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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정복은 고양이에게 맡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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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악당들 옆에는 항상 고양이가 있다. 그건 꽤 익숙한 광경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등장하고, 그저 클리셰라고 넘기기엔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007의 블로펠드는 세계를 협박할 때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고, 오스틴 파워의 닥터 이블은 새로운 버전의 블로펠트로 웃음을 줬다. 돈 콜레오네의 품에도 역시 고양이가 안겨 있었고, 가가멜은 하루 종일 스머프를 증오하지만 아즈라엘만큼은 늘 곁에 둔다. 형사 가제트의 닥터 클로, 해리 포터의 필치도 늘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고, 와치맨의 오지맨디아스 역시 늘 곁에는 거대한 고양이가 있다. 그렇다, 이상할 정도로 악당 옆엔 늘 고양이가 있다. 언제나 고양이다. 개는 안된다. 우리는 생각한다. “역시 악당 옆엔 고양이지.” 마치 어떤 공식이 적혀 있는 악당 교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조합은 의외로 수긍이 간다. 조금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악당들은 결국 대부분 외로운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악담이 아니다. 세상과 잘 지내지 못하는 남자, 사람을 믿지 않게 된 남자, 인류에게 너무 많이 기대했다가 보기 좋게 실망한 남자. 그렇게 남자들은 필연적으로 고양이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왜 하필 고양이인가. 주인(이라고 쓰고 집사라고 읽는다)을 무시하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고양이는 어떻게 악당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나. 무조건 충성하는 개는 왜 악당의 옆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건가. 결국 세계를 통제하고 싶은 남자 곁에, 통제가 불가능한 존재를 붙여놓은 셈이다. 이 조합, 꽤 잔인한 유머다. 자신의 고양이 하나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날뛰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렇게 고양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단 한 번도 악당의 부하였던 적은 없다. 못난 남자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고양이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정복 따위는 관심 없고 더 맛있는 사료나 대령해라.” 이 오래된 스테레오타입은 의외로 솔직하다. 권력, 지배, 통제. 남자들이 평생을 갈구하며 연습해온 것들. 그리고 그 모든 걸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증거가 바로 옆에 떡하니 앉아 있다. 남자들은 세상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고양이를 통해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해왔다. 고양이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 함께 살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고, 함께 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와의 공존. 그러니까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매일매일 작은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연습이자 훈련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남자는, 적어도 무모하게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대신 기다리는 법, 물러서는 법, 그리고 무시당해도 괜찮아지는 법을 배운다. 지구는 여전히 엉망이고, 남자들은 아직도 수많은 잘못된 결정으로 자신의 주변부터 세계의 상황까지 악화시키고 있지만, 고양이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들은 그저 고양이 옆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도 고양이님의 허락을 받아서.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겠다. 남자는 절대로 할 수 없으니, 지구 정복은 고양이에게 맡기도록 해. 고양이가 정복한 세상. 상상만 해도 행복하잖아. 아니, 이미 정복한 건가? | 김현성



* 기사 전문은 OhBoy! No.138 ‘MEN & MEOW’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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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Boy! No.138 JAN FEB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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