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뭔가를 산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나는 중고
제품을 구매한 경험 역시 많지는 않지만 9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유학 시절 중고로 샀던 두 가지 물건은 나름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하나가 자동차, 나머지 하나는 LP 음반들이다. 그 둘은 당시의 나의 생활에도, 지금의 나와 나의 사진에도 큰 영향을 줬고 둘 중 하나는 추억과 기억으로만, 나머지 하나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내 방에 소중하게 꽂혀있다. 오늘은 그 둘 중 자동차 얘기다. 유학 초기 사진 전공 수업들을 들으며 풍경과 건축 사진, 패션 에디토리얼 등 다양한 실습 과제를 제출해야 했지만 차가 없던 나의 동선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던 터라 자동차를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했고, 더 멋지고 근사한 풍경을 찍고 싶었지만 내가 갈 수 있던 곳은 기껏해야 지하철(Bart)이나 버스(Muni)를 타고 갈 수 있었던 오션비치나 버클리 인근이 고작이었다. 사진의 질이나 주제의식 같은 것과는 별개로 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같은 같은 과 아이들의 사진 속 로케이션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새 차를 살 돈은 물론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양한 자동차들이 다양한 가격에 올라와 있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나 이그재미너 신문을 매일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스마트폰은커녕 어떤 형태의 온라인 정보도 가까이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운전만 했지 자동차 수리나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나는 누군가 사용하던 차를 사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가장 작은 소형차 신품은 1만불 가까이 줘야 했고 연식이 조금 있지만 고장이 적은 일본 자동차들은 상태가 좋으면 7,8천불, 조금 못한 건 3,4천불 정도에 살 수 있었다. 2천불도 부담스러웠던 나는 신문을 뒤지고 또 뒤졌다. 학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쇳덩이에 바퀴 네 개만 달렸다면 그게 뭐라도 사야만 했다. 그렇게 ‘올스모빌 델타 88’이 미국에서의 내 첫차가 됐다.
사실 그렇게 싼 가격을 보고 나는 일말의 의심이라도 했어야 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중년의 백인 남성 차주를 만나서 ‘미안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하고 단호하게 돌아섰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어색하고 어설픈 대화, 완벽하지 않은 나의 영어 때문에 그냥 싱거운 웃음과 의미 없는 ‘OK’를 반복하다가 그 자주색의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낡은 올스모빌을 몰고 돌아오고야 말았다. 가격이 결정타였다. 그 8기통 괴물의 가격은 단 돈 5백달러였다. 엄청난 엔진 소리, 시동을 걸면 정차 중에도 덜덜 흔들리는 차체, 기름 떨어지는 게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무시무시한 연비, 내 운전 실력으로는 그 넓은 미국 땅에서도 주차가 만만치 않은 길이. 차만 타면 엄청나게 올라오는 찌든 담배 냄새는 덤이었다. 사실 지금 묘사한 이 차의 단점들은 오로지 지금의 생각일뿐이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앞에 거칠 것은 없었다.
나는 낡은 올스모빌을 타고 미국 서부를 누볐다. 캘리포니아 전역은 물론 네바다와 유타, 콜로라도와 오레곤주까지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비록 기름을 엄청나게 먹어댔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면 나름 나쁘지 않은 연비를 보여주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끝없이 뻗은 미국의 고속도로를 핸들 꺾을 일없이 몇 시간 동안 달리다 보면 모든 감각이 마비되고 몽롱한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전형적인 미국차를 타고 달리는 경험은 꽤나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고차를 사는 과정도 쉬운 건 아니었지만 작별은 더 어렵고 황당하며 아쉬웠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편인데 불법 주차를 하지 않거나 교통 위반을 하지 않는 것도 준법정신이 투철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융통성이 많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특히 주차를 대충대충 하지 않는 성격인데 유학시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파트 주차비가 얼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차값을 생각하면 너무 아까운 수준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마켓 스트리트의 싸구려 아파트, 월세도 차와 같은 5백달러밖에 하지 않는 아파트에 살면서 월 주차비까지 따로 낼 형편은 되지 않았다. 동전을 넣는 노면주차를 계속 이용할 수도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은 자체 관리소가 아닌 위탁 회사가 운영했다. 주차비를 내지 않은 채로 며칠인가를 아무 생각없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다음 달 집으로 날아온 주차 딱지 고지서에 나는 경악했다. 벌금은 자그마치 3백달러였다. 나는 더 이상 차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하루빨리 차를 팔아야 했다.
유료 광고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됐다. 나는 학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차를 내놨다고 얘기했다. 가격은 정하지 않았지만 많이 받을 수 없는 수준의 차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돈을 받고 팔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얼마를 받든 차를 팔아야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아는 사람에게 차 파는 걸 포기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 녀석이 지인에게 가서 이런저런 말썽을 피울 걸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값도 받지 못하고 욕까지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차를 몰고 중고차 매장으로 갔다.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시 외곽의 전형적인 중고차 매장이었다. 화려하고 천박하게 만국기가 걸려있고 차 앞 유리창에 커다랗게 페인트로 가격이 써 있는 그런 곳이었다. 딜러의 모습 역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에게 차를 팔았던 그처럼 그도 평범하게 생긴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흥정은 허무하리만큼 빨리 끝났다. 아니, 흥정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딜러가 가격을 불렀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고 말했다. 제시한 가격이 너무 황당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50달러 지폐 세 장을 받아들고 약간의 모욕적인 느낌과 함께 중고차 매장을 빠져나왔다. 불법 주차 벌금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사진 찍는 게 전공이고 직업이지만 아쉽게도 나의 첫 번째 중고 올스모빌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유학 시절 내내 사진을 찍기위해 샌프란시스코와 미서부를 누비면서 나와 함께 했지만 그렇게 매 순간을 함께 하면서도 왠지 정작 이 녀석의 사진을 찍을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나의 첫 번째 중고차 올스모빌 델타 88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LP 얘기도 해 볼까? 아니, 그 얘기를 하려면 이것보다 훨씬 더 길고 장황한 글이 될 것이다. 아마 약간의 과장을 보태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정도의 할 얘기가 있다. 그 얘기는 다음에 다른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게 좋겠다. 그건 또 다른 얘기이고 지금은 이걸로 이미 충분하다. / 편집장 김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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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뭔가를 산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나는 중고 제품을 구매한 경험 역시 많지는 않지만 9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유학 시절 중고로 샀던 두 가지 물건은 나름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하나가 자동차, 나머지 하나는 LP 음반들이다. 그 둘은 당시의 나의 생활에도, 지금의 나와 나의 사진에도 큰 영향을 줬고 둘 중 하나는 추억과 기억으로만, 나머지 하나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내 방에 소중하게 꽂혀있다. 오늘은 그 둘 중 자동차 얘기다. 유학 초기 사진 전공 수업들을 들으며 풍경과 건축 사진, 패션 에디토리얼 등 다양한 실습 과제를 제출해야 했지만 차가 없던 나의 동선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던 터라 자동차를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했고, 더 멋지고 근사한 풍경을 찍고 싶었지만 내가 갈 수 있던 곳은 기껏해야 지하철(Bart)이나 버스(Muni)를 타고 갈 수 있었던 오션비치나 버클리 인근이 고작이었다. 사진의 질이나 주제의식 같은 것과는 별개로 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같은 같은 과 아이들의 사진 속 로케이션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새 차를 살 돈은 물론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양한 자동차들이 다양한 가격에 올라와 있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나 이그재미너 신문을 매일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스마트폰은커녕 어떤 형태의 온라인 정보도 가까이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운전만 했지 자동차 수리나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나는 누군가 사용하던 차를 사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가장 작은 소형차 신품은 1만불 가까이 줘야 했고 연식이 조금 있지만 고장이 적은 일본 자동차들은 상태가 좋으면 7,8천불, 조금 못한 건 3,4천불 정도에 살 수 있었다. 2천불도 부담스러웠던 나는 신문을 뒤지고 또 뒤졌다. 학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쇳덩이에 바퀴 네 개만 달렸다면 그게 뭐라도 사야만 했다. 그렇게 ‘올스모빌 델타 88’이 미국에서의 내 첫차가 됐다.
사실 그렇게 싼 가격을 보고 나는 일말의 의심이라도 했어야 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중년의 백인 남성 차주를 만나서 ‘미안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라고 말하고 단호하게 돌아섰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어색하고 어설픈 대화, 완벽하지 않은 나의 영어 때문에 그냥 싱거운 웃음과 의미 없는 ‘OK’를 반복하다가 그 자주색의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낡은 올스모빌을 몰고 돌아오고야 말았다. 가격이 결정타였다. 그 8기통 괴물의 가격은 단 돈 5백달러였다. 엄청난 엔진 소리, 시동을 걸면 정차 중에도 덜덜 흔들리는 차체, 기름 떨어지는 게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무시무시한 연비, 내 운전 실력으로는 그 넓은 미국 땅에서도 주차가 만만치 않은 길이. 차만 타면 엄청나게 올라오는 찌든 담배 냄새는 덤이었다. 사실 지금 묘사한 이 차의 단점들은 오로지 지금의 생각일뿐이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앞에 거칠 것은 없었다.
나는 낡은 올스모빌을 타고 미국 서부를 누볐다. 캘리포니아 전역은 물론 네바다와 유타, 콜로라도와 오레곤주까지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비록 기름을 엄청나게 먹어댔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면 나름 나쁘지 않은 연비를 보여주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끝없이 뻗은 미국의 고속도로를 핸들 꺾을 일없이 몇 시간 동안 달리다 보면 모든 감각이 마비되고 몽롱한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전형적인 미국차를 타고 달리는 경험은 꽤나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고차를 사는 과정도 쉬운 건 아니었지만 작별은 더 어렵고 황당하며 아쉬웠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편인데 불법 주차를 하지 않거나 교통 위반을 하지 않는 것도 준법정신이 투철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융통성이 많이 부족해서일 뿐이다. 특히 주차를 대충대충 하지 않는 성격인데 유학시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파트 주차비가 얼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차값을 생각하면 너무 아까운 수준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마켓 스트리트의 싸구려 아파트, 월세도 차와 같은 5백달러밖에 하지 않는 아파트에 살면서 월 주차비까지 따로 낼 형편은 되지 않았다. 동전을 넣는 노면주차를 계속 이용할 수도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은 자체 관리소가 아닌 위탁 회사가 운영했다. 주차비를 내지 않은 채로 며칠인가를 아무 생각없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다음 달 집으로 날아온 주차 딱지 고지서에 나는 경악했다. 벌금은 자그마치 3백달러였다. 나는 더 이상 차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하루빨리 차를 팔아야 했다.
유료 광고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됐다. 나는 학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차를 내놨다고 얘기했다. 가격은 정하지 않았지만 많이 받을 수 없는 수준의 차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돈을 받고 팔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얼마를 받든 차를 팔아야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아는 사람에게 차 파는 걸 포기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 녀석이 지인에게 가서 이런저런 말썽을 피울 걸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값도 받지 못하고 욕까지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차를 몰고 중고차 매장으로 갔다.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시 외곽의 전형적인 중고차 매장이었다. 화려하고 천박하게 만국기가 걸려있고 차 앞 유리창에 커다랗게 페인트로 가격이 써 있는 그런 곳이었다. 딜러의 모습 역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에게 차를 팔았던 그처럼 그도 평범하게 생긴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흥정은 허무하리만큼 빨리 끝났다. 아니, 흥정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딜러가 가격을 불렀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고 말했다. 제시한 가격이 너무 황당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50달러 지폐 세 장을 받아들고 약간의 모욕적인 느낌과 함께 중고차 매장을 빠져나왔다. 불법 주차 벌금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사진 찍는 게 전공이고 직업이지만 아쉽게도 나의 첫 번째 중고 올스모빌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유학 시절 내내 사진을 찍기위해 샌프란시스코와 미서부를 누비면서 나와 함께 했지만 그렇게 매 순간을 함께 하면서도 왠지 정작 이 녀석의 사진을 찍을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나의 첫 번째 중고차 올스모빌 델타 88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LP 얘기도 해 볼까? 아니, 그 얘기를 하려면 이것보다 훨씬 더 길고 장황한 글이 될 것이다. 아마 약간의 과장을 보태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정도의 할 얘기가 있다. 그 얘기는 다음에 다른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게 좋겠다. 그건 또 다른 얘기이고 지금은 이걸로 이미 충분하다. / 편집장 김현성
OhBoy! No.131 NOV DEC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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