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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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터블 가죽? 비건 가죽?

간혹 ‘베지터블 가죽’이라는 용어가 비건 가죽과 혼동되어 쓰이지만 둘은 명백히 다르다. 베지터블 가죽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가죽의 ‘무두질(태닝, tanning)’이라는 가공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가죽은 생체 조직이기 때문에 단백질 구조를 강화하는 화학적인 안정화 과정을 거쳐야 직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죽은 썩어 들어갈 것이고 유쾌하지 않은 냄새도 날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무두질 방법은 ‘크롬 무두질’이다. 크롬이 들어간 물에 가죽을 담가 빨래를 하듯 섞는 방식인데, 대량생산에 적합하지만 각종 중금속과 화학물질이 쓰인다는 것이 문제다. 환경은 물론 작업자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가죽에도 잔류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좋지 않다.

‘베지터블 가죽’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탄닌(tannin)으로 무두질한 가죽을 뜻한다. 단계별로 만든 탄닌 용액에 가죽을 담그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최소 40일, 길게는 100일 이상 걸린다. 매우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공 과정에서 유해한 물질이 배출되지 않고 가죽 자체의 손상도 적어 크롬 무두질의 대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지터블 가죽이 일반 가죽과 비교했을 때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끼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진짜’ 동물 가죽을 가공하는 한가지 방식일 뿐, 동물성 성분을 배제한 ‘비건 가죽’과는 다르다.


역시 ‘가죽’만 한 것이 없다?

전세계 가죽 산업의 규모는 4천 억 달러, 거의 500조에 가깝게 추산된다. 이중 80~90%는 패션 분야에서 쓰이는데, 신발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의류와 가방, 액세서리다. 패션 분야 외의 것은 자동차나 가구, 인테리어에 쓰이는 경우다. 비건 가죽도 자연스럽게 의류나 가방, 신발 등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패션에서의 가죽은 내구성이나 부드러움 같은 기능적인 필요도 있긴 하나 장식적인 요소에 가깝다 보니, 비동물성 소재로 가죽과 유사한 느낌을 낼 수 있다면 굳이 가죽을 고집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오히려 가죽의 위상이 굳건한 쪽은 자동차나 가구 분야다. 여전히 자동차 시트는 가죽이 기본이고, 소파도 무조건 가죽으로 사야 후회가 없다고들 한다. 아무래도 워낙 마찰이 잦고 몸에 직접 닿는 것이기에 가죽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가죽만 한 것이 없다’는 이러한 관행에 대한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인장 가죽 Desserto를 선보인 Adriano Di Marti는 자동차 시트와 내장재 전용 라인을 개발하며 BMW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최근에는 Mercedes-Benz, Aston Martin 콘셉트카에 적용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선인장 가죽이나 파인애플 가죽, 사과 가죽은 이미 의자나 소파에 꽤 적용되고 있고, 이탈리아 디자인 가구 브랜드 Cassina에서 사과 가죽을 사용한 필립 스탁의 소파를 선보인 적도 있다. 물론 이런 신소재가 당장 모든 가죽을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파인애플 가죽으로 만든 신발, 포도 가죽으로 만든 재킷, 사과 가죽으로 만든 가방… 10년, 아니 5년만 되돌려 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입고 쓰며 즐기고 있지 않은가? 더 긴 시간이 지나면 가죽이 더 이상 큰 장점이 없는 구시대 유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풍경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고기로 얻은 가죽, 가죽으로 얻은 고기

‘가죽’과 ‘육식’은 불가분의 관계다. 유통되는 가죽의 대부분은 고기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가죽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소가죽으로, 전체 가죽의 60~70%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에는 고기와 상관없이 갓난 송아지를 죽여 얻는 송치가죽도 있다.) 나머지는 양, 돼지, 염소 등이며 이 역시 식용 목적으로 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죽을 얻을 목적이 우선되는 종은 악어나 뱀, 타조 같은 것들인데, 전체 가죽 시장의 1%를 밑돈다. 물론 그렇게 죽인 악어나 뱀, 타조도 그냥 버려지지는 않는다. 고기로 먹히거나 사료로 가공된다. 타조는 언젠가부터 고급 고기로 여겨지면서 식용으로도 많이 사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죽을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기르고, 도축을 하고, 그렇게 고기를 얻고 나면 어차피 가죽은 남게 될 테니까. 하지만 생각을 반대로 해 보면 어떨까? 가죽의 소비는 육류 산업이 유지되는 데에 어떻게든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고기를 우선해서 죽이느냐, 가죽을 우선해서 죽이느냐는 그저 효용에 따른 구분일 뿐 결과는 같다. 어느 쪽을 소비하든 고기로도 쓰이고 가죽으로도 쓰인다. 동물을 착취한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핏빛 살코기는 제품으로 만들어진 가죽보다 더 징그러워 보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죽 때문에 죽이는 것이 고기 때문에 죽이는 것보다 덜 잔인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물론 그 반대도 아니다. 또 누군가는 입속에 넣으면 그만인 고기를 먹는 것보다 죽은 동물의 피부를 들고 다니는 일을 더 꺼림칙하게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이 더 잔인한지 무엇이 더 나쁜 일인지 우리 스스로의 윤리적 부담의 경중을 우리만의 기준으로 저울질하곤 한다. 그 사이, 먹히기 위해 또 가방이 되기 위해 끝없이 생명이 태어나고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잊은 채 말이다. / 조혜민


* 기사 전문은 OhBoy! No.115 ‘BAG TO BA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OhBoy! No.115 MAR AP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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