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나는 내 첫 고양이를 아주 우연히 만났다. 우연히 만났다고 다 우연인 것은 아니다. 왜 하필 나는 평소 가지도 않는 그 길을 그 시간에 지나갔던가. 왜 평소 가지도 않는 그 길에는 새끼 고양이가 살고 있었던가. 그 고양이는 왜 나를 찍었던가. 그 고양이는 어째서 이틀 뒤 내 집에 살기 시작했던가. 18년을 같이 살고 떠나면서 결국 나를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드는 고양이광으로 만들었는가. 우연일까. 세상에 우연은 잘 없다. 대부분의 우연은 여러 미세한 필연들이 모이고 모여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가 유년기에 겪은 몇몇 미세한 필연적 트라우마들이 우리 인생을 지금 이따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각각의 트라우마들이 운이 들어오는 순간마다 걷어차게 만든 것이다. 농담이다. 아닌가.
옛날이야기 좀 해보자. 다시 유년기 트라우마 이야기다. 나는 여러모로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났다. ‘귀엽고’라는 단어는 잘 못 들어간 것이 맞다. 마감이 급한 글을 쓸 땐 표현 하나라도 더 넣어서 문장을 길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쓸 수 있다. 이해해달라.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난 남자들은 이미 초기 유년기부터 트라우마를 하나 장착한다. 자신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월등하게 높아 운동 잘하는 남자들을 향한 자격지심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당신의 가치는 얼마나 작고 귀엽고 약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힘으로 결정된다. 크기로 결정된다. 몸 크기 말이다. 아직 그 크기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생각을 좀 깨끗하게 비우고 이 글을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육체 트라우마에 시달린 남자들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몇 가지 선택을 한다. 헬스나 운동을 통해 몸을 키운다. 혹은, 몸은 일단 포기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 판사나 변호사나 의사가 된다. 나도 판사 변호사 의사 연애 상대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여전히 선호 대상이라고 하니 예로 든 것이다. 운동은 귀찮고 공부도 귀찮은 남자들은, 판타지에 빠진다. 만화나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포기한 남성성을 보상받는다. 키 165cm인 내가 키 168cm로 전직 싸움꾼이자 도내 최강 가드가 된 송태섭에게 열광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농구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슬램덩크>에 과몰입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나는 상당히 고전적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나 작가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티브이로 방영되는 <대탈주>를 본 이후부터 스티브 맥퀸의 팬이 됐다.
스티브 맥퀸이 어떤 배우인가. 소년원, 해병대 출신으로 당대 액션 영화 주연을 꿰차며 자동차 레이서로 활동하고 오토바이와 경비행기까지 몰았던 남자다. 곱게 자란 주제에 남성성을 연기하던 배우들과는 태생적으로 달랐다. 남성성 그 자체였다. 아니, 고전적인 남성성 그 자체였다. 요즘은 남성성과 고전적인 남성성을 구분해서 써야한다. 한국에서 고전적인 남성성을 최후로 발현했던 배우는 아마도 최민수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스티브 맥퀸의 영화를 모두 찾아봤다. 한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만큼 유명하질 않아 비디오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탈주>,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블리트>, <르망>, <겟어웨이> 정도는 찾아보시길 권한다. “형님”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난 탓에 치사량의 테스토스테론 레벨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남자들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버릇, 아니 트라우마의 영역은 영화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소싯적엔 나름 문학청년처럼 책을 읽으며 매년은 무슨 매달 최애 작가가 바뀌던 시절에도 한 작가만은 신전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헤밍웨이는 문장에 거침이 없었다. 꾸밈이 없었다. 꾸미지 않고 달려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면 가슴이 움직였다. 삶도 거침이 없었다. 무려 다섯 전쟁에 참전했다. 비행기 사고에서도 살아남았다. 남자, 아니 고전적인 남성 그 자체였다. 나는 전쟁터에 갔다 와도 쓸 수 없는 글이다. 개전 1시간 만에 사망한 상태로 실려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글을 쓸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도 있다. 나는 그의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를 티브이로 본 세대다. 당연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좋아하지 않는다. 건강이 악화하던 프레디 머큐리가 난닝구만 입고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그 순간은 젊은 알 파치노가 돌아와도 영화로 재현할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는 내가 상상하는 가장 강인하고 멋진 록 뮤지션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다른 록밴드들은 머리를 기른 뒤 오존층을 파괴하는 스프레이를 뿌려 푸들처럼 만든 뒤 가죽이나 비단으로 몸을 칭칭 감고 남자다운 척을 했다. 아무리 액슬 로즈가 관중이랑 싸우고 본 조비가 기타를 때려 부숴도 얼굴에 그렇게까지 분을 많이 바른 남자들에 이입하기는 좀 무리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당시 내가 생각하던 록의 어떤 남성성을 대변하는 표본 같은 것이었다. 사후 게이로 밝혀졌다는 것은 안 그래도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에 럼에 담근 체리까지 토핑해 주는 사건이었다. 당대에는 소수자들이 딱히 이입할 롤모델이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피아니스트 리버라치 말고도 게이 남성의 모델이 될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요즘은 롤모델이 음악계에도 많다. 샘 스미스?
고양이 관련 글에 왜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냐고? 오래 기다리셨다. 지금 등장할 예정이다.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선망해 온 남자들은 다 고양이 집사였다. 스티브 맥퀸은 와일드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들과 조용히 집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과장된 감정에 피곤해질 때 고양이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침묵을 즐겼다고 한다. 가장 강인하다고 생각했던 이 남자는 고양이의 무심함에서 안식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동차나 오토바이 레이싱, 경비행기 운전을 좋아하면서도 같은 취미를 지닌 다른 스타들처럼 사고로 죽지 않고 암으로 죽었다. 집에서 츄르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는 남자들은 이토록 안전에 집착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기 고양이 ‘딜라일라’에게 바치는 노래도 썼다. 제목도 당연히 다. “넌 울고 있는 나를 미소 짓게 해”로 시작해 “할퀴고 깨물어서 분위기를 깨버릴 때도 있지”를 거쳐 “딜라일라 너는 눈에 넣어도 안 아파”로 끝나는, 주책맞은 고양이 집사만이 쓸 수 있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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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나는 내 첫 고양이를 아주 우연히 만났다. 우연히 만났다고 다 우연인 것은 아니다. 왜 하필 나는 평소 가지도 않는 그 길을 그 시간에 지나갔던가. 왜 평소 가지도 않는 그 길에는 새끼 고양이가 살고 있었던가. 그 고양이는 왜 나를 찍었던가. 그 고양이는 어째서 이틀 뒤 내 집에 살기 시작했던가. 18년을 같이 살고 떠나면서 결국 나를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드는 고양이광으로 만들었는가. 우연일까. 세상에 우연은 잘 없다. 대부분의 우연은 여러 미세한 필연들이 모이고 모여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가 유년기에 겪은 몇몇 미세한 필연적 트라우마들이 우리 인생을 지금 이따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각각의 트라우마들이 운이 들어오는 순간마다 걷어차게 만든 것이다. 농담이다. 아닌가.
옛날이야기 좀 해보자. 다시 유년기 트라우마 이야기다. 나는 여러모로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났다. ‘귀엽고’라는 단어는 잘 못 들어간 것이 맞다. 마감이 급한 글을 쓸 땐 표현 하나라도 더 넣어서 문장을 길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쓸 수 있다. 이해해달라.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난 남자들은 이미 초기 유년기부터 트라우마를 하나 장착한다. 자신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월등하게 높아 운동 잘하는 남자들을 향한 자격지심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당신의 가치는 얼마나 작고 귀엽고 약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힘으로 결정된다. 크기로 결정된다. 몸 크기 말이다. 아직 그 크기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생각을 좀 깨끗하게 비우고 이 글을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육체 트라우마에 시달린 남자들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몇 가지 선택을 한다. 헬스나 운동을 통해 몸을 키운다. 혹은, 몸은 일단 포기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 판사나 변호사나 의사가 된다. 나도 판사 변호사 의사 연애 상대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여전히 선호 대상이라고 하니 예로 든 것이다. 운동은 귀찮고 공부도 귀찮은 남자들은, 판타지에 빠진다. 만화나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포기한 남성성을 보상받는다. 키 165cm인 내가 키 168cm로 전직 싸움꾼이자 도내 최강 가드가 된 송태섭에게 열광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농구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슬램덩크>에 과몰입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나는 상당히 고전적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나 작가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티브이로 방영되는 <대탈주>를 본 이후부터 스티브 맥퀸의 팬이 됐다.
스티브 맥퀸이 어떤 배우인가. 소년원, 해병대 출신으로 당대 액션 영화 주연을 꿰차며 자동차 레이서로 활동하고 오토바이와 경비행기까지 몰았던 남자다. 곱게 자란 주제에 남성성을 연기하던 배우들과는 태생적으로 달랐다. 남성성 그 자체였다. 아니, 고전적인 남성성 그 자체였다. 요즘은 남성성과 고전적인 남성성을 구분해서 써야한다. 한국에서 고전적인 남성성을 최후로 발현했던 배우는 아마도 최민수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스티브 맥퀸의 영화를 모두 찾아봤다. 한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만큼 유명하질 않아 비디오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탈주>,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블리트>, <르망>, <겟어웨이> 정도는 찾아보시길 권한다. “형님”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작고 귀엽고 약하게 태어난 탓에 치사량의 테스토스테론 레벨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남자들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버릇, 아니 트라우마의 영역은 영화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소싯적엔 나름 문학청년처럼 책을 읽으며 매년은 무슨 매달 최애 작가가 바뀌던 시절에도 한 작가만은 신전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헤밍웨이는 문장에 거침이 없었다. 꾸밈이 없었다. 꾸미지 않고 달려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면 가슴이 움직였다. 삶도 거침이 없었다. 무려 다섯 전쟁에 참전했다. 비행기 사고에서도 살아남았다. 남자, 아니 고전적인 남성 그 자체였다. 나는 전쟁터에 갔다 와도 쓸 수 없는 글이다. 개전 1시간 만에 사망한 상태로 실려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글을 쓸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도 있다. 나는 그의 유명한 라이브 에이드를 티브이로 본 세대다. 당연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좋아하지 않는다. 건강이 악화하던 프레디 머큐리가 난닝구만 입고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그 순간은 젊은 알 파치노가 돌아와도 영화로 재현할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는 내가 상상하는 가장 강인하고 멋진 록 뮤지션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다른 록밴드들은 머리를 기른 뒤 오존층을 파괴하는 스프레이를 뿌려 푸들처럼 만든 뒤 가죽이나 비단으로 몸을 칭칭 감고 남자다운 척을 했다. 아무리 액슬 로즈가 관중이랑 싸우고 본 조비가 기타를 때려 부숴도 얼굴에 그렇게까지 분을 많이 바른 남자들에 이입하기는 좀 무리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당시 내가 생각하던 록의 어떤 남성성을 대변하는 표본 같은 것이었다. 사후 게이로 밝혀졌다는 것은 안 그래도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에 럼에 담근 체리까지 토핑해 주는 사건이었다. 당대에는 소수자들이 딱히 이입할 롤모델이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피아니스트 리버라치 말고도 게이 남성의 모델이 될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요즘은 롤모델이 음악계에도 많다. 샘 스미스?
고양이 관련 글에 왜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냐고? 오래 기다리셨다. 지금 등장할 예정이다.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선망해 온 남자들은 다 고양이 집사였다. 스티브 맥퀸은 와일드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들과 조용히 집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과장된 감정에 피곤해질 때 고양이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침묵을 즐겼다고 한다. 가장 강인하다고 생각했던 이 남자는 고양이의 무심함에서 안식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동차나 오토바이 레이싱, 경비행기 운전을 좋아하면서도 같은 취미를 지닌 다른 스타들처럼 사고로 죽지 않고 암으로 죽었다. 집에서 츄르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는 남자들은 이토록 안전에 집착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기 고양이 ‘딜라일라’에게 바치는 노래도 썼다. 제목도 당연히 다. “넌 울고 있는 나를 미소 짓게 해”로 시작해 “할퀴고 깨물어서 분위기를 깨버릴 때도 있지”를 거쳐 “딜라일라 너는 눈에 넣어도 안 아파”로 끝나는, 주책맞은 고양이 집사만이 쓸 수 있는 노래다.
* 기사 전문은 OhBoy! No.138 ‘MEN & MEOW’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38 JAN FEB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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