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장터에서 라타타타 울린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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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 작가, 영화평론가, 캣대디


나는 버니즈다. 아니다. 이 글은 뉴진스 찬양 글 같은 게 아니다. 뉴진스 관련 글도 아니다. 물론이다. 나는 뉴진스에 대한 글로 이 잡지 한 권을 다 채울 수도 있다. 그러고도 쓸 말이 남아 다음 잡지까지 뉴진스 특대호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잡지 편집장인 포토그래퍼 김현성 작가도 당연히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분명하다. 그날이 오면 화보도 모두 뉴진스로 채워야 할 것이다. 당연히 사진은 김현성 작가가 찍을 것이다. 스케쥴이 안 맞아 다른 포토그래퍼에게 촬영을 맡기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뷰는 당연히 내가 할 작정이다. 스케쥴이 안 맞으면 어쩌냐고?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일 2차 계엄으로 통행금지령이 떨어져도 나는 뉴진스를 보러 갈 것이다. 2024년에 계엄 농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하다.

나에게는 뉴진스 재단이 있다. 이케아 수납장 하나를 샀다. 색감이 예뻐서 전 세계적으로 품절 대란이 일어난 제품이다. 그걸 뉴진스 관련 굿즈로 채우기 시작했다. 적어도 5년은 걸릴 줄 알았다. 5개월 만에 수납장은 가득 찼다. 나에게는 수집가의 피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다. 그런 게 DNA에 새겨져 있을 리가 없다고? 있다. 분명히 있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렇게 썼다. 리처드 도킨스가 그런 비과학적인 소리를 썼을 리가 있겠냐고? 믿기 힘들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 서점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구입해 읽으시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하나라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길 원해서 이런 소리 하는 거 맞다.

수집가에게 물건이라는 건 증식하는 생명체다. 하나를 작정하고 모으기 시작하면 관련 물건을 영원히 수집하게 된다. 끝은 알 수가 없다. 물론 수집가라고 집이 터져나갈 정도로 물건을 모으는 건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수집가가 아니라 호더다. 감당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8평 오피스텔에 고양이 삽십 마리 키우는 사람을 고양이 애호가가 아니라 애니멀 호더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수집가들은 까탈스럽다. 마음에 드는 것만 모은다. 시간이 걸린다. 문제가 하나 생겼다. 개인적인 문제다. 나는 수집가다. 그러다 생애 처음으로 아이돌 팬질을 시작하게 됐다. 수집가와 팬의 영혼이 한 몸에 들어가는 순간, 뱅! 빅뱅이 시작된다. 좋아하는 아이돌 굿즈가 마치 우주가 증식하듯 집안 곳곳에 증식하기 시작한다. 빛이 있으라! 뉴진스가 있으라! 버니즈가 있으라! 굿즈가 있으라!

아이돌 굿즈의 문제가 하나 있다. 뉴진스처럼 팬덤이 넓고 깊고 강한 데다 굿즈 디자인마저 상상을 초월하게 잘 뽑는 아이돌의 굿즈는 공식 사이트에서 살 수 있는 경우가 잘 없다. 너무 빠르게 품절이 되는 탓이다. 대부분 굿즈는 한정 수량만 발매한다. 나오는 순간 사야만 한다. 나의 사십 대 중반 손가락은 삼보 컴퓨터 앞에서 타자 연습 게임을 하던 시절보다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응 속도가 느린 손가락으로는 뉴진스 굿즈를 제때 획득하기 힘들다. 몇년 전 나는 부모님을 위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대리 구입하는 자식들 이야기에 좀 웃었다. 미안하다. 반성한다. 나도 자식이 있었다면 뉴진스 굿즈 대리 구입을 부탁했을 것이다. 자식이 없으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면 좋겠다만, 하여간 이놈의 고양이는 귀여운 것 빼면 도통 쓸모가 없는 축생이다.

다행인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아재 팬이다. 뉴저씨다. 뉴저씨들은 손가락 반응 속도도 느리고 정보에도 어둡다. 서른 살 어린 버니즈들이 이미 휩쓸고 간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남은 물건들이나 건져 올리는 슬픈 존재들이다. 다만 뉴저씨에게는 서른 살 어린 버니즈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장점이 하나 있다. 돈이다. 모든 뉴저씨가 돈을 잘 버는 건 아니다. 아무리 못 벌어도 10대 버니즈 용돈보다야 많이 번다. 뉴저씨 뉴줌마들은 이미 놓쳐버린 굿즈를 돈을 더 얹어서라도 구입할 만한 재력을 갖고 있다. ‘재력’이라는 단어는 좀 지나치다. 과장이다. 오버다. 아니다. 10대 시절 나의 눈에 40대들은 세상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재력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이 글을 읽는 10대와 20대 초반 버니즈들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재력 대신 체력을 가졌다. 40대가 넘은 우리는 재력이고 나발이고 여러분의 체력이 부러워 죽겠다. 참고로, 여러분은 40대가 되어서야 깨달을 것이다. 체력이 바로 재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굿즈 중 가장 구하기 힘들고 웃돈이 크게 붙는 건 티셔츠다. 지금까지 뉴진스는 여러 종류의 티셔츠 굿즈를 발매했다. 브랜드와 손잡고 출시한 제품도 있다. 전설적 디자이너 후지와라 히로시와 협업해 만든 티셔츠는 언제 어디서든 입고 다닐 수 있는 디자인이라 꽤 많이 팔렸다. 하지만 나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뉴진스 굿즈인지 알 수 없는 티셔츠 따위 원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원한 티셔츠는 거의 로열 블루에 가까운 파란색 면에 토끼 마스코트가 프린트된 바로 그 티셔츠였다. 이거야말로 내가 원한 물건이었다. 누가 봐도 뉴진스 굿즈라는 걸 눈치챌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저 사람은 뉴진스에 미친 사람인가 봐. 어떡해?’라며 걱정까지 하게 만들 정도의 디자인이었다. 나처럼 강건한 뉴저씨 조차도 옷장 앞에 걸려있는 이 티셔츠를 보며 ‘내가 과연 이걸 입고 나갈 수는 있을까?’라고 고민하게 되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이걸 입고 방송에라도 나간다면 다음날 동생으로부터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아무리 피가 섞인 형제라도 이건 무리다’라는 절연 선언 카톡이 도착할 법한 그런 디자인이었다. 아이돌 팬들은 미친 자들이다. 이 티셔츠는 공식 앱에 올라왔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전에 완벽하게 품절됐다. 나는 좌절했다. 아니다.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물론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좌절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걸 입은 사람과 마주치면 “얼마니? 얼마면 되겠니?”라고 다짜고짜 물어본 뒤 신고당해 파출소에 끌려갔을 것이다. 지금은 좌절할 이유가 없다. 중고 거래 앱이라는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운 발명품이 내 손바닥 속에 있는 덕이다. 고백을 해야겠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김도훈입니다. 당근마켓 과 번개장터 중독자입니다. 하여간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는 놀라운 장소다. 도무지 구할 수도 없을 것 같던 물건들이 매일 올라온다. 물론이다. 우리에게는 중고나라라는 곳이 있었다. 블로그 형태를 한 그 공간에서는 매일 같이 서 로가 서로를 속이는 온라인 사기극이 벌어졌다. 얼마나 사기가 많이 일어났 던지 유명한 사례만 수집해도 책 한 권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중고나라가 실 제로 지구 위에 존재한다면 멕시코와 콜롬비아 사이 정글 어딘가에 있을 것 이 틀림없다. 입국하는 순간 국경에는 이런 문구가 분명히 새겨져 있을 것이 다. 웰컴 투 중고나라! 위 셀 드럭스 앤 페이크 루이비통! 썸타임스 위 돈 셀 앳 올 벗 위 테이크 유어 머니! 

앱이 발명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국인은 사실 중고를 팔거나 사는 데 매우 인색하던 사람들이다. 여러분 조부모님들에게 물어보라. 남의 물건 주워다 쓰는 건 거지라고 생각하던 세대다. 여러분 조부모 세대는 나의 부모 세대다. 내 어머니는 항상 뭔가를 중고 거래 앱으로 거래하고 있는 나를 오랫동안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런 세대가 부럽기도 하다. 고도성장기를 살던 사람들은 새 물건을 사랑했다. 새 물건을 살 능력이 있었다. 아마도 내 세대부터 고도성장은 끝났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우리는 아껴야 한다. 아껴야 잘 살기 때문이 아니다. 아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의 앱이 나오자 우리는 그걸 빠르게 일상으로 받아 들였다. 중고를 싫어하는 내 어머니마저도 30년 전 구입한 샤넬 클래식백을 지금 번개장터나 당근마켓으로 팔면 얼마냐 물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장 팔아치우고 싶어 하는 중고 물품은 아버지일 것이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아버지 중고 가격이 샤넬 클래식백보다 높을 리 없다는 진실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다시 뉴진스로 돌아가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나는 파란색 버니즈 티셔츠를 번개장터 앱으로 샀다. 아이돌 굿즈 웃돈 주고 산다는 소리 듣기 싫어하는 양반들도 있다. 정당한 상거래가 아니고 잘못된 굿즈 문화를 퍼뜨린다는 불평이다. 나도 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다. 팬심이라는 건 도덕적 윤리적 논리적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이 증거다. 사십 대 중반인 남자가 중고 거래에 대한 글을 쓴다는 핑계로 뉴진스에 대한 사랑을 마구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파란색 버니즈 티셔츠를 겨우 2만 원 정도 웃돈을 주고 번개장터 판매자로부터 구입했다. 다음 날 번개장터 앱으로 메시지가 왔다. “혹시 사이즈 안 맞으시면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서 파셔도 괜찮으실 것 같아요! ㅋㅋㅋ 사겠다는 연락이 엄청 많이 와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버니즈지 되팔이가 아니다. 나는 답변했다. “제가 뉴진스 팬이라 ㅎㅎㅎ” 다시 팔 생각은 없다는 소리였다. 

판매자의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도 이번 앨범 다 샀습니다. 보통 하나만 사는데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요.” 읽는 순간 나의 가슴은 형제애로 벅차올랐다. 그는 나를 되팔이로 간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도 버니즈였던 것이다. 물론 그 역시 웃돈을 주고 옷을 팔긴 했다만, 그 정도는 같은 버니즈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티셔츠를 영원히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판매자의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응원 화이팅입니다!” 민희진이 역사에 남을 첫 래퍼 데뷔, 아니 기자회견을 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두 버니즈가 번개장터에서 굿즈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다. 얼굴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도원결의였다. 아, 가만 생각하니 글이 이렇게 끝나서는 곤란하다. 이 글은 뉴진스 글이 아니다. 중고 거래에 대한 글이다. 뭔가 모범적인 문장으로 끝이 나야 옳다. 삼십 분 넘게 고민해도 마무리할 문장이 떠오르질 않는다. 나 원래 글 마무리도 잘하고 그런데 왜 이런지 아이 돈 라이크 댓. 쏘 세이 잇 디토. / 작가, 영화평론가, 캣대디 김도훈






OhBoy! No.131 NOV DEC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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