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 |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 소장, 환경논픽션 작가
<다정한 거인>은 어떤 책인가요?
2011년에 <고래의 노래>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을 쓴 건 우연이었죠. 2005년부터 기후변화에 대해 취재를 계속했고 매년 여름마다 북극을 갔다 왔었거든요. 거기에 고래가 많고 본적도 많아요. 고래에 대해 좀 알아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국내에 딱히 책이 없더라고요. 고래의 생태와 역사를 다룬 책을 써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 후 2010년대를 통과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우선 고래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많이 쏟아졌어요. 특히 인지행동학적인 연구, 고래의 문화라든가 지능에 관한 것이요. 또 하나, 돌고래 해방 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어요. 수족관을 없애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법 제도를 바꾸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제돌이’를 비롯한 8마리 남방큰돌고래를 야생 방사했죠. 인간과 고래의 관계가 아주 혁명적으로 바뀐 시대가 2010년대였어요. 그래서 책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는 느낌으로요. 참고서처럼 옆에 두고 필요할 때 찾아보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먼 옛날부터 고래에 대한 인식,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옛날에 고래는 ‘바다의 괴수’였어요. 옛사람들은 고래가 해안에 좌초됐을 때나 한 번씩 봤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성서에 ‘요나의 고래’ 이야기처럼 여러 신화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다뤄졌어요. 그러다가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고래가 하나의 자원이 되기 시작해요.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자연을 자원으로 대하기 시작한 때죠. 그게 쭉 이어지다가 근대에 와 공장식 포경선으로 많은 고래를 잡았어요. 포경하면 바스크족, ‘허먼 멜빌’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사실 그때 잡힌 건 진짜 조금이에요. 대부분은 1900년대, 특히 1950년대 이후에 잡혔어요. 1950년대가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잖아요. 공장식 축산의 고기처럼 고래가 자원도 아니고 거의 자동판매기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여겨져요. 그러다가 인간과 고래의 관계가 바뀌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문화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히피 문화, 평화주의 운동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고래를 신비로운 존재이자 평화의 사도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gentle giant’, ‘다정한 거인’이라는 표현이 쓰여요. 이 책의 제목을 거기에서 따 온 거고요. 더 최근에는 단순히 낭만적이고 신비한 존재를 넘어 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2011년 제돌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돌고래 방사 활동 중심에 계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주목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때가 <고래의 노래>를 거의 탈고한 시점이었어요. 남방큰돌고래가 불법 포획됐다는 해양경찰청의 발표가 있었는데요. 부끄럽더라고요. 돌고래를 좋아하다 보니 돌고래 쇼도 좋아했거든요. 내가 서울대공원에서 봤던 그 돌고래들이 불법 포획된 돌고래였다니,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취재 했죠. 첫 기사가 <‘탐욕의 쇼’ 돌고래는 운다>라는 기사였어요. 아마 국내 최초로 동물 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기사일 거예요. 그러다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야생모니터링을 따라갔다가 고래연구소 김현우 박사에게 ‘돌고래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이해는 잘 안 됐거든요. 외국에 성공한 사례가 한 차례 있다고 하더라고요. 관련 논문을 받고, ‘케이코’를 아이슬란드 바다로 돌려보냈던 해양학 박사에게도 메일을 보냈더니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어요. 약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죠. 제대로 취재해야겠다 마음먹고 용기를 내서 돌고래를 돌려 보내자는 내용의 기사를 썼어요. 그게 한겨레 신문 1면에 나간 <제돌이의 운명>이에요. 그리고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이 바로 응답을 했죠. 다른 언론사들은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는데, 동물권 문제가 정치사회 의제가 됐다는 게 오히려 고마웠어요. 그리고 1년 뒤,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가는 걸 직접 보고 다시 한번 기사를 썼죠. 제목은 <자유>였어요.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기사가 그거예요. 내가 쓴 기사로 누군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줬다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스테와겐 뱅크 혹등고래 (사진 : 남종영)
제돌이 이후 여러 마리 방사가 이뤄졌는데, 책에 최근 방사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인 내용이 있더라고요.
제 생각에 최근 야생 방사는 너무 인간중심적이고 논쟁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너무 어릴 때 잡혀 와 수족관 감금 기간이 지나치게 긴 개체였고, 방사 후에 발견이 되지 않아 얼마 안 되어 죽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결국에는 인간이 동물의 운명을 결정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좀 더 동물을 위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동물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 아니에요. 우리가 대신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동물이 원하는 바를 왜곡할 수 있는 소지가 커요. 그리고 거기에 너무 빠지다 보면 자신을 어떠한 구원자처럼 여기게 되기도 하고요. 최대한 동물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는 과학, 철학, 경험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사를 결정할 때도 이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죠. 이를테면, 우선 기존 야생 방사, 남방큰돌고래의 생태 행동에 대한 논문을 보면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어요. ‘수족관에서 태어난 개체는 방사되어 생존하기 어렵다’, ‘원서식지에 방사를 해야 한다’ 같은 과학자들의 프로토콜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런 것에 입각해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어요. 또 철학이나 정치 사회적인 것을 따져볼 수 있는데요. 야생 방사를 할 때 실패 가능성이 조금 있더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계도 효과가 크다면 그 부분을 고려할 수도 있는 거죠. 세 번째는 우리가 야생 남방큰돌고래들을 실제로 보고 부딪히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동물을 통해 투사하는 우리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문화자본을 높이기 위해서, 아니면 그냥 자기만족이든 각자의 욕망이 있거든요.
세일리시 해 범고래 스파이호핑 (사진 : 남종영)
* 기사 전문은 OhBoy! No.130 ‘15th ANNIVERS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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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 소장, 환경논픽션 작가
<다정한 거인>은 어떤 책인가요?
2011년에 <고래의 노래>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을 쓴 건 우연이었죠. 2005년부터 기후변화에 대해 취재를 계속했고 매년 여름마다 북극을 갔다 왔었거든요. 거기에 고래가 많고 본적도 많아요. 고래에 대해 좀 알아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국내에 딱히 책이 없더라고요. 고래의 생태와 역사를 다룬 책을 써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 후 2010년대를 통과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우선 고래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많이 쏟아졌어요. 특히 인지행동학적인 연구, 고래의 문화라든가 지능에 관한 것이요. 또 하나, 돌고래 해방 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졌어요. 수족관을 없애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법 제도를 바꾸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제돌이’를 비롯한 8마리 남방큰돌고래를 야생 방사했죠. 인간과 고래의 관계가 아주 혁명적으로 바뀐 시대가 2010년대였어요. 그래서 책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는 느낌으로요. 참고서처럼 옆에 두고 필요할 때 찾아보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먼 옛날부터 고래에 대한 인식,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옛날에 고래는 ‘바다의 괴수’였어요. 옛사람들은 고래가 해안에 좌초됐을 때나 한 번씩 봤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성서에 ‘요나의 고래’ 이야기처럼 여러 신화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다뤄졌어요. 그러다가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고래가 하나의 자원이 되기 시작해요.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자연을 자원으로 대하기 시작한 때죠. 그게 쭉 이어지다가 근대에 와 공장식 포경선으로 많은 고래를 잡았어요. 포경하면 바스크족, ‘허먼 멜빌’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사실 그때 잡힌 건 진짜 조금이에요. 대부분은 1900년대, 특히 1950년대 이후에 잡혔어요. 1950년대가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잖아요. 공장식 축산의 고기처럼 고래가 자원도 아니고 거의 자동판매기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여겨져요. 그러다가 인간과 고래의 관계가 바뀌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문화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히피 문화, 평화주의 운동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고래를 신비로운 존재이자 평화의 사도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gentle giant’, ‘다정한 거인’이라는 표현이 쓰여요. 이 책의 제목을 거기에서 따 온 거고요. 더 최근에는 단순히 낭만적이고 신비한 존재를 넘어 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2011년 제돌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돌고래 방사 활동 중심에 계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주목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때가 <고래의 노래>를 거의 탈고한 시점이었어요. 남방큰돌고래가 불법 포획됐다는 해양경찰청의 발표가 있었는데요. 부끄럽더라고요. 돌고래를 좋아하다 보니 돌고래 쇼도 좋아했거든요. 내가 서울대공원에서 봤던 그 돌고래들이 불법 포획된 돌고래였다니,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취재 했죠. 첫 기사가 <‘탐욕의 쇼’ 돌고래는 운다>라는 기사였어요. 아마 국내 최초로 동물 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기사일 거예요. 그러다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야생모니터링을 따라갔다가 고래연구소 김현우 박사에게 ‘돌고래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이해는 잘 안 됐거든요. 외국에 성공한 사례가 한 차례 있다고 하더라고요. 관련 논문을 받고, ‘케이코’를 아이슬란드 바다로 돌려보냈던 해양학 박사에게도 메일을 보냈더니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어요. 약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죠. 제대로 취재해야겠다 마음먹고 용기를 내서 돌고래를 돌려 보내자는 내용의 기사를 썼어요. 그게 한겨레 신문 1면에 나간 <제돌이의 운명>이에요. 그리고 당시 박원순 전 시장이 바로 응답을 했죠. 다른 언론사들은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는데, 동물권 문제가 정치사회 의제가 됐다는 게 오히려 고마웠어요. 그리고 1년 뒤,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가는 걸 직접 보고 다시 한번 기사를 썼죠. 제목은 <자유>였어요.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기사가 그거예요. 내가 쓴 기사로 누군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줬다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스테와겐 뱅크 혹등고래 (사진 : 남종영)
제돌이 이후 여러 마리 방사가 이뤄졌는데, 책에 최근 방사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인 내용이 있더라고요.
제 생각에 최근 야생 방사는 너무 인간중심적이고 논쟁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너무 어릴 때 잡혀 와 수족관 감금 기간이 지나치게 긴 개체였고, 방사 후에 발견이 되지 않아 얼마 안 되어 죽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결국에는 인간이 동물의 운명을 결정하잖아요. 어떻게 해야 좀 더 동물을 위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동물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 아니에요. 우리가 대신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동물이 원하는 바를 왜곡할 수 있는 소지가 커요. 그리고 거기에 너무 빠지다 보면 자신을 어떠한 구원자처럼 여기게 되기도 하고요. 최대한 동물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는 과학, 철학, 경험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사를 결정할 때도 이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죠. 이를테면, 우선 기존 야생 방사, 남방큰돌고래의 생태 행동에 대한 논문을 보면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어요. ‘수족관에서 태어난 개체는 방사되어 생존하기 어렵다’, ‘원서식지에 방사를 해야 한다’ 같은 과학자들의 프로토콜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런 것에 입각해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어요. 또 철학이나 정치 사회적인 것을 따져볼 수 있는데요. 야생 방사를 할 때 실패 가능성이 조금 있더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계도 효과가 크다면 그 부분을 고려할 수도 있는 거죠. 세 번째는 우리가 야생 남방큰돌고래들을 실제로 보고 부딪히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동물을 통해 투사하는 우리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문화자본을 높이기 위해서, 아니면 그냥 자기만족이든 각자의 욕망이 있거든요.
세일리시 해 범고래 스파이호핑 (사진 : 남종영)
* 기사 전문은 OhBoy! No.130 ‘15th ANNIVERSARY’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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