사 전문은 OhBoy! No.139 ‘i WILL SURVI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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